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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 제대해, 통일되면 만나” 방송하자 북한 병사는 O 그려보였다

등록 2018-05-06 09:29수정 2018-05-07 10:09

[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북·대남방송의 추억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한국 경비병 너머로 북측 경비병들이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한국 경비병 너머로 북측 경비병들이 근무 교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4·27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는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지난 1일 남과 북은 대북·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모두 철거했다. 대북·대남 방송은 1960년대 초 시작된 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이번에는 영구적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최전방에서 대북·대남 방송을 담당했던 한국군과 북한군 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썼다.

인근 주민들과 밤낚시를 즐기는 파주 주민 허일영(가명·53)씨에게 공릉천은 천국이다. 공릉천은 경기도 양주에서 파주를 거쳐 오두산 통일전망대 아래에서 임진강, 한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어종이 풍부해 낚시꾼들이 진을 친다. 잔잔한 물줄기에 반사돼 반짝이는 자유로 가로등 불빛, 하천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손맛까지 더하니 바랄 게 없다.

공릉천 밤낚시의 추억에 빠질 수 없는 소리가 있다. 바로 대북·대남 방송이다. 허씨는 “한여름에 가만히 앉아 낚시찌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쪽저쪽에서 하는 방송이 다 들린다. 한밤중에도 스피커 소리가 빵빵하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던 때는 북한 군가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우스갯소리로 들으면 적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의 대남방송 내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위대한 수령’ 이야기를 한들 신경 쓸 사람이 있겠냐”고 되묻는다. 그는 남한의 대북방송이 더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남한이 북한보다는 사는 형편이 더 낫지 않나. 똑같은 사람이 돼, 단지 상대방 기분 나쁘게 하려는 방송을 하는 우리가 한심했다.”

허씨는 앞으로 대북·대남 방송을 들을 일이 없길 바란다. 은퇴 뒤 공릉천에서 친구들과 조용히 낚시를 즐기며 노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공릉천에서는 대북·대남 방송이 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23일 남한과 북한은 함께 방송을 중단했다. 지난 1일에는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양쪽이 대북·대남 확성기를 철거했다. 이번 방송 중단이 일시적이 될지, 항구적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북·대남 방송은 1963년부터 시작된 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 시설 철거와 설치를 반복해왔다. 대북·대남 방송은 남과 북의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이뤄진다. 가깝게 붙어 있는 남북 지피(GP·전방초소)는 거리가 1㎞도 되지 않는다.

비무장지대에서 마이크와 확성기는 일종의 무기다. 이 무기들로 ‘심리전’을 펴는 군의 방송요원은 ‘방송병’과 ‘대면병’으로 나뉜다. 방송병은 ‘자유의 소리’ 같은 라디오 방송과 대중가요 등 음악을 확성기로 내보낸다. 대면병은 마이크를 잡고 직접 상대 대면병과 대화를 시도한다. 방송병은 일방 커뮤니케이션을, 대면병은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셈이다. 분단의 대치 상황에서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징집됐던 사람들은 선전의 주체와 대상이 되도록 강요당했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북한 방송병의 추억

30대 후반인 염상구(가명)씨는 2000년대 초반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귀순했다. 1997년 북한군에 입대한 염씨는 개성시 판문군에 있는 2군단에 배치돼 대남방송을 트는 방송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북한 군복무 기간은 13년이었다. 북한군에서 비무장지대에 배치되려면 ‘출신성분’이 좋아야 한다. 염씨는 “방송병은 편한 보직이라 특히 인기가 많다. 1년에 한두차례 정치 및 방송 교육을 받고 시키는 대로 방송만 틀면 된다”고 말했다.

염씨는 군사분계선 서부전선에 있는 방송국 세 곳 중 한 곳에서 근무했다. 남한 방송병 초소와의 거리는 700m였다. 방송국 한 곳당 4~5명의 방송병이 있었다. 여름은 오전 5시부터, 겨울은 오전 6시30분부터 북한 애국가로 방송을 시작했다. 주로 상급자가 내려보내는 정치 선전물과 ‘제3방송’ 뉴스를 틀었다. 제3방송은 남한 관련 뉴스와 국제정치 뉴스 중 북한이 주민들에게 꼭 주입시켜야 하는 사안을 다루는 유선방송이다.

