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이런 홀로
부모는 자식의 먼 미래
식물 하나둘 모아 기르다 푹 빠지고
퇴근 뒤에 피곤해도 1시간씩 청소
엄마 닮기 싫어 반대로 행동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한테서 흘러나온다
부모는 자식의 먼 미래
식물 하나둘 모아 기르다 푹 빠지고
퇴근 뒤에 피곤해도 1시간씩 청소
엄마 닮기 싫어 반대로 행동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한테서 흘러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말이 주문처럼 되었는지 그 뒤로 내가 하는 행동 중에 엄마와 닮은 것이 있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아니 하지 말 걸 그랬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했더니 엄마와 닮은 내 행동이 계속 의식됐다. 먼저 앞서 말한 식물 키우기를 보자. 본가에 가면 베란다며 거실이며 하다못해 아파트 현관까지 온갖 식물들로 가득하다. 정확하게 세보지는 않았지만, 화분이 20여개는 됐던 것 같다.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듯이 식물에 물을 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저 말 못 하는 식물이 뭐가 좋아 저러나 싶을 정도였다. 엄마는 식물은 말도 없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 좋다고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어이없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걸 내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40%는 비슷하게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볼일을 보러 가기도 전에 거실에 있는 화분을 들고 가 욕실에서 먼저 물을 주고 있다. 의식하기 전까지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 그게 바로 닮은 행동이었다. 또 다른 닮은 점은 강박적으로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만취하면 씻지도 않고 그냥 잔다고 하지만 내 만취 습관은 청소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뻗고 싶지만 청소기를 돌린다. 그렇게 걸리는 시간이 약 1시간이다. 먼지 구덩이 집에 나를 방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열심히 한다. 로봇청소기 등등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편리한 가전제품이 모든 걸 다 해주는 시대에 우리 집이 아닌데도(전세니까) 대감 집 노비처럼 죽어라 하고 청소하고 있다. 엄마는 더했다. 엄마는 밤늦게 퇴근하든 주말 외출하고 돌아오든 관계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는 게 생활습관이었다. 엄마가 혼자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식 된 도리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돕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됐다고 공부나 하라고 했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엄마가 걸레를 책상 밑에 들이밀면 그렇게나 부담이 되곤 했다. 한번은 아무도 봐주지도 않는데 그만 좀 청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그때 나도 허리 아프고 팔 아프고 다리 아프고 하고 싶지 않은데 청소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 말하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참 보기 싫었는데 이제 그걸 내가 비슷하게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닌데 무서우리만큼 닮아 있었다. _______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부모는 자식의 먼 미래. 그 말처럼 소름 끼치는 말은 없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친척 집에 가면 “○○는 참 아빠 눈을 닮았어~” 혹은 “○○는 엄마 코랑 쏙 닮았네”라는 말을 연례행사처럼 들었는데 그 말이 참 듣기 싫어 친척 집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나일 뿐이며 독립적인 존재인데 내가 부모의 이런 부분과 저런 부분이 닮았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신체 닮음은 유전적 요소가 반영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성격과 행동까지 닮겠는가 싶었는데 그런 부분도 닮을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왜냐면 나는 저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부모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신파극에서 흔히 보듯 난 “엄마(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대사를 주문처럼 외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이러이러한 점이 닮았다는 것에 파르르 떨지 않았을까. 독립 전 부모의 삶이 그리 즐거워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깊은 속사정이야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 먼 미래의 모습이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생각했고 어떻게든 반대로 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가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식물 키우는 것을 즐긴다든지 깨끗한 환경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그런 행동들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이 들으면 꽤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닮고 싶지 않은 게 많다는 것에 대해. 물론 닮고 싶지 않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어르신들을 살갑게 대하고 도우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것, 청결하게 삶을 유지하려는 것 등등 부모의 좋은 점들을 배우고 있다. 다만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닮기 싫다고 애써도 무의식중에 닮아간다는 점이었다. 성격도 취향도 유전의 힘이 작용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닮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친구가 농담처럼 너 닮은 사람과 사귈 수 있다면 사귀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나 같은 사람이 상대라….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달려라 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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