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화업체 탠디의 제화공 98명이 지난 6일부터 열흘째 파업 중이다. 16일 오후 파업 중인 서울 관악구 제화공장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내 유명 수제화브랜드 탠디의 제화공 김용일(49)씨는 2000년을 잊지 못한다. 대다수 신발업체가 노무비용을 줄인다며 제화공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도급 계약을 맺은 해다. 근로소득세를 내던 정규직 제화공은 이때 별안간 ‘사장님’이 됐다. 당시 김씨는 사업자등록을 피해 퇴사했고 영세업체에서 일했지만, 2003년부터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김씨는 “소사장이 되지 않으면 어디서도 ‘신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15년차 사장님인 그는 다시 노동자가 되기 위해 거리에 섰다.
16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신발업체 탠디의 하청업체 제화공(소사장) 98명이 지난 6일부터 파업중이라고 밝혔다. 정기만 제화지부장은 “법원에서 ‘도급 제화공은 실질적 노동자’라고 판결했지만 소사장제는 여전하다. 탠디는 수제화로 돈을 벌면서 제화공은 노예 취급한다”며 파업의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1월 탠디 퇴직 제화공 9명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승소한 바 있다.
제화지부의 요구는 명확하다. 허울뿐인 소사장제를 없애고 탠디가 제화공을 직접고용하라는 것이다. 탠디의 제화공은 회사에서 주문서와 함께 배정한 일감만큼 신발을 만드는데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차휴가와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보장받지 못했다. 한 켤레당 공임이 6500원으로 8년째 제자리인데도 회사와 교섭조차 시도하지 못한 배경이다.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탠디’ 제화공장 작업대에 원자재가 쌓여있다. 제화업체 탠디의 제화공 98명은 지난 6일부터 열흘째 파업 중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2년 경력의 제화공 박완규(49)씨는 그동안 원청의 횡포에 저항하지 못한 이유로 소사장제를 꼽았다. 그는 “우리가 사장이 아니라 노동자였다면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교섭해서 공임을 올리고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등을 해소하려면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커녕 번번이 회사 눈치를 봐야 했다. 박씨는 “2년 전 불량품이 하나 나왔다며 내 임금에서 판매가 30만원을 공제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반발했다가 불이익을 당했다. 하루 25켤레 만드는 내게 하루 5켤레만 배정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 요구를 할 수 없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35년차 제화공 안증호(56)씨는 5년 전 신발에 묻은 이물질을 지울 때 쓰는 기름 통이 터져 손등에 화상을 입었다. 안씨는 화상 치료를 받기 위해 한달간 일을 쉬었지만 ‘노동자’가 아니었기에 근로복지공단에서 평균 임금의 70% 수준으로 지급하는 휴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그는 “친한 관리자가 생활비 100만원을 따로 챙겨줬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마저도 관리자와 친하지 않았다면 못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3년 전 이들은 민주노총 제화지부에 가입하려다 회사쪽이 “노조 가입하면 함께 작업할 수 없다”고 해서 이를 취소한 적이 있다. 파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조합원이 된 이들은 “이번만큼은 제화업계에 소사장제가 사라질 때까지 맞서 투쟁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제화지부는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등 법적 조처도 진행할 예정이다.
탠디 노동자의 소사장제 폐지 등 요구 등과 관련해 탠디 홍보팀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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