지난 1일 오후 군 장병들이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처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 교하 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북한군도 이날부터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동향이 포착됐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일 오후 군 장병들이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처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 교하 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북한군도 이날부터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동향이 포착됐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남한의 대북방송을 북한군이 듣지 못하도록 트는 ‘맞방송’도 주요 업무였다. 이때는 방송 출력을 최대한 높여 소리를 소리로 덮었다. 통상 밤 9~10시에는 대남방송을 끝냈지만 남한은 대북방송을 자정 넘어서도 했다고 염씨는 기억했다. 적막한 밤에 북한까지 맞방송을 하면 너무 소란스러워 밤에는 맞방송을 자제했다고 한다. 염씨는 새벽 경계근무를 서는 북한군 동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수도 평양을 지키자는 내용의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같은 노래를 잔잔하게 틀기도 했다. 방송병에겐 트는 일 못지않게 적는 일도 중요했다. 분 단위로 남한의 대북방송을 전부 기록해 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했다.

염씨는 2000년 이전까지는 남한의 대북방송 수위가 굉장히 높다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급격히 낮아졌다고 했다. 그는 “그 이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비난을 자주 했다. ‘수령을 사살하고 남한으로 귀순하라. 남한에 오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도 많았다. 2000년 이후에는 비난이나 귀순 유도보다는 대중가요를 트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염씨는 옆에서 지켜봤던 동료 북한 대면병들의 대남방송 작전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10일) 등 북한 기념일이면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적군와해 공작부’(이하 적공부) 선전대에서 대면병들이 나와 지피에 ‘무대’를 설치하고 남한 대면병과 심리전을 벌였다고 한다. 방송 내용은 북한 체제 선전부터 일상 소재까지 다양했다.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압네까?”(북)

“….”(남)

“북한 체제의 우월성은….”(북)

“….”(남)

“6·25 원인을 남한은 남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북침이요. 그 이유는….”(북)

“….”(남)

북한 대면병이 수를 쓰면 남한 대면병은 말려들지 않으려고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염씨에게 남한의 대북방송은 어떤 모습으로 각인돼 있을까? “당시엔 남한이 심리전 방송에 올인하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느낌이었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방송 시간도 길고 볼륨도 높았다. 심리전으로 북한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한에 와 보니 남한은 단순히 전기 등 물자에 여유가 있으니까 방송을 공세적으로 했던 것 같다. 북한군끼리는 ‘남한 애들이 미쳐서 발악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놈들 말대로면 남조선은 지상 천국이겠다’ ‘남조선 놈들 또 사기 친다’고 무시하기도 했다.”

확성기가 본래 기능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2001년 몇몇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순찰하다 자신들이 설치한 지뢰를 밟아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터지자 남한 쪽 지피에서 한국군이 출동하기 시작했다. 북한 지휘관이 염씨에게 “확성기로 남한 쪽에 상황을 설명하고 북한군이 자체 처리하겠다는 방송을 해달라”고 알려와 양쪽 충돌 없이 사고가 마무리됐다고 한다.

55년간 남북 총칼 없는 소리전쟁
남북관계 변화 따라 중단·재개 반복
북한 방송병, 근무 편해 경쟁 치열
남한은 전력 풍부해 더 공세적 방송

남 “수령을 사살하고 남한으로 오라”
북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압네까”
김광석 노래 틀어놓고 함께 즐기기도

“무의미한 방송 영원히 중단됐으면”

남한 대면병의 추억

30대 후반으로 염상구씨와 같은 또래인 최재성(가명)씨는 염씨와 군복무 시기가 비슷하다. 최씨는 2000년대 초반 임진강 쪽 101여단에 배치돼 대북방송 대면병으로 근무했다. 최씨와 염씨는 군사분계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목소리’를 통해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씨는 훈련소를 마친 뒤 자대 배치를 받기 전 자신을 찾아온 101여단의 민사장교가 면담을 요청해 따라갔다. 장교는 담배를 한대 권하며 “소총 드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할 수 있다. 대면병을 하겠냐”고 물었다. 당시 전군에 대면병은 60명밖에 없었다. 최씨는 장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담배 한대가 너무 급해서 받아들였다”고 했다.

