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오는 비행길 기내에서 영화 <더 서클>을 보았다. 한 대사가 강했다. “모든 비밀은 거짓이다.” 감춰진 정보 또는 정보를 감추는 것으로부터 부패나 부도덕이 양생하고, 때문에 모든 사생활까지 공유될 때 사회는 발전하며, 그것이 ’서클’이란 영상기반 SNS회사의 디지털 기술로 가능해지리란 메시지였다. 함정이 있다. 그 회사 경영진 몇몇의 사생활만은 공유 대상에서 열외다.
저널리즘을 위협하는 건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이었다. 권력자의 ‘비밀’이었다. 그에 맞서는 역사(주로 들추는 방식으로)가 저널리즘의 영향력을 키워온 여정이고, 역사는 결국 ‘제4부’라는 명의를 주었다.
‘비밀의 고발 공유’가 노정하는 낙관과 비관의 세계가 이처럼 갈린다. 이는 전통 저널리즘과 앞으로 무엇까지 가능해질지 모를 디지털 세계의 경계가 될테지만, 엄연히 강력한 접점이 존재한다. 적정의 선만 깨어있는 시민에 의해 지켜진다면 기술은 제4부로서의 저널리즘에도 거부해선 아니 될 무기일 수밖에 없다.
#3회 ONA 17 컨퍼런스
지난 6~7일 워싱턴에서 열린 ‘ONA17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전 세계 언론인 상대로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는 자리다. 기술과 기술 기반 변화에 무디거나 인색한 나로서는 ‘로봇 저널리즘’ ‘코딩의 필요성·노하우’ ‘독자·청중 참여모델’ ‘뉴스통합 테크닉’ ‘인스타그램 스토리텔링’ 따위 그 자체가 외계어다. 죄다 우리말 번역도 쉽지 않은 것들….
그러다 결국 경악하고 말았다. 7일 오전 10시 수천명 언론인이 모여든, ‘10가지 디지털 미디어 기술 트렌드’ 세션에서였다. 마치 디지털 테크닉을 적극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전통 미디어가 감당할 미래상을 세기말적으로 전망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부흥을 세우려는 기도회 같았다. 강사는 뉴욕대 미래학자인 에이미 웹 교수(비즈니스 스쿨)였다.
‘디지털 문맹 기자의 동방견문록’ 3회는 웹 교수의 강연으로 시작해본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그의 자산이란 걸 감안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결결이 이견이 없진 않지만 당장 직관밖에 지닌 게 없어 가급적 의견은 줄여보고 싶다. 불필요한 희망, 미리 구한 변명의 다른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이름까지 웹이라니. 쏘리 웹!)
뉴욕대 미래학자 에이미 웹 교수가 소개한 조사결과, 44~64살 언론인 대부분은 '현실 안주형'으로 당면한 12개월 정도의 앞날만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대 미래학자 에이미 웹 교수가 소개한 조사결과, 언론인 10명 중 6명은 저널리즘의 향후 10~20년에 대해 거의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디지털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 행동하진 않는다.(talking only the future, not taking any action.)”
한국 언론, 아니 적어도 디지털 퍼스트를 표방해온 <한겨레>의 현실을 관통하는 하나의 말이 있다면 이것이 될 것 같다. 조직이 충분히 인지하는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구성원 여럿은 그런 논쟁 자체를 여전히 마뜩치 않아하고, 그럼에도 꾸역꾸역 문제제기 내지 환기하는 누군가도 막상 역량 되는 선구자들 또는 ‘조직’이 나 대신 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공히 두 지점에 서 있다.
몇몇 미디어 기업만의 현상일까. 아니다. 웹 교수는 올 5-8월 전세계 10개 가량의 언론단체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근거를 내놓았다.
1. 언론인 10명 가운데 6명(58%)은 저널리즘의 향후 10~20년을 생각하지 않는다.
2. 44~64살 언론인들은 ‘현재 안주형’(“nowist”)이다. 대부분은 고작 당면한(“immediate”) 1년을 생각해도, 5년을 내다보진 않는다. 그런데 그 연령집단에 의사결정권자 대부분이 있다.
3. 편집국 10곳 가운데 7곳(69%)은 새로운 기술을 인지 내지 적용하지 않고 있다.
각 항목, 이렇게 스스로 입력해보았다.
