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뉴지엄(Newseum, 인터랙티브 뉴스 박물관)에 갔다. 반세기 이상 퓰리처상을 받은 보도사진들이 전시 중이다. 분쟁 따위 현장을 주로 뷰파인더에 담은 한 기자는 “늘 죽음으로 가는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지닌 니콘이나 캐논 카메라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저 태도다. 저널은 이래야 옳다고 믿는 바, 저널리즘. 그러나 캐논이 없었다면? 그런데 또한 캐논만 있다면. 아니, 그래도 캐논이 없다면? 그러니까, 캐논만 있는 게 뭔데라고 묻는다면.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그래도 캐논만 있다면 뭐냐는 건데….
전날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했다. 추석날, 기차(암트랙) 안에서 쓴 글이
‘서방견문록’ 1회다. 주관이 담긴 칼럼과 다르지 않다. 보는 분들 사이 이견이, 허무가 있을 수 있다. 10여일 견문으로 그 모든 의심에 맞설 역량이 되겠는가. 게다가 문맹이니. 다만 감당못할 디지털 시대, 옳고그름은 없고 선택과 강력한 집행만이 <한겨레>에 긴요하단 생각을 해왔고, 더 하게 된다. 거듭, 최악은 무엇이든, 어제처럼, 눈코 뜰 새 없이 하는 일이다.
#2회 ‘워싱턴 포스트’
5일 9시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WP)를 방문했다. 인색한 뉴욕타임스와 달리 9시30분 편집회의(종이신문-디지털 전 분야 부장 참석, 30명 정도가 모임)도 참관할 기회를 줬다. 전날부터 앞서 디지털에 노출하거나 더 다뤄야 할 콘텐츠 소재만 단위별로 보고하고 공유했다. 그게 다였다. “1면”(Front page) 같은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도 그러하단 사실 한국의 여러 기자들 알지 싶다.
흥미로웠던 게 논쟁도 전무했다. 국장이 의견이나 주문을 덧붙이고 30여분 만에 끝났다. 콘텐츠 게이트키핑은 일단 단위별 책임자의 몫인 듯했다. 맞다면, 당연히 기동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리라.
오래전부터 ‘그러하겠다’던 <한겨레>는 여전히 1면 소재를 WP보다 더 일찍 시작해 더 늦게까지 찾느라 여념없다.
WP는 오후 4시 편집회의(종이신문-디지털 전 분야)를 한 차례 더 하는데, 종이신문의 콘텐츠 배열(페이지네이션)은 이때나 6시 정도에 최종 결정된다고 한다. 강박적으로 그것을 피하는 건 아니다. 자연스레 “오전부터 중요 뉴스는 1면이 될 거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면구성을 위해 아등바등 체력과 시간을 허비하진 않는 것이다.
WP에서 만난 제레미 길버트(선도전략 책임)는 “하루 200개의 보도가 이뤄지고 그 가운데 45%가 종이신문으로 간다. 디지털로 먼저 보도하고 다음 종이신문에 싣는다”고 말했다. 만일 공정 자체가 종이신문 기반이라면 무엇보다 보도량이 줄 수밖에 없다. (이점, 기자 노동자로선 딜레마다. 뉴욕타임스에서도 그랬듯 업무량이 크게 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이 구글, SNS로 하루 20개 정도의 뉴스를 보는데 -한국엔 이런 통계가 있단 얘길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WP의 유료 독자도 이 가운데서 유입된다. 그렇게 축적된 WP의 유료 디지털 독자가 100만명 정도라고 한다.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참사 등이 영향을 미쳐, 이날 오전 WP 웹사이트 방문 수가 13억이라는 놀라운 사실은…도대체 달나라 얘기 같다.
그러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이신문 발행 중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진 않았나” 물었다. 길버트는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독자가 있고, 상당한 광고수익이 발생(현재까지 디지털과 50:50 정도)한다는 걸 이유로 댔다. 몇 가지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잊은 게 있고 못 들은 게 있다. (그래,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구글이 VR카메라 같은 디지털 기기를 대대적으로 출시했다고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번역 이어폰이었다.)
WP는 ‘워터케이트’로 상징되는 탐사보도의 강자이기도 하다. 현재도 7명으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을 운영 중이다. 대신, 디지털 탐사팀(6명)이 별도 움직인다. 이름하여, Quick Turn Team. 그래픽·VR 전문가 등이 포함되어 훨씬 더 빠르게 디지털 특화 콘텐츠를 생산한다. 이때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기술 등이 유용하다고 WP는 본다. 뉴욕타임스도 그러했다.
WP는 지난해 4월부터 VR·AR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보다 경력이 짧다. 다만 그만큼의 실험값으로 내린 당장의 결론은 “VR 확산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점(WP의 제프 베조스 사장) “(디지털 신기술은) 스토리를 어떻게 더 잘 만드는가에 초점이 있다. 단순한 스토리를 위해 VR을 이용하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디지털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구세주 같은 대안이 나올 리는 없다. 역사가 짧다 하더라도, VR 역시 이미 일부다. WP가 인공지능·음성 인식 기술을 뉴스에 적용하는 실험-음성인식으로 원하는 뉴스를 안내한다거나 오디오 뉴스를 올린다거나-하는 이유이며, 창의력과 실험 정신을 내부에서 ‘여념 없이’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디지털 강화만 아니라 WP는 15개의 생방송을 할 만큼 영상에 집중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스스로 “거의 방송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멀티 채널을 운영하며 하루 70개가량의 영상콘텐츠를 선보인다. 이중 3~5개가 360도 카메라로 만든 VR콘텐츠다.
WP는 가장 선도적으로 뉴스룸이나 업무 경로를 디지털에 맞춘 언론사다. 편집국 한가운데, 온라인 방문자 수, 비디오 이용자 수, 체류 시간 따위 분석 데이터가 실시간 보이는 거대한 화면(모니터 대시보드)을 다들 머리 위에 올려두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숨 쉰다.
2014년 제프 베조스가 WP를 인수했을 당시 구성원 537명은 이제 775명으로 늘었다. <한겨레>를 포함해, 한국의 주요 매체와 규모 차이가 크지 않다. 하지만 입점한 좌표는 꽤 다르다. WP의 길버트는 “(편집국장) 마티 배론의 퀄리티 저널리즘과 베조스의 자금력이 결합해 순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을 마쳐가는 현지시각 아침 6시. 한국서 떴던 해가 이제 여기 당도한다.
(디지털 선도 사례를 견문하기 위해 미국 주요 매체를 방문하고 있는 이 교육과정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의해 제공되었다.)
워싱턴(미국)/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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