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 기수 사망 100일 아내 오은주씨 인터뷰 지난달 27일 종로구청, 고 문중원 기수 추모공간 일부 강제 철거 “코로나 때문이라면서 천명 넘는 사람들 몰려온 건 모순” 한국마사회 부조리 고발하고 지난해 11월 목숨 끊은 문중원 기수 100일 동안 사흘에 한 번씩 관 속 드라이아이스 교체하는 가족들 “날씨 따듯해지는 게 더 가슴 아파” 오은주씨 단식돌입
오는 7일은 고 문중원 기수가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아내 오은주씨가 집을 떠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머무른 지 72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주먹을 꼭 쥔 채 눈도 못 감고 떠난 남편.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아홉 살, 일곱 살 아이 둘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던 은주씨는 짐을 쌌습니다. 그렇게 길에서 한겨울을 보냈지만, 은주씨는 여전히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목숨과 맞바꾸며 폭로했던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들이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7일에는 종로구청 직원과 용역들이 남편을 위해 마련한 추모공간을 부수고, 가족들을 짓밟는 모습을 지켜보다 끝내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19로부터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다” 서울시는 철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말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여론도 호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시국이 이러니 집회는 중단해달라’는 의견이 상당합니다. 코로나19에 묻혀 은주씨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 와중에 눈치 없이 봄이 옵니다. 사흘 걸러 한 번씩 문중원 기수 관 속 드라이아이스를 교체하고 있는 가족들은 날이 따뜻해지면 혹여 그가 ‘잘못되지 않을까’ 마음이 바쁘기만 합니다. <폰터뷰>가 은주씨에게 전화를 건 이유입니다.
Q. 지난달 27일 종로구청이 추모공간을 강제 철거할 때 실신했는데, 당시 상황과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A. 행정대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서울시·종로구청과 합의가 된 거로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고 아침 7시에 강제 철거가 시작됐어요. 수많은 용역과 종로구청 공무원들이 몰려와서는, 거의 쓰레기 더미 치우듯 (저희를) 다 끌어내고 내동댕이쳤어요. 칼과 가위 다 사용해서 무자비하게 천막을 뜯어냈고요. 많은 사람이 다쳤습니다. (종로구청과 용역들이) 제 머리 위 천막 뼈대를 끌어내리는 상황에서 아빠가 저를 보호하려다가 갈비뼈를 다치셨어요. 기침 한 번 하는데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시더라고요. ‘저분은 유가족이다’라고 사람들이 소리를 치는데도 저희 시어머니를 끌어내 버렸고요. 유가족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날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도 오셨는데 “나도 아들 잃고 힘겨운 투쟁을 했지만 이런 투쟁은 처음이다. 너무 말도 안 되고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고 하셨어요. 남편 간 지 거의 100일이 다 됐지만, (강제 철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제가 기자회견을 하다가 온몸에 힘이 빠져 실신했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 ※ 서울시와 종로구청 발표에 따르면 이날 종로구청·종로경찰서·용역 포함 1350명이 철거작업에 투입됐다. 이날 강제 철거로 고 문중원 기수 장인인 오준식씨와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6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정부청사와 세종로 공원 사이 교통섬에 위치한 철거된 천막은 운전자들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상당했고, 많을 때는 100명 가까이 운집해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어 철거했을 뿐, 청와대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종로구청이 단독으로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청와대의 결정이 아니고서는 이 갑작스러운 강제철거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있다. )
Q. 서울시는 강제 철거 직후 “코로나19확산을 대비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A.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강제 철거를 하기 위해서 천명 넘는 사람들이 왔거든요. 이런데도 이게 과연 코로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저는 많은 의심이 들었고 모순이다 싶었어요. 특히 용역과 공무원들이 눈에 살기를 띠고 저희를 쓰레기더미 치우듯 하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요. 이 모든 걸 정부가 지시했다는 부분에서, 한 국민의 슬픔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커서 정말 실망했습니다. 철거된 천막은 5.5평 크기여서 다섯 명만 들어서도 꽉 찰 정도로 공간이 협소했고요. 그래도 저희는 코로나19가 너무 심각하니까 안에 방역도 하고, 시민 분향소 찾는 분들께는 손 소독제, 마스크 사용을 요구하면서 정부 지침을 최대한 따랐어요. 지난달 22일에 하려던 희망버스 집회도 다 연기했어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면 아무래도 위험하니까요. 그런데도 그 작은 공간을 뜯어내 버렸죠.
