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뉴욕은 VR 기획자에게 제작환경과 브랜드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조금 황당한 해외 출장을 와 있다. 기간이 역대 최장이라는 한가위 연휴를 오롯하게 관통한, 10월 1~12일. ‘헐’이다.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가면 가장 행복했을 출장.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주제부터가 어려웠으니까.
2017년 7월 <한겨레> 디스커버팀은 10년가량 지연된 주한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탐사보도했다. (군 소재, 취재하기 정말 ‘빡세다.’) 2015년 한국기자상을 받은 아동학대, 앞서 처음으로 전체 비용 31조원을 추출해 호명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보도도 모두 100일 안팎의 시간을 필요로 한 탐사 내지 심층 보도였다. 운 좋게도 다들 저명한 기관, 단체로부터 상 받았다.
하지만 저널이 주식 투자와 같다면 시도도 말아야할 보도이며, 결국 2017년 한국 사회 시민들은 절대 당도할 수 없는 진실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왜일까. 짐작하셨다시피 투자 대비 소출 문제, 즉 품 들인 만큼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잘 쓰면 읽지 않느냐고, 잘 써보고 하는 말이냐고 어떤 분들은 꾸중하실 수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읽어도 대부분 분들은 어느 매체의 기사인지 관심 두지 않는다. 포털에 넘쳐나는 무료 공공재로 간주되는 탓이다. 동시에 진짜 또 가치 있는 보도는 여러 매체 장사꾼에 의해 무단복제되며 그 단독성을 상실해 버린다. 예 들어, 오늘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한 대목을 여러분은 다음, 네이버에서 알게 되었는데, <한겨레>가 들춰냈다는 건 알지 못하는 식이다.)
기자는 아무리 취재해도, 쓰지 않으면 취재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고, 아무리 잘 써도, 시민이 읽지 않으면 쓰지 않은 것과 다를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게 내가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근간인 바, 더 발달하는 디지털·모바일 기술이 노정한 세계는 신문기자인 내게 사실 -현재까진- 지옥이다. <지옥에 세운 천국(A Paradise Built in Hell)>이란 책 제목처럼, 언젠간 기회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을 외며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1일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1000만명 가까이 사용했다는 싸이월드도, 2010년대 전후 전화기처럼 사용된 트위터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계정을 만들어 처음 시늉만 하다 이내 관뒀다. 느지막이 싸이월드를 좀 해볼까 했더니 블로그가 달려왔고, 정치부에서 트위터 담당(기자중 한명에게 할당함)을 하게 되니 여기저기서 페이스북을, 나아가 인스타그램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얼리 어댑터’가 아닌 덕분에 그나마 덜 바빴던 것 같다.
그런 자가 ‘디지털 뉴스의 미래’라는 주제로 해외 선진(?) 사례를 듣고 보겠다 떠나 왔으니, 앞으로 두세 차례 쓰게 될 모든 글은 ‘디지털 문맹 기자의 서방견문록’ 쯤 될 것이다.
(이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의 교육과정으로, 이미 7차례 국내서 강의를 들었다. 디지털 저널리즘, 디지털 보도 기술에 국한하여 뉴욕타임스, AP(에이피)통신, 유투브 등 여러 신구매체를 방문하는 이 일정 자체가, 내 생애 가장 ‘진취’적이고 ‘나답다’할 수 없는 도전이다. 하지만 저것이야말로 디지털 저널리즘의 본질이란 걸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1회 ‘뉴욕타임스’와 삼성전자
2일 오전 뉴욕타임스에 가보았다. 방문 목적은 이 회사가 최근 힘 쏟고 있는 ‘VR저널리즘’의 실험값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실험값이란 단어를 나는 디지털 저널리즘 쪽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사실 뉴욕타임스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답이나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디지털은 전 세계 언론을 부지런히 시도하며 어.쨌.든. 제 값을 축적해놓는 곳과 그럴 정신 없는 곳 두개로 가르고 있다.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저널리즘은 360도 카메라로 제작한 영상물로 소비자 집중도의 극대화를 가치로 삼는다. (4일 뉴욕서 만난 삼성전자USA의 VR마케팅 책임자는 “집중도와 상호작용성”을 VR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내 표현으로 ‘아이맥스 효과의 개인화’다. 몰입 저널리즘의 주요 수단으로 간주되고 시도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전통적 뉴스가 소비되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삼성 등이 선도하는 신기술이 창출 내지 강제하는 포맷이란 생각도 갖는다.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듣고 보고 느끼게 한다.
올초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내부 보고서인 <독보적 저널리즘>은 디지털 콘텐츠 전략의 성명서 격이다. “지난 2년간 중요한 혁신을 이뤘지만, 혁신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는 게 계기이며 “필수적이고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 “내실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여 기꺼이 유료로 우리의 콘텐츠를 구독하도록 유도하는, (유료) 구독자에 집중하는 방식”이 전략, “클릭수만 높이거나 저렴한 광고들 유치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난립하는 조회수 경쟁에서 굳이 이기려 들지 않는다”는 게 전술이라 할 법하다.
