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을 하고 있는 쿠팡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입사 4주차에 접어든 40대 신입 ‘쿠팡맨’이 새벽 배송에 투입됐다가 쓰러져 끝내 숨졌다. 동료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늘어난 주문 물량이 배송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몰리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와 동료 쿠팡맨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쿠팡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인 김아무개(46)씨는 지난 12일 새벽 2시께 경기도 안산시의 한 빌라 4~5층 사이 계단에서 쓰러졌다. 김씨의 배송이 갑자기 멈춘 걸 이상하게 생각한 동료들이 구역 내 마지막 배송지에 찾아갔다가 쓰러진 김씨를 발견했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달 14일 1년 계약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나흘 동안 교육과 동행 배송 등으로 일을 배운 뒤, 18일부터 단독 배송에 나서 지난주로 입사 4주차에 접어든 상태였다.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7시까지 배송구역을 2번 도는 일을 했다. 김한별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은 “김씨가 일한 구역은 노동조합 소속 쿠팡맨이 없는 곳이어서 휴게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정도의 빌라 건물을 계속 오르내리는 배송 업무를 하다 쓰러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쿠팡맨 일을 시작한 뒤 가족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서 너무 비인간적이고 힘들다”는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 쿠팡맨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회사가 무리하게 물량을 밀어 넣었다”고 주장했다. 한 쿠팡맨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입사라면 코로나19 이후 많게는 50% 가까이 늘어난 물량을 기본 삼아 일을 시작했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최대 물량이 250개 정도였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하루 300개가 보통이 됐고, 400~500개를 배정받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쌀과 물, 애완동물 사료 등 고중량 생필품 중심의 배송 물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 <한겨레>가 입수한 쿠팡맨들의 배송 물량 ‘배정 업무표’를 보면, 대구 지역 쿠팡맨들은 코로나19 이전인 지난해 11월 1인당 하루 ‘166~377개’의 물량을 배정받았다가, 연말연시 선물 배송 등으로 1년 중 가장 물량이 많은 기간인 12월 하순에는 ‘246~422개’ 사이의 물량을 배정받았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달 중순 이후 ‘최대 505개’로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가 3월 초순까지 1인당 300개 안팎을 배송하는 흐름이 유지됐다. 김씨가 숨진 안산 지역과 특성이 비슷한 경기도 수원의 한 쿠팡맨도 2월19일부터 23일까지 하루 평균 377개의 물량을 배정받았고, 이런 추세는 3월 초까지 이어졌다. 한 6년차 쿠팡맨은 “하루 300개 안팎은 명절 같은 특수한 국면에서나 소화하는 물량으로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회사가 그 물량을 계속 밀어 넣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런 조처에 저항할 수 없고, 결국 누구라도 고장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또 다른 쿠팡맨도 “특히 신입은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 눈도장도 찍어야 해서 시간 압박이 더 심하다”며 “최소 한 시간은 일찍 출근해 미리 물량을 싣고 밥도 안 먹고 휴게시간도 없이 종일 미친 듯이 배송을 해야 일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이에 대해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물량은 자기 차를 이용해 물건을 배송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쿠팡 플렉서’ 고용을 평소보다 3배 늘려서 해결하고 있다”며 “쿠팡은 유족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배송인력의 동선과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물량을 배정하고 있고, 법정 근로시간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완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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