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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모든 기자는 글만 쓰지 않는다…디지털 저널리즘의 시작

등록 2017-10-31 11:52수정 2017-11-07 16:10

디지털 문맹기자의 서방견문록 마지막회
미 샌프란시스코 탐사보도 전문기관 CIR
언론위기 탐사로 극복하고 디지털로 혁신
기자, 디지털기술 사내학습·병행 ‘가치 배가’
모자란 기자의 ‘서방 견문’은 끝이 났다.

싸이월드도, 트위터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디지털 문맹’ 기자는 이달 1일부터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를 듣고 보겠다며 미국 3개 도시를 돌고 지난 12일 저녁 서울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디지털이냐 돼지털이냐 새삼 분간할 새 없이, 그간 취재 보도해오던 ‘강원랜드 채용 비위’ 후속 기사를 완성하느라 바빴다. 이튿날인 13일 춘천지법으로 차를 달려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의 업무방해 혐의 사건 공판을 취재했다. 공판 뒤 최 사장은 “기사를 그렇게 쓰고 있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합니까”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 선에서 모든 기자는 일단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검·경은 달라야지 않겠는가. 묵비권을 물리칠 수단도 있다. 권력자의 부정한 비밀을 들추는 데 있어 공권력과 언론이 노정하는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러니 기자들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수사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념한다. 언론 조직이 그나마 탐사보도팀을 만드는 이유이고, 강원랜드 채용 비위 사건 또한 그나마 탐사보도 체제가 없었다면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디지털 문맹 기자의 서방견문록’ 마지막편은 탐사보도에 대한 숙고로 채워보고자 한다. 결국 저 아득하고 광활한 ‘디지털’ 저널리즘도 지상 위 발 달린 ‘저널리즘’ 위에서야 가능하다는 뻔한 깨달음을 설명해보고 싶다.

지난 11일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을 건너 방문한 곳 CIR(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가기까지 쉽지 않았다. ‘서방견문록’ 1~3회에서 넋두리했듯, 언론진흥재단 교육 프로그램 내내 조·중·석식까지 외국인 연사와 잡힌 경우가 많아 음식이 정말 짜도 ‘짜다 뭐냐 왓더 뭐냐’ 따질 겨를 없이 주는 대로 먹고 듣기 바빴다.

여기저기 거의 2시간 단위로 이동하는 길도 고되었다. 미국은 도로 포장이 한국만 못한 데가 많다. 일행은 CIR로 향했다가 통역을 담당해준 강석 텍사스주립대 교수 빠뜨린 걸 알고 다시 덜컹덜컹 버스로 허리 삐끗삐끗하며 숙소로 돌아가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이라고 이제 강 교수님 더 필요 없다는 거냐”고 나는 세일러문처럼 버스 안에서 소리쳤는데, 사실 CIR의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탐사보도 전문기관 CIR이 자신들 기사로 받은 상들.
탐사보도 전문기관 CIR이 자신들 기사로 받은 상들.

미국의 탐사보도는 사실 대부분 ‘위기’라는 말과 조응하고 길항해왔다. 시작부터 그렇다. 미국 미디어는 1960~70년대 방송 확대, 독서인구 감소 따위로 언론위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했다. 돌파구로 시도하고 강화한 게 탐사보도였고, 생활·주거·과학·취미 등의 연성기획 섹션이었다. 하루 단위 기사들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으며 언론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본 탓이다. 현명한 분석이었다. 기법 측면에선 ‘뉴 저널리즘’으로 묶여 이뤄진 다양한 시도들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세계적 매체가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미디어 산업 위기가 재차 도래하자 여러 매체에서 가장 먼저 인력을 덜어낸 데가 탐사보도 쪽이었다. (사실 한국은 좀 더 ‘웃프다.’ 여러 미디어 기업들 리더가 멋 부려 탐사보도팀을 만들긴 하지만, 그래 봐야 3명 안팎이고, 구성원은 다음날부터 뭐 준비하냐 기사 언제 나오냐 눈치 주며, 다음 달 조직은 해당팀을 결국 더 축소하곤 한다. 그리고 새 리더는 다시금 “탐사보도를 강화하겠다” 출사표를 던진다.)

