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4만분의 1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를 돕고 싶어
후원금을 보내고 추모행사까지 갔다
‘내가 뭐라고’ 머쓱함 가시지 않았다
관객들이 펌프질로 공기를 넣어야
비로소 펴지는 거대풍선 작품 앞
홀린 듯 3시간 동안 펌프 밟았다
그제야 들은 “4만번 밟아야 완성”
미리 알았더라면 덤비지 않았을까
그래도 밟은 만큼은 펴졌을 것이다
나는 여기 있지만 미얀마의 삶들도
더 높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4만분의 1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를 돕고 싶어
후원금을 보내고 추모행사까지 갔다
‘내가 뭐라고’ 머쓱함 가시지 않았다
관객들이 펌프질로 공기를 넣어야
비로소 펴지는 거대풍선 작품 앞
홀린 듯 3시간 동안 펌프 밟았다
그제야 들은 “4만번 밟아야 완성”
미리 알았더라면 덤비지 않았을까
그래도 밟은 만큼은 펴졌을 것이다
나는 여기 있지만 미얀마의 삶들도
더 높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 인근에 있는 한 카페 들머리에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응원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했다고 나는 그날 바로 미얀마와 연대하는 단체에 가입하고, 에스엔에스(SNS)와 커뮤니티에 미얀마 소식을 한국어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헌책을 팔고, 소소한 교정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을 조금씩 후원금으로 헐었다. 그러다 보니 3월27일에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미얀마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는,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 속에 나도 있었다. 그날은 하루 동안 미얀마에서 114명이 군인들 손에 숨진 날이었다(그중 14명은 어린이였다). 추모 행사에 참석한 재한 미얀마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미얀마 시위에서 외치는 구호를 들려주었다.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 (그것이 시민의) 의무.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의무라 해도, 그들이 홀로 외롭게 싸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비라기엔 너무 찼던 비바람을 뚫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쟁취의 의무를 함께해온 오래된 교회당에서 울리던 외국어가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여태까지의 삶에 없던 이런 유난한 마음은, 때론 ‘내가 뭐라고’ 하는 머쓱함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나는 활동가도, 기자도 아니다. 남에게 동참을 호소할 만큼 투철한 시민의식이나 인류애를 꾸리며 살아온 인간도 아니다. 아무도 내게 ‘미얀마 얘기 좀 그만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런 걸 했다고’ 하는 자기검열은 항상 내 안에서 비롯되었다. 꾸역꾸역 소심한 참여를 계속하면서도 내가 나에게 낯을 가리는 듯하던 미묘한 마음. 나는 그걸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작가 이불의 전시를 보러 갔다가 비로소 털어버리고 올 수 있었다. 미술관 로비 한가운데 놓인 이불의 작품 <히드라>는 높이 10m에 지름 7m짜리 풍선이었다. 풍선과 연결된 여러개의 공기 펌프를 밟아서 일으켜 세우는 관객참여형 작품이었다. 조금 앞서 입장했던 사람들이 열심히 펌프를 밟고 있길래, 나도 이게 뭔가 하는 호기심으로 발을 얹어보았다. 툭 깨진 계란처럼 납작하게 꺼져 있던 풍선이 느릿느릿 남실남실 부푸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날 나는 전시실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3시간 내내 그 자리에서 펌프만 밟다가 돌아왔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작가 이불의 개인전 ‘이불-시작’ 프레스 투어에서 참석자들이 펌프를 밟아 공기를 주입해 조각을 완성하는 작품 ‘히드라’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기 한 줌만큼의 변화 그날의 도전은 미완으로 끝이 났다. 발갛게 된 얼굴로 애쓰는 관람객들이 안쓰러웠던지, 폐관 시간이 다가오자 지켜보던 미술관 직원들까지 하나둘 모여 힘을 보태주었다. 그 덕분에 풍선을 거의 다 일으키긴 했지만, 완전히 팽팽하게 펴지는 못한 채로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웃옷을 챙겨 입는 내게 중년의 직원이 말을 건넸다. 옆에서 정장에 구두 차림으로 열심히 펌프를 밟아주던 분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총 4만번을 밟아야 다 펴지게끔 설계가 되어 있어요. 오늘 완성이 됐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4만번,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의 무언가가 탁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려 4만번을 밟아야 완성되는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애초에 저 거대한 풍선에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당장 내 눈에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펌프 한번을 밟으면 4만분의 1만큼의 공기 한 줌이 저 풍선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여기에 있지만, 미얀마의 삶들도 계속 더 높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 활동가들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세 손가락 경례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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