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수사 중인 검찰이 ‘수사를 받는 전·현직 임원들이 회삿돈으로 법률적 조력을 받는 문제’에 대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점검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 삼성 준법감시위가 나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1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물산 합병 과정과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4부(부장 이복현)는 최근 삼성 쪽에 공문을 보내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전·현직 경영진에 대해 삼성물산 등이 회삿돈을 들여 법률적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 문제를 신설될 준법감시위에서 점검할 것인지’ 묻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준법감시위는 이재용 부회장 뇌물 의혹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만들라’고 요구해 최근 삼성이 꾸린 기구로, ‘이 부회장 감형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지난 7일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는 삼성물산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왔다가, 검찰이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해 조사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를 고의로 낮춰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를 받는데, ‘피의자’인 김 전 대표가 ‘피해자’ 격인 회사 변호사의 법률 조력을 받으려 한 셈이기 때문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협 회장)는 “같은 변호인이 외형상 서로 이익이 충돌되는 삼성물산과 김 전 대표를 동시에 대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윤리장전 22조는 “동일한 사건에 관해 상대방을 대리하고 있는 경우”와 “동일 사건에서 둘 이상의 의뢰인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수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15일 다른 변호인을 선임해 다시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이번 공문이 단순 문제 제기를 넘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삼성 쪽에 보낸 공문에는 ‘준법감시위가 불법적인 승계 작업 등 과거 문제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번 수사와 관련된 자료가 확인되면 협조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준법감시위가 변호사 선임 문제나 과거 비위 조사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면피용 준법감시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한 기업소송 전문 변호사는 “검찰의 문제 제기가 준법감시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조기에 ‘테스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 준법감시위 쪽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은 상황이라 검찰이 삼성에 보낸 공문 내용을 공유받지 못했다”며 “출범 뒤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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