CIR의 태생 과정도 사실 이런 경로와 다르지 않다. 유명잡지 <롤링스톤>이 뉴욕으로 이사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남은 기자들이 밥 벌어 먹고살 일을 모색하다 탐사보도에 귀착, 뜻 모아 비영리 언론기관 CIR을 만들었다. MBC가 지난 10년 정도 달나라, 안드로메다 등지로 날아다니면서 함께 못 간 기자들이 만든 <뉴스타파>와 비슷하달 수 있다.

저마다의 위기를 탐사보도로 돌파한 CIR 기자들이 또다시 맞닥뜨린 공동의 위기로서 “최근 5년 새 변혁(drastic change)을 가져온” 게 디지털이다. 이날 여기서 만난 기자 셋의 말을 하나로만 추려 세운다면, “CIR 모든 기자들은 글만 쓰지 않는다”이다. 출입처(“beat”) 없이 주제별로 ‘나와바리(취재 영역)’가 정해져 있고, 모든 취재 기자들이 저마다 데이터 분석, 시각화 따위 IT 기반 전문가가 해오던 일을 기초적 내지 부분적으로 함께 할 수 있고, 하고, 하려 한다는 얘기였다.

계통과 편제가 없지 않다. 크게 세 팀이 뉴스룸을 구성했다. 데이터 분석·시각화 팀, 증오·젠더·차별 등을 다루는 말하자면 시민사회팀, 재정·경제·노동 등을 다루는 말하자면 경제사회팀. (여기까진 시사잡지 <한겨레21>과 비슷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턴 확 달라지는데) 그 외 라디오팀(팟캐스트), 비디오팀, SNS팀까지 모두 75명이 CIR을 구성하고 있다. 팀 간 협업은 물론이고, 전통 펜 기자가 기본적으로 디지털 테크닉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걸 아주 지당하고 ‘천당만당’한 일로 말했다.

그래서 물었다. “왓츠 유어 전공?” 둘은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사회팀에서 일하고, 한 명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뒤 -사실 놀라서 나중에 따로 그 기자 일하는 자리로 찾아가 “그런 의도의 질문이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데이터 분석·시각화 팀에서 재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대부분 CIR에 들어와 디지털 기술을 습득하고, 기술이 뛰어난 이와 멘토링 관계를 맺어 사내 전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출입처에서 하루 1꼭지, 많으면 2~3꼭지 발제해 기사 쓰는 것으로 제 할 일 다 했다 생각하는 한국 취재 기자들과의 차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일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질적 수준, 기자가 부가해낸 가치에 대한 의문이다.)

그럼에도 군소매체라 할 CIR 기자들이 정작 강조하는 건 일관되게 ‘무엇을 썼느냐’였다. 그것이 어떻게 회자되고 시민사회와 어떻게 조우했느냐였다. 디지털 기반에서의 화법으로 인터랙티브(기술)가 소개되고, 유통 전략으로서 팟캐스트가 강조된다. 다들 탐사보도(말하자면 전통 저널리즘)에 복무하는 무기들(일 뿐)이다. 유료 독자들을 위한 콘텐츠 차별화가 지상 과제이고, 혁신의 목표이며, 디지털 전략도 그래서 필요하다고 구성원을 뒤볶는 <뉴욕타임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CIR이 탐사보도 기자에게 요구하는 자질을 다소 우습게 그려놓았다,
CIR이 탐사보도 기자에게 요구하는 자질을 다소 우습게 그려놓았다,
과거 종이신문이 힘 있을 때는 쓰는 것만으로 ‘독자가 보았다’가 전제되었으나, 디지털은 그 전제를 까부쉈다. “기자는 아무리 많이 알아도 쓰지 않으면 모르는 것, 잘 써도 읽히지 않으면 쓰지 않은 것”이라는 얄궂은 팔자가 14년차 신문기자인 내가 1조로 규정한 저널리즘이고, 그 저널리즘은 디지털 때문에 속수무책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이 있어 또 한편 극복 가능성이 커졌다는 기대, 아니 각오가 한 달 넘게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추수한 가장 명료한 결실이다.

