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평등법 4월 제정을 위한 평등텐트촌 설치와 단식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오는 5월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 4월 임시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면서 11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이후 평등법(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차제연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5년 동안 정치가 유예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나와 동료 시민의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해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위한 단식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차제연은 “이번 4월 임시국회는 현 정부에서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고 했다. 차제연 주도로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법사위는 이 청원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29일로 연장했다.
이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미류(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이날부터 국회 앞 ‘평등 텐트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 두 활동가는 앞서 지난해 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이종걸 활동가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고 약속하자는 시민의 엄중한 요구를 15년 동안 국회와 정부가 무시해왔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일상의 차별 속에서 존재하는 대로 당당하게 살고자 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차제연은 이날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변화시켜야 할 가장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의 ‘나중에’ 정치가 ‘차별금지법 하나 못 만드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법안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차제연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수틀린 표 계산에 급급해 평등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겠다는 의지와 실행이다”라며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대선 패배 후 스스로 내건 개혁과제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완수하라”고 촉구했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입법과제로 평등법 제정을 언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뜻은 모든 국민의 평등을 전제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당연한 논의가 지난 십수년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점, 지금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죄송하다. 절실하게 이 법의 통과를 위한 논의와 입법 과정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불어민주당의 개혁이다. 172석 정도의 권력을 국민이 쥐여줬는데 차별금지법 하나 만들지 않는 정당에 다음에도 시민들이 권력을 쥐여주실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며 “국민의힘도 국민통합이 최대 과제일 텐데, 차별금지법이 국민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제연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이준석 당 대표의 장애인 지하철 투쟁에 대한 혐오와 차별 선동으로 스스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평등의 걸림돌을 자임하는 일을 멈추고, 윤석열 당선인이 약속한 국민통합을 위해 모든 시민을 위한 정치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양한 참가자들도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섹 알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촛불집회로 문재인 정부가 나오면서 이주노동자들도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점점 어려워졌고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아직 시간이 있다.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미류 활동가는 “국회 밖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뭐라도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데, 국회 안에서는 혐오에 줄을 대느라 눈치만 보는 일을 멈춰라”고 말했다.
이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혐오가 만연하다며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정치권이 선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혐오와 사회 분열을 부추기더니 안티 페미니즘에 기댄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며 “혐오에 편승하고 증오를 선동하는 정치가 아닌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하라. 국회는 더는 외면하지 말고 새 정부 출범 전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라”고 말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집권 정당이 될 국민의힘 당 대표가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비문명적 시위라 매도하면서 장애인 차별을 조장하는 게 현실”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여전히 장애인들은 차별당하는데, 우리 사회의 다른 소수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대응할 방패가 없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윤주 기자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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