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은 이미 우리 곁에 있어 왔다. 혈연·혼인으로 이뤄진 ‘건강가정’, 부모·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잣대에서 벗어나 있었을 뿐이다. 자발적 비혼부로 어렵게 입양한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빠, 동성결혼 법제화를 기다리는 성소수자 커플, 1인가구 공동체를 꾸려가는 비혼여성들이 한 가족을 꾸렸다. 아직 법과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세 가족을 <한겨레>가 만났다.
“나는 진짜 엄마는 없지만 할머니가 내 엄마야!”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온 5살 태민(가명)이가 말했다. 태민이 아빠 이아무개(39)씨는 아이에게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유치원에서 읽은 책이나 만화 주인공은 다 아빠, 엄마가 있어서….”
이씨는 자발적 비혼부다. 지난해 7월 법적 절차를 거쳐 태민이를 ‘독신 입양’했다. 태민이에겐 엄마는 없지만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이씨는 “태민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우리 가족이 다른 가족과 다르다는 걸 점점 느끼는 것 같다. 교육 자료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아빠, 엄마, 나, 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할머니를 엄마라고 하는 걸 듣고는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태민이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면서다. 1급 장애인인 태민이 친모는 홀로 아이를 낳고 길렀지만, 태민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모 활동보조인이었던 이씨는 자연스럽게 태민이의 주 양육자가 됐다. 이씨가 이직을 하며 활동보조인을 그만두게 되자, 친모는 더 이상 아이를 키우지 못하겠다고 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3년여 태민이를 돌본 이씨. 그는 아이의 손을 붙잡기로 했다. 다행히 이씨 부모님도 태민이 입양을 반겼다. 2018년 4월 그렇게 한 가정, 태민이네가 됐다.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7년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혼인 중’이 아닌 독신자도 입양이 가능해졌다. 그래도 한부모 가정에선 아이를 잘 키우기 힘들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실재하는 현실의 벽은 크다. 지난해 국내 입양 465건 가운데 독신 입양은 3건(0.65%)에 불과하다. 입양 활성화도 필요하지만 자칫 파양으로 이어질 경우 아이가 받을 상처는 크다. 이씨는 “법원에서 독신 입양은 잘 승인해주지 않는다. 친부모의 동의 단계에서부터 막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입양재판 절차를 밟기 1년 전부터 태민이와 함께 산 이씨도 입양 승인까지 1년8개월이 걸렸다.
“사회적 편견도 문제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분명 있어요. 제가 바쁘더라도 태민이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잖아요. 한부모인데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가정에선 물리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아이돌봄서비스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래야 한부모 입양도 보편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씨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면 보통 그렇듯 그에게도 육아 전쟁은 일상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씨는 퇴근 뒤 녹초가 된다. 하지만 매일 유치원에 있는 태민이를 데리러 간다. 산수와 한글을 가르치는 일도 그의 몫이다. 2018년엔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이씨는 “육아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훈육과 교육은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에게 사회가 규정한 ‘정상가족’에 대해 물었다. 이씨는 “그 어떤 형태도 정상가족”이라고 했다. “입양 가정이든, 한부모 가정이든, 나아가 다문화 가정이든 가족으로 묶여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어떤 형태도 정상가족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실 정상가족이란 말 자체가 잘못된 용어라고 생각해요.”
그는 “태민이가 자라면서 입양 가정, 한부모 가정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경험할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우리도 그냥 평범한 집이에요. 형태만 조금 다를 뿐이지. 아이들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자랄 수 있도록 어른들부터 편견에 갇히지 않길 당부하고 싶어요.”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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