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부터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 있는 구두 생산업체 ‘탠디’의 본사에는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습니다. 이날부터 30일 현재까지 탠디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구두를 짓는 제화공 60여명이 켤레당 6500원~7000원 수준인 공임을 2000원 인상해달라며 3층을 점거하고 농성중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구두를 만든 대가로 받는 공임은 2011년 이후 무려 8년째 동결된 상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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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 노동자들의 농성을 취재하다 본사 1층 매장에 진열된 예쁜 슬리퍼를 봤습니다. 신발의 가격을 알아보니, 판매 정가가 32만9000원이라고 했습니다. 탠디가 유명 수입 명품은 아니지만, 평범한 월급쟁이가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백화점에 입점하는 수제화의 가격은 이렇게 비싼데, 정작 이 신발을 만든 제화 노동자들은 왜 켤레당 6500원~7000원의 적은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한겨레>와 만난 탠디 관계자들은 이번 농성과 관련해 “제화공들의 공임이 수년째 동결된 상황은 안타깝지만 우리 사정도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가장 먼저 회사 쪽은 제화공들이 받는 켤레당 6500원~7000원의 공임을 소비자 판매가격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합니다. “제조원가의 적정성 여부는 하청업체가 탠디에 물건을 줄 때 받는 납품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며, 유통과정 비용이 포함된 판매가에 견줘 비교하는 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백화점에서 30만원에 판매되는 구두를 기준으로 볼 때 판매가의 35%는 백화점 매장 입점 수수료, 20%는 위탁 고용한 매장 매니저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 구두를 팔아 탠디에 돌아오는 돈은 나머지 판매가의 45%에 해당되는 액수라는 얘깁니다. 30만원짜리 구두라면, 13만5000원이 탠디의 수입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탠디의 한 관계자는 “요즘 백화점은 세일 기간이 아닐 때에도 제품을 할인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 제품도 평상시에 20~30%로 할인해 판매하는 제품이 많다”며 “그걸(할인액을)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수 십년 경력의 구두장이가 구두 한 켤레를 만들어 받는 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시급 7530원보다 낮다는 사실에 상당수 사람들은 머리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탠디’ 제화공장 작업대에 원자재가 쌓여있다. 제화업체 탠디의 제화공 98명은 지난 6일부터 열흘째 파업 중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렇다면 실제 제화공들과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는 탠디 브랜드 구두를 본사와 얼마에 계약하고 납품하는 걸까요. 탠디 쪽은 “판매가 30만원 제품 기준 납품가는 5만~6만원대”라고 밝혔습니다. 회사는 이 가운데 갑피(신발 윗부분을 만드는 작업) 기술자가 6500원, 저부(신발 밑창을 만드는 작업) 기술자가 7000원을 받아가고, 기타 공장장과 재단사, 제품을 포장하는 노동자들에게 6000원~7000원이 지급돼 납품가 5만원 기준으로 2만3000원 정도가 인건비로 나가게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조원가의 40% 이상이 인건비로 나간다며 이런 걸 볼 때 구두산업 자체가 인건비 비중이 높은 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국내 수제화 브랜드들은 수입 명품의 대중화와 그동안 ‘싸구려’ 취급을 받던 중국산 제품의 질적 향상으로 인해 ‘낀 신세’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현상이 과거와 달라진 백화점 구두 매장의 위상입니다. 1990년대 구두매장은 백화점에서 접근성 좋은 1층을 주로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2층, 최근 들어선 3층, 그 중에서도 구석으로 점차 밀려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탠디 쪽의 주장을 들어봐도, 탠디가 8년째 동결해 온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을 올려줄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공개된 탠디의 재무제표를 보면, 2007년 27억7000여만원을 기록한 탠디의 영업이익은 2017년 69억4000여만원으로 늘었습니다. 10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2007년 3480원에서 2017년 6470원으로 오른 최저임금의 인상폭보다도 훨씬 더 높은 증가율입니다.
탠디 쪽은 제반 상황이 안 좋다고 설명하지만, 영업이익은 되레 늘고 있는 상황.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탠디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최근 몇 년 간 한계상황에 다다른 제화산업의 상황에 대비해 구조조정이나 기타 운영유지비에 들어가는 자금을 고려하면 회사 사정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더욱이 탠디 쪽은 6일부터 시작된 제화공들의 파업으로 인해 가장 손해가 큰 건 본사라며 “제화 노동자들이 요구사항을 본사에 직접 전달하기보다 자신들이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대표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눠 공임 인상 등을 요청한다면 회사도 논의할 의사가 있고, 이런 뜻을 본사 점거 중인 제화 노동자 대표에게도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엄연히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으니 본사에 와서 이러지 말고 하청업체와 얘기를 하라는 말입니다.
파업에 나선 제화 노동자들은 탠디의 이런 주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형적인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책임 돌리기라는 겁니다. 제화 노동자들은 탠디의 5개 하청업체로부터 주문서와 함께 배정된 일감만큼 탠디의 비품과 원자재를 받아 탠디의 요구대로 구두를 만듭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특수 고용 노동자’ 신분인데, 특수 고용 노동자의 법적 소속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일지 몰라도, 업무 여건상 사실상 탠디 소속 노동자와 다를 게 없습니다.
게다가 제화 노동자들은 지난 11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하청업체 대표들을 만났지만, 공임 인상 논의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한 채 “일단 파업을 중단하고, 작업을 재개해달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제화공들은 “난생 처음 공임을 인상해달라고 파업에 나섰는데, 문서화 등의 신뢰할 수 있는 약속도 없이 ‘일단 작업을 재개하면 해결해보겠다’며 공수표만 날리는 하청업체 대표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임만 문제인 게 아닙니다. 제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작업 실수로 불량품이 나왔을 때 탠디 본사가 구두 판매가 전액을 제화공들에게 줘야 할 대금에서 공제한다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건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 공임을 적게 주는 것과는 별개의 ‘갑질’입니다. 이에 대해 탠디 쪽은 “구두 작업과정에서 굽을 덜 박았거나 모두 제거해야 할 못이 남아 신발을 구매한 고객이 다쳐 회사가 피해를 보상하는 일이 있었다”며 “이 때문에 수년간 제화공들에게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작업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일종의 ‘페널티’ 차원에서 판매가를 물어내게 했고, 실질적으로 그런 일은 1년에 1~2회 정도”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제화 노동자들은 탠디 쪽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탠디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6년째 탠디 구두를 만들고 있는 제화공 박완규(49) 씨는 “2년 전 불량품 하나를 만들었을 때 그게 첫 번째 실수였지만 탠디에선 구두 판매가인 30만원을 물어내라고 했다”며 “탠디는 지속적으로 불량품을 생산한 제화공들에 한해서만 책임을 물은 것처럼 설명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고 이런 일을 1년에 1~2차례보다 훨씬 더 많이 벌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는 자신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맞고, 국내 제화업계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10년 사이 두 배 넘게 영업이익을 낸 탠디가 8년째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을 동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탠디의 해명을 들어도 의문은 여전합니다.
이와 관련해 누리꾼들은 “즐겨 신었던 탠디 구두가 이런 노동력 착취로 만들어졌다니 정말 배신감이 드네요. 당장 이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불매운동 하겠어요!”, “저런 분들이 돈을 많이 버는 세상이 와야 한국에도 테스토니 같은 명품브랜드가 탄생합니다. 너도나도 대학 나와 높은 청년 실업률이 아니라 대학을 안 가도 기술만으로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 말입니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 풀스토리를 보시려면 : 탠디 하청 제화 노동자들은 왜 본사 점거 농성을 하고 있을까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