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가 한파 경보가 내려진 지난 20일 경기 포천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23일 오후 숨진 노동자가 일하던 비닐하우스와 숙소에서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평안교회 목사가 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농장 대표는 기자들이 찾아오자 경찰을 불러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포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30살 여성 농업 이주노동자 ㄱ씨는 다음달 10일 고향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나 그는 비행기표만 남긴 채 비닐하우스 숙소의 싸늘한 방에서 홀로 죽어갔다.
ㄱ씨는 지난 20일 오후 4시30분께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 노동자 ㄴ씨는 이주단체에 ㄱ씨가 자신의 방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어 자는 줄 알고 깨우려 했더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23일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ㄱ씨가 묵고 있던 숙소의 난방시설 고장이 잦았던 점 등을 근거로 ㄱ씨가 동사(저체온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ㄱ씨의 동료 ㄷ씨가 ‘강추위가 계속됐던 17일 저녁 해당 숙소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난방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포천 일대는 14일부터 영하 10도 이하의 맹추위가 계속되던 중이었다. 함께 지내던 여성 노동자 다섯명 중 세명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18일 다른 노동자의 숙소로 옮겨 주말을 지냈고, ㄱ씨와 한방을 쓰던 ㄴ씨도 19일 숙소를 나갔다고 한다. ㄱ씨만 혼자 남아 19일 밤을 보냈고, 20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19일은 농장이 위치한 포천 일대의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한파경보가 발령됐다.
이날 현장을 찾아보니 ㄱ씨가 묵던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패널로 가건물을 설치한 형태였다. 난방 고장과 관련해 농장 관계자는 <한겨레>에 “여자들이 쓰는 방이라 다른 곳보다 항상 더 따뜻하게 해줬다”며 “소문이 이상하게 난 것뿐”이라고 동사 의혹을 부인했다.
ㄱ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24일 실시할 예정인 부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동료들은 ㄱ씨가 “평소 질병이 없고 건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서 혈흔이 발견돼 경찰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각혈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검체 검사를 의뢰했으나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숨진 ㄱ씨는 2016년 3월 비전문 외국인노동자 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의정부에서 일을 시작했던 ㄱ씨는 2018년 10월께 사업장 변경을 신청해 지금의 일터로 옮겼다. ㄱ씨는 최장 허용 노동기간인 4년10개월을 채우고 내년 1월10일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ㄱ씨가 숨진 사실은 동료노동자와 대사관을 통해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노동자의 숙소 문제는 계속 지적됐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이원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 1만5773곳 중 고용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숙소 최저기준(냉난방시설, 소방시설 마련 등)에 못 미치는 곳이 5003곳(31.7%)에 이른다.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농업이주여성노동자 사망사건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어떻게 21세기에 노동자가 숙소에서 얼어 죽는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책위는 정부에 대해 “피해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유족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라”며 “비닐하우스, 농막, 조립식 패널 등 불법 임시시설 숙소를 금지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포천/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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