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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등록 2020-12-16 15:29수정 2021-07-06 15:34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12년…나눔이 희망으로

지난해 8월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에 소개된 지은이
8살 때 두개인두종 진단받고 수술 뒤 앞이 보이지 않아
6학년 때 운명처럼 만난 플루트 청력·기억력 의존해 연주
보도 뒤 모인 도움의 손길로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돼
지난해&nbsp;나눔꽃&nbsp;캠페인 소개됐던&nbsp;이지은(가명)양이&nbsp;지난&nbsp;3일&nbsp;오후&nbsp;서울&nbsp;종로구&nbsp;수애뇨339에서&nbsp;열린&nbsp;월드비전&nbsp;70주&nbsp;기념&nbsp;랜선&nbsp;스토리&nbsp;콘서트&nbsp;‘70+꿈,&nbsp;길을&nbsp;걷다’에서&nbsp;축하&nbsp;꽃다발을&nbsp;받은&nbsp;뒤&nbsp;활짝&nbsp;웃고&nbsp;있다.&nbsp;백소아&nbsp;기자&nbsp;thanks@hani.co.kr&nbsp;
지난해 나눔꽃 캠페인 소개됐던 이지은(가명)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애뇨339에서 열린 월드비전 70주 기념 랜선 스토리 콘서트 ‘70+꿈, 길을 걷다’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귀에 익숙한 팝송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의 멜로디가 맑고 투명한 플루트 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지은(가명·16)이는 선율과 하나가 된 듯 연주에 집중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수애뇨339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월드비전 70주년 기념 콘서트 ‘70+ 꿈, 길을 걷다’ 무대에 선 지은이의 표정은 편안했다. 한 곡 연주를 마친 뒤 지은이는 “안녕하세요. 내일이 아름다운 플루티스트가 되고 싶은 지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 좌우명이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이 말인데요. 오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는데 오늘을 받은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받았지만 내일은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늘 이 시간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이야기를 마친 지은이 다시 플루트를 손에 잡았다. 어느새 지은이는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 멜로디와 하나가 됐다.

지은이는 지난해 8월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에 소개됐다. 8살 때부터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한 지은이는 두개인두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한 뒤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병은 뇌하수체 부위에 발생하는 뇌종양의 일종이다. 주변의 뇌 구조물이 시신경 등을 압박해 시력 저하를 동반한다. 호르몬 분비를 관장하는 뇌하수체가 제구실을 하지 못해 몸에서 각종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지은이에게 엄마는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악기를 하나둘 접하게 했고, 월드비전 등 주변의 도움 등으로 지은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운명처럼 플루트를 만났다. 지은이는 “플루트 소리를 들으면 위로도 되고,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점자로 된 악보가 있지만 많지 않아 지은이는 청력과 기억력에 의존해 플루트를 연주하면서도 플루티스트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현실은 지은이가 꿈을 지키기에 너무나 어렵기만 하다. 지은이 수술로 가족은 수천만원의 빚을 짊어지게 됐다. 지은이가 한달에 한번꼴로 가는 병원만 신경외과와 안과, 이비인후과, 내분비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 6곳이나 된다. 부부가 종일 떡집 등에서 일하지만 한창 클 나이인 4남매의 생활비를 대기엔 빠듯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집이었다. 2층에 있는 낡은 집은 성한 곳이 없었다. 33.1㎡(10평) 남짓한 집은 6명의 가족에게 비좁았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 10개 이상을 올라야 지은이네 이층집에 다다르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지은이에게는 오가는 일 자체가 위험이었다. 계단 2개를 내려가야 있는 화장실은 지은이에게 특히 위험했다.

