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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농촌 이주노동자 숙소는 “사람 살면 안된다”는 비닐하우스

등록 2020-12-24 18:30수정 2020-12-24 19:17

“사장은 들은 척도 안해” 혹독한 겨울나기
고용부 “비닐 하우스 숙소 고용허가 불허”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와 간이화장실 모습.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와 간이화장실 모습.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ㄱ(27)씨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옷을 겹겹이 껴입는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곳이지만 ㄱ씨가 사는 비닐하우스 밖에 간이화장실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추워서 화장실을 잘 못 가요.” 여름이면 간이화장실에 가득 찬 배설물 냄새가 비닐하우스 안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로·세로 2.5m 쪽방까지 뚫고 들어온다. “‘사장님’은 (힘들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해요.” 그는 성탄절에도 쪽방에 지친 몸을 기대야 한다.

30살 여성 이주노동자가 지난 20일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다시 힘을 받는다.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이 사는 임시 주거시설이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비닐하우스 숙소는 바닥이 지나치게 얇아 단열이 안 되고 웃풍이 많이 들어온다. 난방시설이라고는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가 전부다”라고 전했다.

화재나 수해 등 재난에도 취약하다. 지난 9월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 이주노동자 다섯명이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김달성 목사는 “샌드위치 패널이라 화재에 약한데 화재감지기나 소화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폭우로 경기도 이천 율면 산양저수지 둑이 붕괴되며 지역 이재민대피소 수용 인원 중 80% 이상이 이주노동자로 나타나기도 했다. 상시 침수 가능성이 있는 농지에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안의 모습.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기숙사 안의 모습.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제공

게다가 이주노동자에게 기숙사로 사용되는 ‘비닐하우스 집’은 불법이다. 지난해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기숙사 구조와 설비’ 및 ‘기숙사의 설치 장소’ 규정이 추가됐다. 자연재해 위험이 있거나 습기나 침수 피해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기숙사를 설치할 수 없고 채광이나 환기, 방재 설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런 ‘불법’ 임시주거시설이나 작업장 부속 공간에 거주하는 농축산어업 종사 이주노동자만 58.1%에 달한다(‘2018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이주와인권연구소·국가인권위원회)

그런데도 이주노동자들은 얼마 안 되는 임금으로 값비싼 기숙사비를 내야 한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숙소비로 하루에 2시간 임금을 내야 하는 곳이 많다. 비닐하우스에 살면서도 한 달 50만원 넘는 금액을 기숙사비로 낸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농축산업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가이드라인’을 통해, 농장주가 임시 주거시설에 숙식을 제공할 경우 월 정액 임금의 13% 이내에서 관련 비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김달성 목사는 “규칙만 있지 농장주 마음대로 받는다. 무법천지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4일 “앞으로 농축산업 외국인근로자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이찬 대표는 “지금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처 방안은 없다”며 “사업주와 이주노동자 사이를 ‘주종관계’로 만드는 고용허가제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항의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바로가기: 추위속 노동, 몸 녹일 곳은 ‘냉골’ 비닐하우스…농촌 이주노동자의 삶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5182.html

지난 20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던 캄보디아 노동자 ㄴ(30)씨의 부검결과 사망원인은 간경화에 의한 간손상으로 나왔다. 보건 전문가들은 간건강이 나쁜 노동자에게 낮은 온도와 열악한 주거시설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24일 “(ㄴ씨) 주검에 대한 부검결과 간경화에 의한 간손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1차소견이 나왔다”며 “타살이나 동사(저체온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1차소견은 부검의가 부검한 뒤 구두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수사 당국은 이처럼 저체온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닌 것으로 봤지만 보건 전문가들은 간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낮은 기온과 열악한 주거 환경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고인은 간경변을 앓다가 식도에 정맥류가 생겨 토혈을 하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볼수 있다”며 “간이 그 정도로 나쁘면 영양관리와 따뜻하고 쾌적한 환경이 중요한데 하우스 숙소에서 질병 부담이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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