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관악구 탠디 본사에서 점거 농성중인 제화 노동자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탠디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들은 지난달 26일부터 공임단가 인상과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점거 농성 중이다. 30만원짜리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제화 노동자들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6500원∼7000원,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이다. 백소아 기자
내일(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전하는 날이죠. 일이 너무 바빠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 가족을 바로 눈 앞에 두고도 제대로 만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12일째 본사 건물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탠디 하청업체 제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제화공들은 켤레당 6500원~7000원 수준인 공임을 2000원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구두를 만든 대가로 받는 공임은 2011년 이후 무려 8년째 동결된 상태입니다. 최저임금이 2011년 4320원에서 올해 7530원으로 오르는 동안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은 제자리걸음이었던 셈입니다.
농성이 시작된 뒤 서울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출입문은 철제 셔터가 굳게 내려졌고, 본사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문 밖은 소형 트럭과 탑차로 막혔습니다. 이 때문에 탠디 쪽 직원이 아닌 외부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한 번 건물을 빠져나간 사람은 다시 농성장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농성을 포기하거나 반대로 농성장을 지킬 생각이라면 사실상 ‘셀프감금’을 자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4일 본사에서 농성 중인 제화노동자 김병옥(58)씨의 딸 김아무개(26)씨는 아버지가 있는 탠디 본사 앞을 찾았습니다. 이날은 농성 9일만에 회사 쪽에서 노동자들과 첫 대화를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김씨의 손에는 농성 중인 아버지와 동료들에게 전달할 김밥 50줄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타지 생활을 하느라 일련의 상황을 전해 듣기만 했던 딸은 창문 너머에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목이 메였습니다. 다음은 김씨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중 일부입니다.
“아빠가 집에 못 돌아오고 본사 건물에 갇혀 지낸 지가 벌써 9일째야. 나는 파업이 빨리 끝날 줄 알았어. 그래서 처음에는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아빠가 집에 못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어. 내가 늦게 알아서 너무 너무 미안해. 파업한 지 한 달이 지났네? 여태 한 번도 만나주지 않던 회사가 오늘 오전에 만나서 한 말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직접고용은 고사하고 (공임을) 500원 올려준다고? 500원, 1000원 쉽게 깎으면서 겨우 500원 올려준다고? 나는 아빠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중략) 아빠 지금까지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고, 조금만 더 힘내세요. 화이팅! 아빠 그동안 정말 힘들게 돈 벌어서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김씨는 이날 건물 앞에서 편지를 읽다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창문 밖에 있는 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만 있어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김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딸의 편지를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들도 김씨의 딸이 쓴 편지 내용을 들으며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열흘 가까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건물 안 폭 1m의 좁은 복도에서 웅크린 채 생활하는 자신의 처지보다 딸의 눈물에 더 아파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유명 수제화 브랜드 탠디의 하청업체 소속 제화 노동자 60여명이 서울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3층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유로운 건물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역시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입니다. 농성에 참여한 제화공들은 막내인 박완규씨가 마흔 아홉살(1969년생), 제일 큰 형님인 채동식씨가 예순 여덟살(1950년생)로 모두 50~60대입니다. 농성 첫 날, 노동자 60여명이 본사 3층에 들어갔지만, 7일 현재 47명만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열흘 넘게 주먹밥과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보니 건강에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당뇨와 혈압 등 지병이 있는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겼고, 보호자로 나선 이들까지 빠지면서 10여명의 인원이 농성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동료들의 곁을 지키기 위해 망설이다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농성을 포기한 노동자도 있습니다.
탠디는 4일 오전 열린 1차 협상에서 ‘갑피(신발 윗부분을 만드는 작업) 기술자 공임 6500원, 저부(신발 밑창을 만드는 작업) 기술자 공임 7000원에서 각각 500원을 인상해 켤레당 (하청업체) 납품단가 1000원 인상을 반영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회사 쪽은 오후에 다시 마련된 자리에서 ‘갑피와 저부 각각 현재 공임의 10%에 해당하는 650원~700원을 올려주겠다’고 두 번째 협상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탠디 쪽과의 대화에 참여했던 박완규씨는 “한 달 전에도 (하청업체 사장이) 500원을 올려준다고 했지만, 너무나 적은 인상폭을 수용할 수 없어 본사 농성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성장 앞에서 편지를 낭독한 김씨의 딸은 “아버지가 만든 탠디 구두를 딱 한번 신어봤다. (아버지가 만든) 불량품이었다. 서민이 직접 돈 주고 사기엔 너무 비싼 신발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김씨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너무 많아 탠디 제화 노동자들의 농성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취업준비생인 저 역시 인터뷰에 실명을 밝히면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두렵다. 아버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돕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전했습니다.
회사 쪽과 노동자들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3시 세번째 협상 테이블에 앉을 예정입니다. 통화를 마치며 김씨의 딸은 “예전 같으면 어버이날 저녁 온 가족이 삼겹살에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고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김씨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요?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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