<한겨레> 나눔꽃 보도 뒤 2039만원의 도움의 손길이 모였다. 1년이 지난 현재 지은이와 가족의 삶은 달라졌다. 지난 6월 1층에 있는 집으로 지은이네 가족은 이사했다. 더이상 지은이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게 됐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이사한 집이 지은이가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학교와 가까워진 게 무엇보다 기쁘다. “지은이는 면역력이 약해 열만 나도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이전에는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씩 다녔어요. 걱정이 되죠. 코로나 때문에 자주 가진 못해도 학교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버스를 안 타게 된 게 정말 좋아요.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지은이가 아프지 않고 무사히 잘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은이에게 소중한 점자정보단말기도 후원금으로 고쳤다. 그동안 잔고장이 많았는데 올해 크게 고장이 났다. 수리비가 만만치 않았는데 후원금 덕분에 제대로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지금도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에서 활동하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지은이네 가족에게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떡집은 장사가 잘 안되고, 문도 일찍 닫아야 한다. 현재 152.7cm인 지은이 키가 153cm를 넘으면 매일 맞아야 하는 성장호르몬 주사가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면 석달치 주사에 200만원이 든다.

그래도 지은이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하는 플루티스트’를 꿈꾸며 한걸음씩 나아간다. 도움과 응원의 손길이 지은에게 힘을 준다고 했다. 지은이는 “제게 관심 주고 손 내밀어 주는 분들이 있어서 따뜻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연주한 ‘유 레이즈 미 업’은 노랫말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 지은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다. 이 노래의 노랫말 가운데 일부를 옮긴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줘/산에 우뚝 설 수 있고/당신이 나를 일으켜 줘/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건널 수 있어요/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나는 강해져요/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면/나는 더 큰 내가 돼요.’

2009년 첫발을 내디뎌 12년차를 맞는 <한겨레>의 나눔꽃 캠페인이 걸어온 길도 이 노랫말과 겹쳐진다. 나눔꽃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움의 손길을 받고 일어선 이들은 폭풍우 치는 현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은이처럼 꿈을 좇는 수많은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했다.

나눔꽃 캠페인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한겨레>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취재해 지면과 온라인 기사로 알려,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회공헌 캠페인이다. 구호·시민단체들이 참여해 <한겨레>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하고, 후원으로 연결하는 ‘구호 플랫폼’ 역할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월드비전, 아름다운 재단, 참여연대의 참여를 시작으로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해 나눔꽃을 피웠다. 굿네이버스, 대한적십자사, 바보의 나눔, 보건복지부, 사랑의 열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함께일하는재단, 해피빈 등이 참여했다. 참여한 단체가 다양한 만큼 성별·연령·국적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소개했다. 과거 나눔꽃에서 소개한 기사 제목만 봐도 나눔꽃이 손을 내민 이들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학자금 빚의 굴레. 신용불량자 구직자 김연지씨’ ‘식도가 녹아내린 남편…’ ‘남편 사별 뒤 온 위기…낯선 땅에서 세 아이 지켜낼 수 있을까요? 필리핀 이주여성 메릴린’ ‘뇌 질환 희귀 불치병 타고난 남매’….

최근 5년간(2015~2020년) 모금 집계를 보면 총 3만5837명의 시민들이 나눔꽃에 참여해 약 11억5533만원이 모였다. 이 돈은 모두 46명의 아이·청소년·어른과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됐다. 십시일반 모인 돈은 이들이 수술비나 병원비를 마련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또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했다.

지은이는 ‘걱정말아요 그대’의 노랫말도 좋아한다. 지은이와 후원자, <한겨레> 나눔꽃에 함께하는 이들 모두 이 노래를 같이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2021년에도 활짝 필 나눔꽃을 떠올리며.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김윤주 사회부 사건팀 기자 kyj@hani.co.kr

나눔꽃 캠페인은…

2009년에 첫발을 내딛고 올해 12년차를 맞는 <한겨레> 사회공헌 캠페인입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구호·시민 단체들과 연대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하고, 후원으로 연결하는 ‘구호 플랫폼’ 역할로 자리매김한 캠페인에는 독자를 비롯하여 시민 3만여명이 참여해 성별·연령·국적을 가리지 않고 나눔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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