최씨는 북한군 대면병과 1㎞ 떨어진 임진강 기슭에 설치된 지피에서 복무했다. 대면작전은 오전, 오후 모두 세차례에 걸쳐 각 30분짜리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 마이크를 들고 북한군에게 말을 거는 일이었다. 복장은 운동복부터 사복까지 자유로웠다. 대면병은 모두 가명을 썼다. 최씨의 가명은 ‘춘삼’이었다. 1월에 교육을 받아 3월에 작전에 투입된 데서 착안했다. 동료들도 대발, 광수 등 가급적 친근한 이름을 사용했다. 남쪽에서 보낸 소리가 군사분계선을 건너 1㎞ 이상까지 들리려면 가능한 한 간단한 용어를 써야 했다. 친근한 반말을 사용하되, 북한군이 알아듣는 언어가 필요했다. 외래어는 삼가고 가능하면 북한어를 썼다. 말투는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했다.

“인민군 친구들, 잘 있었어?”(남)

“….”(북)

북한군은 육성보다는 손으로 허공에 글씨를 쓰는 방식의 수화로 답을 보냈다. 당시 북쪽은 확성기를 제대로 틀지 못할 정도로 전력 사정이 나빴다고 한다. 최씨가 오(O), 엑스(X) 등 간단한 답변을 유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군이 가장 많이 보낸 수화 질문은 “여동생이 있냐”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일인 2월16일에는 “이처럼 좋은 날인데 맛있는 음식 많이 먹었냐? 몇가지 음식을 먹었냐?”고 묻자, 북한군이 손으로 ‘216’을 그려 속으로는 거짓말도 정도껏 한다고 생각했다. 최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병사가 2월16일을 그렸던 거 같다”며 웃었다. 그는 “대화가 잘될 때는 두 시간 이상 이어졌지만, 우리 질문에 답하다 상관한테 걸려 혼나는 북한군도 있었다”고 말했다.

준비한 원고 읽기가 기본이지만 상대 반응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대화를 가능한 한 길게 유도해야 했다. 방송 앞뒤로 한국 아이돌그룹 노래는 물론 ‘휘파람’ 등 북한가요를 틀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 응원복을 입고 응원도구를 흔들며 월드컵 상황을 중계해주기도 했다. 북한 대면병은 이에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2002년부터 개최된 초대형 매스게임인 아리랑이 있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최씨는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갔을 때 한번은 방송하기도 귀찮아 ‘내가 좋아하는 노래니까 같이 듣자’며 김광석 노래를 30분 동안 계속 틀기도 했다. 남북 대면병은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공방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제대하기 전날 마지막 방송 할 때 ‘북한 친구들, 나 춘삼이다. 나 오늘 제대한다. 거기는 군생활이 길지만 우리는 짧다. 나중에 통일되면 만나자’고 했다. 그랬더니 북한 대면병이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고 말했다.

대면병은 최전방에서 북한군을 일대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1㎞는 사격이 가능한 거리다.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경고방송 등 매뉴얼에 따라 대면병이 해야 하는 방송이 있는데, 2002년 서해교전 당시 북한군을 향해 방송할 때는 서늘함을 느꼈다고 했다.

대면방송은 크게 3단계로 나뉘었다. 최초 접근단계, 상호 알아가는 단계, 넘어오라는 단계. 북한군의 귀순 유도가 최종 목적이지만 최씨는 그 방송을 듣고 넘어올 거라는 기대감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면작전을 할 때 이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최씨는 “그냥 맡은 임무라서 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고정형 대북 확성기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육군 최전방 소초 주변이 민들레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초소 너머 북한 지역이 아련히 보인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일 고정형 대북 확성기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육군 최전방 소초 주변이 민들레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초소 너머 북한 지역이 아련히 보인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누구를 위한 선전방송일까

고진식(가명·54)씨가 사는 파주의 한 아파트는 조금만 단지를 벗어나도 논밭투성이다. 주변에 소리가 부딪칠 만한 장애물이 없어 대북·대남 방송이 귓가를 제법 세게 울린다. 14년째 이곳에 사는 고씨는 이제 양쪽의 방송이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한다.

겉으론 이렇게 말하지만 고씨는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이 충돌해 빚어내는 소리폭탄에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2015년 8월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에서 목함지뢰가 폭발해 한국군 하사 2명의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씨의 아들은 인근 지오피(GOP·일반전초)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사고 대응 조처로 대북방송을 재개하고 북한에서 보복공격을 언급하는 등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졌다. 당시 고씨는 청와대에 대북방송을 중단해 달라고 수차례 민원을 넣었다. “당장 내 자식새끼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전이나 북한군 귀순 유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파주 땅값이 오른다느니 마느니 말들이 많은데 다 필요 없어요. 지금 사는 곳에서 마음 편히 정붙이고 살게 해주면 좋겠어요.” 고씨의 바람이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화보] 남과 북의 평행선,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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