1-1. 사실 ‘피한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now(지금)가 아닌 tomorrow(내일)를 고려할 때 몸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오는 비는 맞거나 피하면 될 뿐, 내일 악천후를 예상하기 시작하면 늘 해오던 일에 더해 지붕을 고치고 담장도 손보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아 내일 집이 붕괴될 수 있다. 차라리 그게 낫다. ‘나’의 책임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1. 한국 나이론 45~65살이다. 당연히 현실을 쫓지 못하는, 관습적 저널리즘을 지적하는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을 보면, 시니어 기자의 활약상이 얼마나 놀랍게 그려지는지 모른다. 아무튼) 의사결정권자 대목에 국한하자면, <엘에이(LA)타임스>에선 디지털 혁신을 위해선 부장급을 모두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더불어 어떤 결정의 실패를 책임지고 싶지 않은 태도가 있다고 나는 본다. 이런 경향이 오너가 없는 독립언론에 더 강할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3-1. 사실 내겐 가장 끔찍한 지적이다. 디지털 기술은 무장 더 자본력에 비례할 것이다. 방문했던 워싱턴포스트조차 뉴욕타임스에 견줘 박탈감을 갖는 대목으로 느껴졌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뉴욕타임스보다 조직이 간결해 “결정이 빠르고 변화도 빠르다”고 했다. 말인즉, 자본 없는 조직이 효율적이지 않고 진보적이지도 않다면? 하나마나한 상상이다.
웹 교수는 향후 인공지능 따위 기술을 선도하며 뉴스콘텐츠를 지배하는 절대 강자로 구글, MS(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애플,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드, 아마존, IBM(아이비엠) 9곳을 꼽았다.
나 같은 기자한테는 소시적 호환마마, 출근길 토사곽란보다 더 무서운 게 기술(권력)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전통 미디어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가장 명료한 가치는 고급 저널리즘(퀄리티 저널리즘)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일상화되면 가짜뉴스가 더 진짜 뉴스처럼 둔갑한다. 웹 교수는 트럼프나 오바마 전·현 미국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을 진짜 한 것처럼 현재하는 기술로 제작된 영상 콘텐츠를 시연해줬고, 몇가지 잘못된 인공지능의 폐해도 보여줬다.
미디어 기술자들이 진짜와 가짜를 뭉개고, 기술로 무장한 뉴스 유통업자들이 이를 분리해주지 못하면-이건 한국의 포털이 일상으로 돈벌며 저지르는 일들이다- 뉴스의 신뢰는 무한정 추락한다. 이미 눈앞 풍경이다. 뻔한 저널리스트들이 굴욕과 기만을 내면화하고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소수의 ‘독보적 저널리즘’만 더없이 소비되고 추앙받는 극단의 시대가 또한 목도하는 일이다.
<워싱턴포스트> 7층 편집국 입구 벽면에 돋을새김된 경구. “아무리 나쁜 진실도 거짓보다 결코 (사회에) 위험하지 않다.”
즉, 바라건대 늘 저널리즘의 뿌리로 말해왔던, 현상에서 사실을 추리고, 사실에서 진실을 분별해주는 행위가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환경에서든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이게 결론일 수 있겠는가. 45~65살 저널리스트들이 ’그거 봐, 바로 그렇다니까’ 할까 싶다. 미국 여러 매체가 말하는 문제는, 웹 교수의 말이고, 그 말은 지금 디지털 기반 기술을 미디어가 포섭하지 않으면 ‘소통되지 않는 저널리즘’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또한 저널리즘일 수 없다는 또다른 진리다.
그밖으로 새겨볼 웹 교수의 설명.
“디지털 시대, 기자들의 우려가 많다.“ (웹 교수는 그리고선 “세계가 직면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보여줬다.)
“뉴스 유통, 소비는 대단히 빨라진다. 뉴스의 질은 시간에 비례하는데, SNS의 가짜 뉴스 등으로 뉴스의 신뢰도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빅데이터는 석유와 같은 미래의 자원이다.”
“2027년 웨어러블(wearable)이 대세가 되고, 기계가 주요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2027년엔 자본과 상관없이 기술이 누구에게나 유용하고 흔해질 것이다. 50대가 되는 기자에게도 말이다.” 이것은 바투 40대 중반에 당도할 <한겨레> 디스커버팀장을 맡고 있는 나의 바람이다.
(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한 교육과정으로 이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 통역은 강석 텍사스 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가 도와주셨고, 일부 틀린 대목이 있다면 그건 <성문종합>으로 단련한 나의 저질 영어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워싱턴·샌프란시스코(미국)/글·사진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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