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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 떠난 정선 탄광촌, 이제는 맛과 예술을 캔다 [ESC]

등록 2023-10-21 09:36수정 2023-10-21 10:33

박미향의 요즘 어디 가 강원 정선 옛 탄광촌

‘탄광 갤러리’ 삼탄아트마인 눈길
구공탄시장선 연탄불 구이 축제
사북 탄광문화공원도 개장 예정
옛 광부 사택은 ‘명품 숲’ 변신
내년에 문을 여는 강원 정선군 사북리 ‘탄광문화공원’의 야외 마당. 석탄을 실어 날랐던 열차가 녹슨 채 서 있다. 박미향 기자
내년에 문을 여는 강원 정선군 사북리 ‘탄광문화공원’의 야외 마당. 석탄을 실어 날랐던 열차가 녹슨 채 서 있다. 박미향 기자

“대한민국 산업전사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광부였다.” 지난 7일 도착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구공탄시장. 들머리 담벼락에 적힌 문구가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구의 ‘광부’와 시장 이름에 박힌 ‘구공탄’은 맞춤한 짝이다. 1967년 문 연 시장은 ‘정태영삼’(정선·태백·영월·삼척) 일대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곳이다.

1960~80년대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석탄산업과 탄광 노동자의 흔적들이 이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질 참이다. 지난 6월30일 대한민국 1호 광업소인 화순광업소가 118년 역사를 마감하고 문을 닫았다. 지난해 정부는 대한석탄공사 산하 전남 화순광업소, 태백 장성광업소, 삼척 도계광업소를 차례로 폐광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까지 이들 광업소 모두가 문을 닫으면 민간이 운영하는 삼척 경동광업소 한곳만 남는다. 지역민들은 불안하다.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탄광 노동자들로 북적거렸던 이곳이 인구소멸지역으로 굳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체류 인구라도 는다면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 터다. 지난 몇년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탄광·광부 여행 콘텐츠’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고한구공탄시장. 이곳의 아치와 천장은 탄광촌을 형상화했다. 박미향 기자
고한구공탄시장. 이곳의 아치와 천장은 탄광촌을 형상화했다. 박미향 기자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던 곳

지난 7일 저녁 8시께 고한구공탄시장에서는 ‘2023 구이 축제’가 한창이었다. 여행객들은 야외 광장에서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육즙을 타고 맛난 향이 시장을 덮었다. 축제 간판 맨 위에는 1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있는 개 모형이 붙어있었다. 석탄 산업이 붐이었을 때 이 지역에선 돈이 넘쳐나서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시장 건물 아치에는 ‘갱도’란 글자가 붙어있고 천장은 탄광을 형성화한 모양새다. 이 지역에선 그저 평범한 탄광 상징이 이방인들에겐 신기하기만 하다.

시장에서 차로 10여분 달리면 삼탄아트마인이 나타난다. 문화예술 공간인 삼탄아트마인에도 탄광과 광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삼탄’은 대한민국 대표 탄광 중 하나였던 삼척탄좌를 말한다. ‘아트마인’은 탄광의 영어식 표기인 ‘콜 마인’(Coal Mine)에서 따온 이름이다. ‘석탄 대신 이젠 예술을 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62년에 설립된 삼척탄좌는 이듬해 시험생산을 성공시키면서 1964년 본격적인 채광에 들어간 대단위 사업장이었다. 삼척탄좌의 주사업장인 정암광업소가 17개 광구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정선·삼척·영월 3개군에 걸쳐 총면적 3678ha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점차 채산성이 떨어지자 2001년 10월에 폐광했다.

삼탄아트마인에서 전시 중인 광부들의 안전모. 박미향 기자
삼탄아트마인에서 전시 중인 광부들의 안전모. 박미향 기자

지난 9일 오전 11시 당도한 삼탄아트마인은 흔하디흔한 박물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첫인상은 대지면적 4만6000㎡이 넘는 너른 땅에 펼쳐놓은 여러 공간을 모두 관람하면 달라진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란 글자가 적힌 ‘동굴 갤러리’,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탄광의 종합사무동 등을 둘러보면 말이다. 전시 공간의 동선은 4층부터 아래로 이어지도록 짜여있다. 광부들의 급여명세서와 작업일지 등 귀한 자료들이 보관된 방, 종합운전실 시설과 광부들의 안전모나 장화들이 고스란히 비치된 곳, 그 시절을 생생하게 담은 수천장의 흑백 사진이 붙어 있는 벽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삼탄아트마인은 과거 광부들이 이용했던 샤워장을 미술 작품 전시장으로 조성했다. 박미향 기자
삼탄아트마인은 과거 광부들이 이용했던 샤워장을 미술 작품 전시장으로 조성했다. 박미향 기자

