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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광장이 아니었던 육조거리를 광장으로 만든 ‘꼰대적 발상’

등록 2021-07-02 05:00수정 2021-07-02 09:21

매몰찬 콘크리트의 도시 서울
길에 대한 고민 사라진 광화문 광장
광장의 본질은 조용한 보행자를 위한 것
평범한 집 같은 도시 갖게 되었으면…
광화문 광장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광화문 광장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고요는 종종 거북하다. 집이라는 것이 분명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최후의 쉼터이긴 하지만, 혼자 사는 입장에선 절대적 무음이 가끔 두렵다. 그래서 우린 허접스런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 방송을 틀어둔다. 화이트 노이즈가 되려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의미 없는 대화나 쓸데없는 내용이 더욱 적합하다. 어쨌든, 소음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소리의 절멸은 곧 완벽한 고립이고, 오히려 내면의 소음,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소리도 건축의 일부

언젠가 뉴질랜드 어떤 계곡의 텐트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도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전기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는 곳이었다. 고요함이 극한에 도달하면 ‘웅~’하며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대의 어리석은 상상력에 의하면, 그것은 분명 지구가 자전하며 내는 소리였다. 광활한 숲과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지만, 풀의 미동조차 멈춰버린 그곳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갇혀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러 간 곳이었지만, 극도의 적막함 속에서는 오히려 집중이 잘되지 않아 연신 초조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서귀포의 한 시끄러운 펍,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머리 위 스피커에서는 철 지난 팝송이 쿵쿵거리고, 종업원은 마이크에 대고 끊임없이 주문을 확인한다. 얼음 가는 소리, 칵테일 쉐이커를 흔드는 소리, 잔과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 개수대에서 쏴 하며 흐르는 물소리 위로 일하는 이들의 깔깔거림이 포개진다. 저만치 주상절리 언덕 아래 몰아치는 파도 소리와 육지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바람의 속삭임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난 제주도에 있으니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렇다. 이 곳은 밀린 숙제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건축가 피터 줌터가 말했던 ‘다른 갈래의 고요함’이다. 소리의 해일이 나의 집중력을 방어하는 중이다. 이만큼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할 법한데, 아랑곳없이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나는 소음에 제법, 아니 매우 민감한 편이다. 음식점에서 옆 테이블 사람들이 약간 들떠 대화한다거나, 큰소리로 통화라도 하면 곧잘 거슬리고 불편하다. 심지어 비행기 뒷좌석에서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소화가 안 될 정도다. 카페였다면 이미 티 안 나게 스르륵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함께 한 동행이 지나친 까칠함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어느 심리학자에 의하면 꽤 심각한 정신적 장애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어떤 공간에 들어서거나, 자리를 찾을 때 소리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잦다. 클럽 같은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신기했었다. 식사 자리를 예약할 때면 꼭 조용한 곳을 당부하곤 한다. 선택할 수 있다면, 디자인이나 장식이 어떻든 상관없이 대개 큰 유리나 말끔한 벽, 천장으로 마감되고, 오픈된 공간에 테이블이 줄줄이 정렬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은 가능한 피하는 편이다.

시끄러운 식당을 못 견뎌 하면서, 지금 이 주점의 쓰나미 같은 소음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소리의 양이 아닌, 질의 차이 때문이다. 이곳엔 키치적 장식과 잡스러운 물건이 벽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귀로 느끼는 건축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미니멀리즘은 최악이다. 걸러지지 않고, 반사하기만 하는 흰 벽이나 유리의 소음은 무척 거칠고 날카롭다. 소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콘크리트 벽보다는 합판 벽이 낫고, 페인트칠한 벽보다는 (설사 꽃무늬라 할지라도) 벽지 바른 벽이 훨씬 낫다. 철문, 유리문보다는 나무문이 제격이다. 플라스틱 블라인드보다는 천 종류의 커튼이 백배 낫다. 공간에서 훨씬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이탈리아 피렌차 산타 크로체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피렌차 산타 크로체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소리에 대한 에누리 없는 매몰찬 공간

