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화재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앞에서 구급차들이 사상자 이송을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못 찾는대, 못 찾는대.”
29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현장에서 연락이 끊긴 아들과 남편을 찾기 위해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을 찾은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은 새까만 연기에 심하게 그을린 탓에 신원확인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 범위가 넓어서 모든 시신을 수습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천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한겨레>에 “아들이 이천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3일 일하기로 했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아직 신원 확인 중이라고 하는데 살았으면 벌써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잘못됐을까봐 불안하다”며 초조해했다.
이천병원에 마련된 유족대기소에는 신원확인 결과를 기다리는 희생자 가족 10여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사망자 중 가장 많은 12명이 이천병원으로 후송됐다. 화재현장에서 연락이 끊긴 가족의 생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마스크를 쓴채 벌겋게 충혈된 눈만 끔뻑거렸다. 일부 가족들은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9시20분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디엔에이(DNA) 채취를 완료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알려드리겠다’는 병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더욱 초조해했다. 한 유족은 “(결과를) 기다리는 게 너무 어렵다. 먼저 온 사람들은 그래도 가족이 알아볼 수 있으니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보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다. 병원 관계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육안으로 식별은 불가능하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소방관들이 29일 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손전등으로 현장을 비추며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희생자들은 하늘공원 장례식장(6명), 효자원(4명), 송산장례식장(4명), 가남베스트요양병원(3명), 곤지암농협장례식장(3명), 곤지암연세장례식장(3명), 장호원 요양병원(3명) 등으로 후송됐다. 화재 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을 고용했던 도급업체 관계자들도 근로계약서를 들고 병원과 장례식장을 분주하게 오갔다. 희생자가 확인되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을 전했다. 현장에서 연기를 마시거나 화상을 입어 병원에 옮겨진 노동자들은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 중 한 명은 다른 직원과 통화하며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그렇게 돼서 어떡해...”라며 눈물을 훔쳤다.
전국 건설노조 관계자는 <한겨레>에 “40명의 목숨이 희생됐던 2008년 이천 코리아 냉동물류창고 화재 이후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음에도 안타까운 사고가 또 일어났다”며 “화재 현장에서 건설현장 안전수칙이 잘 지켜졌는지 살펴보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당국에도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천/박윤경,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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