샤워 꼭지 4개가 한묶음으로 붙어 있는 장치 수십개가 천장에 달려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광부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샤워장이다. ‘오늘도 무사히’ 갱도를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쏟아지는 물줄기가 꾀꼬리 노랫소리처럼 들렸을 광산 노동자들의 굵은 팔뚝과 환한 미소가 아른거린다. 샤워장에 설치된 조각품과 그림들이 그 위로 겹쳐진다. 더 내려갈수록 그들의 모습은 또렷해진다. 검은 때가 잔뜩 묻은 세탁기, “우리는 가정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그 속에 직장을 사랑한다”는 표어가 붙은 플라스틱 널빤지, ‘인차 운행 시간표’와 ‘인차 운행 탑승자 준수사항’ 13개 조항이 적힌 판때기 등이 그 시절을 반추하게 한다. “정원을 초과하여 탑승하지 말 것”, “대기하고 안전한 복장으로 입갱 할 것” 등 ‘준수 사항’이 눈에 박힌다.

과거 탄광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삼탄아트마인의 전시장. 박미향 기자
과거 탄광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삼탄아트마인의 전시장. 박미향 기자

예술로 승화된 폐광

이윽고 철제 계단을 따라 더 내려가면 거대한 공간이 나타나는데, 광부들이 캔 석탄을 레일에 실어 나르는 시설들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거대하다. 그 위용에 압도당한다. 하나둘 사라져 간 광부들의 그 시절 분주한 소란과 검은 웃음, 눈물이 공기 중에 떠돈다.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광부 사진가 전제훈과 사야 등 예술가 11명의 기획전 ‘페이스 투 페이스’ 관람은 덤이다. 보기 드문 앤디 워홀의 작품도 함께 걸려있다.

올해로 10년이 된 삼탄아트마인은 굵직한 문화 사업을 20여년간 펼쳤던 김민석(2015년 작고)·손화순(65) 부부의 노력으로 태어났다. 손화순 관장은 “우리만의 둥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달려들었다고 말한다. “80년대 외국을 많이 다녔는데, 문화도 삶이란 점을 깨달았고 그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와 (탄광) 철탑을 보는 순간 ‘너무 멋있다, 산속에 이런 조형물이 있다니’ 하고 감탄했는데 광산이었다.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후대에 물려주자고 생각했다”며 “독일 등 유럽에는 폐광을 잘 해석해 수십만명이 찾는 여행지가 된 곳이 많다”고 말을 이었다.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에 들어설 ‘탄광문화공원’도 ‘예술’이 강조된 삼탄아트마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광부와 탄광의 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공간이다.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었던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자리였던 이곳은 내년 초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9일 이곳에서 사북석탄유물보존위원회 심호용 소장을 만났다. 그는 곧 세상에 얼굴을 비칠 4만여점이 넘는 탄광 기물들을 보여줬다. 시커먼 방진 마스크와 장갑, 도시락통, 광산도면 등 무엇 하나도 허투루 보기 어려운 귀한 것들이었다.

젊은 날 광부였던 그가 그 시절을 증언했다. “광부들은 도시락 가방이 두개예요. 갱내 들어가면 새까매지니깐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 가방이 있고, 막장에 들어가는 가방이 따라 있었죠.” 이곳 야외 마당엔 특이한 시설물들도 있다. 석탄 레일과 광부들이 몸을 실은 열차 등이 구불구불 휘어진 채 펼쳐져 있다. 거대한 수직 갱도 철탑, 통근 버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이 모든 구조물들이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초현실적인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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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탄광촌에서 만나는 숲길

하늘하늘 나뭇잎이 흔들거린다. 폭신한 길이 고불고불 나 있다. 나들이 온 가족이 자박자박 걷는다. 아이들은 참새처럼 재재거리며 웃는다. 쭉쭉 뻗은 아름드리나무에선 청량한 새소리가 들린다. 지난 8일 낮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에 있는 ‘단체의 숲’ 풍경이다. 과거 탄광 노동자들과 가족이 머물던 사택이 있던 지역이다. 이곳은 2011년 4월 강원랜드가 산림청과 협약을 맺고 지금과 같은 울창한 숲으로 조성하면서 변신에 성공했다.

