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희 ㅣ 공권력감시대응팀·인권운동공간 활
지난 2월28일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추모 공간 강제 철거, 유가족 폭행 규탄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은 경찰에 의해 열리지 못했다. 당일 즐비한 경찰 버스와 따라오며 ‘어디 가느냐?’고 묻는 경찰을 마주치면서도 기자회견이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경찰은 기자회견과 108배는 집회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각각 30분이면 끝날 것을 못 열게 하자 유가족의 울분이 터졌다. 사람들은 종일 청와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연이틀 경찰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태도가 비 내리는 거리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가로막힌 거리에 서니 2017년 경찰의 약속이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권 조정 현안을 두고 경찰의 인권침해 이미지를 불식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경찰은 바로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인권경찰을 향한 첫걸음은 집회·시위 대응 방식을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집회·시위 자유 보장을 위한 권고’를 발표했다. 권고의 기본 정신은 ‘집회·시위는 통제·관리의 대상이 아닌 헌법에 기초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실현’이다. 집회 통제 수단인 집시법이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 개정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평화적인 집회 보장이 경찰의 책무임을 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청와대 앞 기자회견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개혁위원회는 기자회견은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설사 집회로 판단될 여지가 있더라도 평화적으로 진행된다면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우선 보장하라는 것이다.
경찰이 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기자회견이든 108배든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것도 소규모 인원이 짧은 시간에 진행하는 헌법적 권리를 금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인권침해라고 규정하고 용산 철거민과 쌍용차 노동자, 밀양과 강정 주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한 게 불과 반년 전이다. 과거 정권의 권력을 위한 공권력은 인권의 원칙이 없었다. 오히려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론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안전과 경제발전, 국책사업 등의 이유로 공권력을 동원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진압했던 과거와 문재인 정부의 현재는 얼마나 다른가? 코로나19의 위기를 핑계 삼아 정부가 내심 봉쇄하고 싶은 것은 공공기관 한국마사회의 공공성 회복과 적폐청산 요구,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유엔은 1979년 공권력의 중요한 원칙을 담은 ‘법집행 공직자의 행동강령’을 결의했다. 법집행 공직자는 자신의 의무를 행사함에 있어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며, 모든 사람의 인권을 유지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과 사회 안전을 위한 공권력의 행사가 인권 존중의 원칙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권침해 행위에 국가 안전에 대한 위협이나 상관의 명령과 같은 이유를 댈 수 없다. 이런 행위는 인간 존엄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인권을 존중하는 공권력이라면 기자회견이나 108배가 아닌 용역의 폭력을 막고 중단시켰어야 했다. 시민의 생존과 안녕에 필요한 것들을 훼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정부라면 추모 공간을 강제 철거하기보다 유가족을 위로하고 코로나19에도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상의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한국마사회가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야 했다.
코로나19와 함께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전부터 삶과 노동에서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며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일시적인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안전의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평등할수록 안전하고, 평등한 삶을 보증하는 공공성이 사회에 뿌리내려야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회복해 평등한 노동과 삶을 만들려는 연대의 공간과 실천을 안전을 이유로 파괴하는 이 정부가 추구하는 안전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안전을 내세우며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하고 폭력을 동원해 일방적인 통제를 강요하는 사회에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안전의 권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공간과 사람들을 없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