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해 “생명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그럴 듯한 미사여구에 감춰진 ‘낙태’(임신중지)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 보호를 앞세워 출산을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시각을 바탕으로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김 후보자는 15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임신중지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민한 문제”라며 “생명존중의 문제가 있어 기독교, 불교, 천주교 할 것 없이 종교계는 낙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인데, 저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자기결정권 때문에 낙태를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는 것도 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존중 의견이 상당히 상치돼 보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제가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이와 관련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미혼모여서, 또는 청소년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며 “이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이들을) 책임진다면 (태아의) 생명 보호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불가피한 낙태의 경우 (국가가) 모두 공히 책임질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예산도 확보하겠다”고 덧붙였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미사여구’라고 지칭한 김 후보자의 발언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고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협소한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헌재는 2019년 4월 여성의 임신중지권이, 헌법 제10조에서 정하는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자기결정권의 핵심이라고 판단하며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개별적 상황에 따라 임신중단이라는 선택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여성의 삶은 황폐해지고 인격이 손상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고 했다.
헌재의 이런 결정 취지에 따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임신중지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 체계 구축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성단체 쪽에선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듯한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헌재 결정으로 임신중지가 (이미) 비범죄화됐다”며 “출산을 선택하거나 임신중지를 하는 모든 여성을 국가가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여성 권리 보호를 위해 지금의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고민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여가부는 임신중지를 위기 행동의 일환으로 바라봤는데, 이제는 임신·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여성의 권리와 건강을 국가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것인지를 여가부가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후보자는 또 이날 윤석열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저출산(저출생)·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에 성평등 관점이 빠져 있는 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동안 저출산(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을 수십조원 사용했는데도 이 예산이 각 부처·기관별로 쪼개져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강력한 저출산(저출생) 컨트롤타워(총괄기구)가 필요하다”는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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