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영상 갈무리
4층짜리 대형 물류창고의 창에서 시커먼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연기는 사고 현장에서 1㎞ 떨어진 남이천 나들목(IC)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높이 치솟았고, 인근 도로에까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29일 오후 1시30분께 짙은 연기와 불꽃에 휩싸였던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의 물류센터는 불이 난 지 5시간여 만인 저녁 6시41분 완전히 진화됐지만 38명(저녁 8시30분 현재)의 목숨을 앗아가고 10명의 부상자를 냈다. 아직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이들이 많아 소방당국은 희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아남아 탈출한 이들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찼다”고 말했고, 멀리서 지켜본 목격자들은 “바람에 연기가 다시 건물에 들어차 사고를 키운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저녁 7시께 화마가 완전히 제압된 이천 물류창고 외벽은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공사 중인 신축 건물이지만 뼈대는 일부 내려앉고 건물 내부는 몽땅 타 잔해만 남은 상태였다. 불이 꺼진 뒤에도 유독성 물질이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연기가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건물 맞은편 공터에는 급박한 탈출 상황을 말해주듯 검게 그을린 마스크와 작업용 장갑 등이 나뒹굴었고, 연락이 닿지 않는 직원들을 수소문하느라 업체 관계자들은 발을 구르고 있었다.
29일 저녁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이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소방당국은 펌프차 등 장비 70여대와 소방관 등 150여명을 투입해 간신히 불을 잡은 뒤 연락이 끊긴 노동자들을 수색하느라 검은 잔해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류창고 화재의 희생자는 낮 1시32분께 신고를 받은 소방인력이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밖에서부터 발견됐다. 소방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탈출을 하다가 숨진 것 같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희생자는 지하층부터 지상 1~4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층에서 발견됐는데, 3층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당시 건물에선 9개 업체에서 나온 78명의 노동자가 전기, 도장 등 건축 후반설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 인부들이라서 명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관계자는 “물류창고 관계자는 없었고, 대부분 작업자들”이라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 2층 계단 타일 작업을 하다 탈출한 한 노동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계단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자마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부랴부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연기 때문에 계단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피하는 와중에 폭발음이 여러 차례 들렸다”고 말했다. 건물 밖에서 화재사고를 목격한 한 시민 역시 “불이 났을 때 최소 10차례 이상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시민들이 밖에 나와 물류창고 쪽을 봤을 때 건물은 이미 화염에 휩싸인 상태였다. 일부 노동자들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려고 하다가 갑자기 번진 불에 놀라 뛰쳐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연기를 마시거나 화상을 입어 병원에 옮겨진 피해 노동자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천/강재구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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