얼마나 각오가 지속할 진 모른다. 일단 내가 잘 아는 <한겨레>는 <뉴욕타임스>는 물론이고, CIR만큼도 ‘목표’나 ‘목적성’이 뚜렷한 가시적 변화 내지 실험이 많지 않아 보인다. 위기의식이 부재하며, 가장 끔찍한바, 어제처럼 오늘도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미리 하지 않으니 뒤늦게 낡은 유행을 좇아 두 배의 힘을 들이고 낙과나 거둔 뒤 또 다른 누군가의 그럴법한 시도를 바삐 좇는 형국이다.

지난 27일 국외견학 뒤 추가 진행된 국내 교육과정 마지막 수업은 밤 8시30분께 끝났다. 강사인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뉴욕타임스가 스노우폴(유명 인터랙티브 기획기사)로 배운 게 있다면 그건 다시 스노우폴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주고 족적을 남겼으나, 그건 지속가능한 대안이 아니란 실험값을 쌓았다는 취지였다. 대신 그때 시도, 결합한 기술은 이제 다양하게 웹, 모바일 기반에서 소화되고 변주된다 들었다. 강사의 말마따나, <한겨레>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매체가 한참 뒤 ‘스노우폴’을 입에 오르내리며 따라 해보려고 아등바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멋있어 보이니까’였던 것 같다.

어뷰징이나 본업 삼는 온라인팀 운영이 국내 여러 언론사의 단 하나 변치 않는 디지털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그래서 PV가 저널적으로 아니면 수익적으로라도 답이 되어주었나. 카드뉴스가 답이던가. 그러니 VR은 답이겠는가. 인공지능 기사는? 디지털 문맹인 나는 무엇하나 동의가 되지 않는다.

기자 초년 때 하룻밤 신세졌던 부석사에서 차를 내주시던 무하스님이 “소리를 좇지 말고 소리를 내는 것에 집중하라”고 일렀던 잠언만 계속 맴돈다. 소리는 좇기도 어렵거니와 변하고, 겨우 닿을 땐 사라지니 나처럼 귀도 눈도 어두워지는 자가 잘 할 일이 아니 된다.

지난 7월 말 시작한 ‘강원랜드 채용 비위’ 탐사취재 기사를 내놓기 시작한 9월 초, <한겨레> 디스커버팀에서 생각한 이 기획의 디지털 전략은 ‘압도적 뉴스’ 그 자체라고 국장단에 보고하고 진행했다. 사실 쉴 틈 없고 역량도 되지 못해 에디터가 멋 부려 눙친 것이리라. 내가 최초 기획안에 담은 방식은 “무소의 뿔처럼 스트, 스트, 스트로 간다”였다. 뉴 저널리즘, 디지털 저널리즘, 몰입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 따위 하나도 예외 없이 ‘저널리즘’ 위에 서지 않고 춤을 출 수 없다.

이 비겁하고 더 막연해진 고민을 숙성해보고자 2017년 10월 24일 디지털 부문으로 손들어 인사이동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울 수 있을까보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것이다.

ps. 모색한 답은 하나 있다. 포털이 콘텐츠 유통을 지배하는 구조 아래 모든 매체의 단독성이 파괴된다. 단독적 가치가 부가된 뉴스를 모든 매체가 미친 듯 베껴 쓰면서 팔아먹으려 든다. 포털은 방임하고 조장하고, 매체는 제집 불난 줄 모르고 부채질한다. 단독성이 포털에서도 유지되고 회자될 때 <한겨레>도 모든 매체도 더 품들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다. 디지털 기술로 빛내보려 할 것이다. 간단하다. 일단은, 모든 매체가 타 매체의 단독보도를 인용할 때 본문이 아닌 -그조차 안 하고 있다- 제목에 언론사 이름과 보도요지를 써주면 된다. <“**일보, 000 000 보도” 충격> <헉 “@@신문, ~~ 보도”> 이런 식이다. 이 간단한 협의가 디지털 전략의 첫 번째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한겨레> 안에서부터 반드시 그러하자 목소리를 내 볼 생각이다.

ps.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지털 실험 일기는 방식을 고민해 계속 써나갈 예정입니다.

서울·샌프란시스코(미국)/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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