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대신 차이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3> ‘미혼모’ 낙인찍는 사회
<3> ‘미혼모’ 낙인찍는 사회
“어딜가나 차가운 시선 꽂혀
아이에게도 악영향 걱정돼”
취업도 어려워 빈곤층 전락 “아빠는요?” 접수대 너머 공무원이 물었다. “아이 아빠는요? 네? 미혼모라고요?”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5년 전 일인데도 김선영(31)씨의 황망함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홀로 출산을 준비하느라 동사무소와 보건소를 오갔다. 가는 곳마다 “왜 미혼모가 됐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아예 바깥출입조차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주체 못한 호기심이 누군가에게는 ‘비수’처럼 꽂힐 수 있다는 걸 김씨는 체험으로 알게 됐다. 사귀던 사람은 아이가 태어난 뒤 줄행랑을 놓았다. 도움을 구하자 가족·친지들도 “네가 선택한 일”이라며 매몰차게 돌아섰다. “엄마가 차별과 낙인 속에 숨어 살면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도 중요할 텐데….” 김씨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미혼모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그들을 향한 낙인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2000년 11만7000여명이었던 미혼모는 2010년 16만6000여명으로 5만명 가까이 늘었다. 아이 있는 사실 알려져
권고사직 당하는 일도 미혼모들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체감도는 선명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9년 전국 48개 기관 430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모 10명 중 9명(89%)은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미혼모들은 차별 앞에 약자다. 네살배기 아들을 둔 전현아(가명·28)씨는 최근 친한 직장동료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이 새어나간 것을 알게 됐다. 어느날부터 동료들은 차가웠다. 한밤중에 남자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술에 취해 가당치 않은 수작을 부리기에 화를 냈더니, ‘아이도 있지 않냐. 알 거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홑벌이로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전씨는 모욕 앞에서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모임에서 만난 다른 미혼모는 아이가 있단 사실이 알려진 뒤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구직 면접에서도 퇴짜를 맞기 일쑤다.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를 입양한 가정은 조건 없이 월 13만원의 양육비를 지원받지만 미혼모 가정은 월 7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 미혼모의 31.5%는 ‘본인 가족의 지원’으로 생계를 꾸린다고 답했고, 27.8%는 ‘복지기관의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다’는 응답은 5명 중 1명뿐이었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선영씨는 “지금은 아이가 어리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돈이 많이 들 텐데, 1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밤마다 그 고민만 한다”고 말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미혼모들도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보호막을 얻게 된다.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법이 만들어지면 교과과정에서 미혼부·모 가정을 다양한 가정의 형태로 제시하는가 하면, 기업들은 미혼모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게 되고, 10대 미혼모들은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고 학습권을 보호받는 등 제도의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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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도 악영향 걱정돼”
취업도 어려워 빈곤층 전락 “아빠는요?” 접수대 너머 공무원이 물었다. “아이 아빠는요? 네? 미혼모라고요?”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5년 전 일인데도 김선영(31)씨의 황망함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홀로 출산을 준비하느라 동사무소와 보건소를 오갔다. 가는 곳마다 “왜 미혼모가 됐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아예 바깥출입조차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주체 못한 호기심이 누군가에게는 ‘비수’처럼 꽂힐 수 있다는 걸 김씨는 체험으로 알게 됐다. 사귀던 사람은 아이가 태어난 뒤 줄행랑을 놓았다. 도움을 구하자 가족·친지들도 “네가 선택한 일”이라며 매몰차게 돌아섰다. “엄마가 차별과 낙인 속에 숨어 살면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도 중요할 텐데….” 김씨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미혼모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그들을 향한 낙인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2000년 11만7000여명이었던 미혼모는 2010년 16만6000여명으로 5만명 가까이 늘었다. 아이 있는 사실 알려져
권고사직 당하는 일도 미혼모들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체감도는 선명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9년 전국 48개 기관 430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모 10명 중 9명(89%)은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미혼모들은 차별 앞에 약자다. 네살배기 아들을 둔 전현아(가명·28)씨는 최근 친한 직장동료에게만 털어놓은 비밀이 새어나간 것을 알게 됐다. 어느날부터 동료들은 차가웠다. 한밤중에 남자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술에 취해 가당치 않은 수작을 부리기에 화를 냈더니, ‘아이도 있지 않냐. 알 거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홑벌이로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전씨는 모욕 앞에서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모임에서 만난 다른 미혼모는 아이가 있단 사실이 알려진 뒤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구직 면접에서도 퇴짜를 맞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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