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120 경기도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코로나19를 예방하려고 옆자리를 비워둔 채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50·여성)씨는 수도권 최대 집단감염이 벌어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에이스손해보험 고객센터의 상담원이었다. 이 콜센터의 근무시간은 주말과 공휴일을 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은평구가 공개한 이동경로를 보면, 그는 지난 5일과 6일 아침 7시15분께 은평구 집에서 나와 콜센터에서 종일 일한 뒤 저녁 7시50분께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퇴근길에 올랐다.
주말에도 ㄱ씨는 쉬지 않고 ‘투잡’을 뛰었다. 지난주 토요일(7일)은 오후 1시20분부터 밤 10시까지, 일요일(8일)에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ㄱ씨가 2년 넘게 일했다는 이 편의점 점주는 ㄱ씨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손이 빨라 일을 잘했다. 성실한 사람”이라며 “(ㄱ씨가) 주말에 무료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성실한 ㄱ씨는 그렇게 일주일 내내 일했다. 하루도 쉬지 못한 만큼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그는 지난 9일 저녁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투잡을 뛴 건 ㄱ씨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 확진된 ㄴ씨(40대·여성)도 출근 전 새벽 시간대에 여의도 증권가에서 녹즙 배달사원으로 일했다. ‘새벽 여의도, 낮 구로’ 생활을 1년도 훨씬 넘게 했다. 영등포구청 쪽은 “ㄴ씨가 (확진 직전인) 지난 6일까지 콜센터에서 근무한 뒤 퇴사했지만, 이후에도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등을 돌며 배달 일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12일 구로구 콜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넘긴 가운데, ㄱ씨와 ㄴ씨처럼 부업 등을 위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사례가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진 이동경로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주업인 콜센터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적정 수준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어렵다 보니, 추가 소득을 올리려고 새벽과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건강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휴식시간도 갖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콜센터에서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남아 있는 에이스손해보험 고객센터의 채용공고를 보면, 2018년 12월 기준으로 상담원들은 고정급 157만4000원에 인센티브를 더해 “평균 170만원~최대 2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고 기재돼 있다. 고정급은 그해 월 기준 최저임금(157만3770원) 수준이고, 이들이 제시한 인센티브 등의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려고 콜센터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하고, 이런 원청과 2~3년마다 재계약을 맺어야 하는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최소화해 저가로 입찰을 따낸다. 게다가 이 콜센터는 기본적인 급여체계가 최저임금과 동일한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더한 방식인 만큼, 이들의 임금은 딱 최저임금 인상분만큼만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 사이 월 최저임금은 22만1540원 올랐다. ㄱ씨의 경우엔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서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았다.
이 콜센터 직원인 아들한테서 감염된 ㄷ(67·여성)씨의 사례도, 저임금 노동자가 감염병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ㄷ씨는 국가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 <한국방송>(KBS)의 자회사 소속으로, 1년마다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하는 청소노동자다. 새벽 4~5시께 출근하는 ㄷ씨의 임금 역시 최저임금 수준이다.
임금을 보전하려고 시간을 쪼개 부업을 하면 그만큼 감염 위험은 높아진다. 고령자는 이른 새벽에 일하는 것도 건강에 부담이 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동선이 길어져 위험 요소와 접촉 자체가 많아지고 그만큼 감염병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쉴 시간이 부족하면 몸이 (건강상태를) 회복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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