건축의 재료뿐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소음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보스턴 고사리 화분과 유리 없는 캔버스 유화는 훌륭한 흡음재다. 커피포트니, 서류뭉치 따위 잡동사니들도 나름 역할을 할 것이다. 화문석이나 카펫은 바닥에 반사되는 소리를 정갈하게 제거한다. 책장은 크게 한몫하는 물건이다.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보면, 천장에 닿을 듯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잔뜩 사방을 채우고 있는 노교수님의 방에선 고요하다 못해 숙연함마저 느껴졌었다. 그분이 노트에 스케치할 때, B연필의 사각거림에서 나는 미세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영화 〈해피엔드〉에서 최민식처럼, 번잡한 도심에 있는 중고서점에서 잠시 세상의 소음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책 벽이 제공하는 정적 덕분이다.

그렇지만 역시, 보통의 집에서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방음재는 널브러져 있는 옷들일 것이다. 직물은 소음에 가장 효과적이다. 드레스룸에서는 숨소리마저도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컴퓨터의 팬 소리나 냉장고의 소음, 에어컨의 윙윙댐도 잦아든다. 서양의 오래된 저택에 가보면, 공명 현상이 일어날 법한 큰 방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가 벽을 장식한다. 침대 머리맡 헤드 보드를 천이나 가죽으로 덧씌우는 방식의 마감은 조금 더 평온한 수면과 친밀한 대화를 돕는 지혜였다.

집은 어느 정도 지저분할 때 편안한 소리를 낸다. 이사하느라 물건을 처분하거나 싸서 치운 경우에 집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건 물건에 의한 소리의 필터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체로 목조주택이 일반적인 서구 국가들과 비교하면 콘크리트 건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집은 소리의 측면에서 참 에누리가 없다. 가끔은 매몰차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공간을 반복해서 만들고 있는 건축가들이 무척이나 둔탁하고 무딘 사람들이라 탓해 본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설계하는 바깥 공간도 종종 인정 없고 차갑다. 새로운 광화문 광장이 완성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광장이 아닌 곳을 억지로 광장이라 우기다 보니,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고 치우친 모습이 우선 보기에도 좋지 않다. 세종로는 이름 그대로 길이고, 육조거리였던 곳인데 광화문 광장 사업은 길에 대한 착각, 광장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해프닝이라 할 만하다.

내년 4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 중인 광화문 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내년 4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 중인 광화문 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길의 정의를 잊었을 때 생기는 일

서양에서는 길에 대해 역사적으로 쌓아온 경험과 문화적 다양성에 의한 분류가 세세하다. 우리가 길 혹은 ‘~로’라고 부르는 공간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나뉘어 있다. 스트리트(street), 애비뉴(avenue), 웨이(way), 로드(road), 레인(lane), 드라이브(drive), 워크(walk), 플레이스(place), 패스(path), 앨리(alley), 블러바드(boulevard), 프로머나드(promenade), 에스플러나드(esplanade), 턴파이크(turnpike)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세종로를 어떤 성격의 ‘길’로 만들어 가야 하느냐는 고민은 ‘광장’이라는 엉뚱한 정의에 의해 싹부터 잘렸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양편의 보행로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가로수는 어떤 컨셉으로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상식적인 설계는 광장을 오른쪽, 중앙, 왼쪽 중 어디에 둘 것이냐는 멍청한 질문에 쓸려나가 버렸다.

넓은 길이 일시적으로 광장의 기능을 수행한 것을 두고, 나머지 364일도 상시적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관념적 사고에 도취한 ‘꼰대적’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본질적으로 광장은 보행자 도시, 즉 조용한 장소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방〉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광장들을 떠올려 보자. 하나같이 저층의 건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이 걷고 있고, 무엇보다 조용하다. 차 소리가 아닌 아기자기한 상업의 소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국가니 상징이니 하는 소음을 황량한 거대 포장 면에 얹으면 광장이 된다는 착각이 아까운 세금을 낭비했다. 소음의 필터링이 사라진 미니멀리즘 건축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그냥 평범한 집 같은 도시를 갖게 될까? 〈끝〉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그동안 최이규 교수의 ‘집’을 사랑해주신 독자님과,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최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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