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립도서관이 어떤 작가의 책을 이렇게 제한한 것은 처음이어서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쉬운 결론이지만 어렵게 도달했고, 그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성북정보도서관 세미나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킨 가운데 이진우 성북문화재단 도서관사업부장, 성북구립도서관 소속 15개 도서관 사서 16명이 긴급 사서 회의를 열었다. ‘아동성범죄자 한예찬 작가 도서’가 안건으로 올려졌다. 동화작가 한예찬(53)씨가 아동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며, 이후에도 그의 책이 계속 판매·열람되고 있다는 <한겨레> 보도 내용이 참석자들에게 공유됐다. 작가의 범죄와 그의 작품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타당한지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1시간30분 뒤 사서들이 내린 결론은 한씨가 쓰거나 공저자 또는 엮은이로 참여한 모든 도서의 열람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7일 성북정보도서관, 아리랑도서관 등 15개 성북구립도서관 통합 누리집에는 ‘한예찬씨가 참여한 모든 책의 열람을 제한합니다’라는 공지가 떴다.
도서관 쪽은 열람 제한 결정 과정에서의 고민도 함께 공개했다. “성북구립도서관은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 사건에 있어 논란을 회피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해자의 책이 계속 남아 있음으로써 사건이 계속 거론되거나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합니다. 해당 자료들이 없더라도 대체 가능한 많은 어린이책을 소장 중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계속 배우고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북구립도서관이 특정 도서를 제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의 고민은 열람 제한 공지 첫줄에 녹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옮기는 건 쉽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옮기는 이유는 어렵습니다.”
성북문화재단 도서관기획팀 육지혜 사서는 18일 “그렇기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논란이 있어서, 이슈가 되니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책을 이동시키기보다는 우리가 해당 도서의 이용을 제한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공공도서관으로서 갖는 책무, 사서로서 갖는 책무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또 단순한 이동이 아닌 그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도서관에서 지역과 나눌 수 있는 공동의 메시지와 행동은 무엇이 있을지도 고민했습니다.”
현재 도서관들은 각 도서관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책의 선정, 폐기 등을 결정하는데, 그 기준이 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논란이 되는 작가의 도서 처리 방법은 각 도서관 자율적 결정에 따르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성북구립도서관 15곳. 성북구립노서관 누리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