50분이면 숲의 얼굴을 다 만날 수 있다. 걷는 내내 닿는 흙길이 경이롭다. 이끼 낀 나무 밑동을 발견하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밑동을 감싸 안은 키 작은 고사리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낮게 깔린 야생화가 한 줄로 도열해있다. 창포, 부들, 동의나물 등 야생화를 설명한 팻말이 걷는 재미를 더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무들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옛 광부 사택에 조성된 ‘단체의 숲’엔 멧돼지가 출현했을 때 치는 종이 있다. 박미향 기자
옛 광부 사택에 조성된 ‘단체의 숲’엔 멧돼지가 출현했을 때 치는 종이 있다. 박미향 기자

멧돼지 퇴치용 종도 있어, 그것마저 둥둥 치고 나면 숲이 오롯이 가슴 한쪽에 새겨진다. 최근 이 숲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품 숲’에 선정됐다. 강원랜드가 관리하는 또 다른 숲 ‘하늘길 둘레길’(총 17.1㎞)도 ‘명품숲길 50선’에 올랐다.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 내에 있는 달팽이길과 자작나무숲도 여행객이 자주 찾는 소담한 숲이다.

이 지역이 폐광으로 낙후가 가속화되자 그 대안으로 1998년 세워진 강원랜드는 국내 최초 내외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년 전부터 스키장, 골프장 등을 갖춘 복합 리조트로 탈바꿈해왔다. 최근에는 요가, 명상, 우드버닝(달군 펜으로 나무에 그림 그리기) 작품 제작, 조향 클래스 등 요즘 여행의 화두인 ‘웰니스’ 프로그램을 ‘하이힐링원’과 ‘웰니스센터’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탄광촌 먹을거리

연탄빵을 아시나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사북읍 일대가 농산물 풍부하지 않은 탓에 맛집이 없을 듯하지만, 아니다. 나름의 손맛으로 한껏 상차림 한 식당이 여럿 있다.

장금이네 ‘한우 등심’. 박미향 기자
장금이네 ‘한우 등심’. 박미향 기자

고한구공탄시장 한쪽에 있는 장금이네(정선군 고한읍 고한4길 58-9)는 한우, 삼겹살, 오징어볶음 등의 메뉴가 있지만, ‘한우 등심’(1인분 180g 4만원)과 청국장찌개(1만원)가 돋보인다. 등심 두께가 대략 2㎝로 두툼하다. 주인 변정임씨가 직접 담근 청국장으로 끓인 찌개에는 매콤한 김치가 들어가는데, 도시 청국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운암정에서 파는 연탄 모양의 빵. 박미향 기자
운암정에서 파는 연탄 모양의 빵. 박미향 기자

연탄처럼 구멍이 9개 난 빵 맛은 어떨까.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가 운영하는 운암정은 한옥 모양의 베이커리 겸 주점이다. 매일 아침 나오는 일명 ‘연탄빵’으로 불리는 ’감탄빵 블랙·화이트’(9500원)가 인기다. 검은색은 연탄, 인절미 색은 타고 난 연탄재를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각종 전통 주전부리들이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각종 방송을 탔다는 내용이 외관 창에 적혀있다. 막국수(9천원)와 곤드레비빔밥(정식 1만4천원)이 유명하다.

본래 강원도 일대엔 평양냉면 식당이 거의 없다. 매콤한 양념으로 비벼 낸 함흥냉면 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함평냉면(고한읍 곤한로 83-1)은 에스비에스(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바 있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냉면집이다. 한우 사태 등으로 우린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내는 물냉면은 9천원. 이 집 비빔냉면도 9천원이다. 주인이 직접 뽑아내는 메밀 면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은호식당(고한읍 고한2길 75-1)에선 매운맛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매운닭볶음탕(3만원), 만두전골, 김치전골 등을 파는 이 식당은 그저 통각 중독을 유도하며 캡사이신 등을 퍼 넣는 식당과는 격을 달리한다. 제육볶음(1만3천원)에도 이 집 ‘매운맛’이 그대로 녹아있는데, 한입 물면 이산가족을 극적으로 만난 것처럼 그 맛이 와락 달려든다. 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안에서 이리저리 누울 자리를 살피지만, 금세 그 매력에 빠져든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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