서울 종로구청 공무원과 용역 인력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추모 농성장 천막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실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Q.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워낙 커서, 집회를 잠시 중단했으면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A. 저희 아이들도 지금 서울에 올라와 있는 상태예요. (※오은주씨와 아이들은 시민대책위가 마련해 준 숙소에 머무르고 있다) 저희도 코로나19가 무서워요. 그래서 사람 많이 모이는 집회는 거의 다 취소를 한 상태이고요. 정말 집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서너명이 모여서 108배를 한다든지, 그런 부분만 하고 마스크 다 끼고서 조심하면서 하거든요. 국민들께서는 저희가 억지를 부린다, 정부 말을 안 듣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걸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TV 갈무리
Q. 고 문중원 기수를 가장 절망스럽게 했던 건 한국마사회의 어떤 관행이었나요?
A. 저희 남편은 15년 동안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기수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조교사로 전향하기 위해 준비를 했고 결국 합격했는데 ‘마사 대부’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번 낙방을 했습니다. 이 마사 대부를 심사하고 채점하는 건 한국마사회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난무했기 때문에 남편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특히 남편이 유서에 이름을 적시한 ○○○처장이 있습니다. 이 처장이 특정 관리사에게 ‘마사 대부 심사를 받으면 내가 너를 뽑아주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결국 그분이 소문대로 마사 대부를 받게 되고 남편은 떨어졌습니다. 이 내용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 수사 진행 중이라고만 하고요. 해당 처장은 한국마사회로부터 직위 부여 해제(보직수당과 감봉이 모두 깎이는 직위 해제와 달리, 직위 부여 해제는 보직수당만 감액된다) 라는 경미한 처벌을 받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 기수는 말을 타는 선수, 마필 관리사는 말을 훈련·관리하는 관리자, 조교사는 기수와 마필 관리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종의 감독이다. 마주와 말 위탁 계약을 체결한 조교사가 기수·관리사와 계약을 체결해 경마에 참가한다. 즉, 기수·마필 관리사·조교사 모두 계약관계일 뿐 한국마사회 ‘소속’으로 일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마사회는 ‘고용’은 하지 않지만 면허를 발급할 ‘권한’은 가진다. 조교사 면허를 교부·갱신하고, 면허를 취득한 조교사를 심사해 마사를 대부하는 권한이 마사회에 있다. 고 문중원 기수는 기수였다가 2015년 조교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한국마사회가 권한을 갖고 있는 ‘마사 대부’ 심사를 수차례 통과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기수로 말을 탈 땐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났다(…) 그래서 그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조교사 면허를 받은 건데 마사 대부를 받으려면 또다시 시험을 보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그러니 마사회에 밉보이고 높으신 분들과 친분이 없으면 (마사 대부 받는 게) 안 되는 거지”라고 유서에 적었다. )
Q. 어떤 부분이 해결돼야 장례를 치를 수 있을까요?
A. 첫 번째로 남편을 죽음으로 몬 그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하고, 그다음이 진상규명과 구조적 문제 해결입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선진 경마’라는 제도가 있어요. 선진 경마는 곧 무한경쟁인데, 성적을 잘 내지 못하거나 조교사의 부정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하는 분들은 (기수 간) 빈부 격차가 워낙 커져서 결국에는 이런 선택(자살)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못 바꾸면 제8의 문중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이 지금 운구차에 있다 보니까 사흘에 한 번씩 관에다가 드라이아이스를 채워줘야 해요. 날이 따뜻해지면 드라이아이스가 금방 녹을 테니, 혹여 남편이 잘못되지 않을까 해서 저는 더 가슴이 아파요.
(※실제로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만 2005년 개장 이후 7명의 기수·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 사망한 고 박진희 기수는 ‘열심히 훈련해도 말 탈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조교사와 관리사, 선배 기수들의 질책 뿐이다. 이 세계는 너무 경쟁적이다’라는 유서를, 2011년 사망한 박용석 마필관리사는 “입사 이래 다섯 번의 골절 한 번의 뇌진탕 등 수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 한 달에 많으면 12번 당직을 서야했고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생활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서울 종로구청 공무원과 용역 인력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추모 농성장 천막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가 뜯겨지는 비닐천막을 붙잡은 채 마지막까지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
Q. 아이들은 어떤 상태인가요?
A.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요즘은 저와 함께 있는데요. 제가 옆에 있는데도 잘 때 누우면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고 울거든요. 실은 아이들이 제일 안쓰럽고 가여워요. 저도 하루빨리 아이들이랑 집에 내려가서 비록 아빠는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2월 22일 희망버스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취소했잖아요. 모두가 안전하게 투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남편 사망 100일째 되는 날인 3월 7일 ‘죽음을 멈추는 1000대 차량 행진’을 하기로 했어요. 과천 경마공원에 집결한 뒤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 자택을 거쳐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일정입니다. 제가 (남편을 떠나보내기 전에 그랬듯) 많은 분들이 한국마사회가 어떤 곳인지 모르실 겁니다. 저희 유가족이 청년들의 미래인 한국마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으니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은주씨는 폰터뷰 녹화 다음 날인 4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
취재: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연출: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