그를 위한 첫번째 대안으로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것이 강력한 ‘비주얼 저널리즘’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VR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이제 겨우 밀려오는 파도이고, 누구도 저 파도를 압도하며 서핑하진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VR 콘텐츠 개발에 나선 것 또한 고작 2년 전이다. 한달에 하나씩 제작하다 이제 하루에 하나씩 내놓는다.
여기서 만난 책임 실무자는 사진기자 경력 등을 가진 여성 2명(비디오·VR 제작부장, 몰입형 스토리텔링 플랫폼 부장)인데 그 뉴욕타임스조차 “시행착오를 많이 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실패하는 콘텐츠가 되는지 터득해간다”는 말로 상술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자신들도, 독자들도 뉴스 생산 방식과 소비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다.
VR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사실 또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아야할 이유는 더 불순했고 부족했다. 독자나 청중은 어제처럼 만들어진 뉴스(종이든 인터넷 플랫폼이든)는 잘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혁신과 변화를 지지하는 편이다. 어제처럼 하지 않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바이블 삼을 지경이다. 참으로 성긴 명제인데도, 그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게 지배적인 터라 그렇다.)
AP통신에서 준비한 ’VR 콘텐츠’ 관련 프리젠테이션
VR은 일단 여행, 생활정보, 탐사보도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게 뉴욕 소재 여러 매체의 공통된 의견이다. 3일 방문한 AP통신의 인터랙티브 에디터는 아예 “현장 기자에게 뉴스 소재가 어떤 소재든 일단 VR로 촬영하라고 주문한다”고 한다. (AP통신 업무매뉴얼을 구하고 싶었으나, 구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도 일하는 방식은 한국 언론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지면 제작 기자들이 발제하면 협업하는 형태도 당연히 흔하며, 자체 팀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해내는 경우도 흔해보였다. 1명이 단독으로, 또는 3~4명이 팀을 이뤄 VR 콘텐츠를 생산한다. 뉴욕타임스는 매해 70명 가량 신규인력을 채용하는데, 절반이 비디오·그래픽 부문 전문인력과 보도 책임자급 기자다.
VR 콘텐츠를 여러 매체나 스타트업 미디어 회사에서 시청(?)해보았는데, 이미 표현한 ‘아이맥스 효과’가 오롯하다. 기자가 일방으로 전하고자 하는 정보에만 수용자가 노출되는 것과 반대로, 수용자에게 콘텐츠가 노출되는 것과 같다. 수용자가 특정 정보를 직접 선택하고 집중한다.
뉴욕타임스 관계자들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VR 콘텐츠를 강조했고, 독자 참여 수단으로서 VR을 또 부각했다.
때문에 몰입 저널리즘의 주요 수단으로 전망하는 것일텐데, 약점이 없지 않다.
흔히들 꼽는 단점은 수용자들이 잠수 때나 쓸 법한 비싼 디지털 기기를 안경처럼 착용(착복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아마도 기술자가 볼 때의- VR 뉴스 확산의 관건이 되긴 할 테다.
하지만 그것은 되레 기술 발달로 꽤 용이하게 극복 될 법하다. 내게 다가온 치명적 단점은, VR이 뉴스 소비자를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VR 콘텐츠에 몰입하면서 되레 주변과 단절될 가능성이다.
뉴스 소비의 본질은 유의미한 정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맥락적으로 연결되기 위함인데, 몰입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VR 콘텐츠는 그 방식 때문에 동시에 고립효과를 가져온다. 게임을 하듯 혼자 뉴스에 몰두하려할까, 그렇게 고립되려 할까. 나는 그것이 대단히 궁금했다.
정보(제공자)와의 인터랙티브를 가장 큰 장점으로 삼는 VR이 되레 더 큰 사회와의 인터랙티브는 끊는 역설이, VR이 저널리즘 미래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으로 보였다.
그때문인지 온라인 영상뉴스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MIC의 코리 호크 전략이사는 3일 “브이알 콘텐츠의 확산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조중석식까지 간담회를 겸하도록 일정이 짜여져서 밥이 귀로 가고, 영어가 입으로 들어가는 와중, 그나마 들은 말이다.)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가 VR 카메라 등 신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면서 VR 콘텐츠 제작 작업을 더 활성화했다. 삼성 관계자는 “다른 파트너가 있진 않다”고 말했으니, 뉴욕타임스만 누리는 혜택이기도 하다. (선도 기술은 한국의 기업이 갖고 있는데, 국내 소비자들은 그러한 유형의 뉴스를 경험할 기회가 적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거듭, 기자는 아무리 많이 취재해도 쓰지 않으면 취재하지 않은 것이고, 아무리 잘 써도 청중이 보지 않으면 쓰지 않은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다는 VR 콘텐츠가 더더욱 그 명제에서 예외가 될 순 없다. 기술이 되기 때문에 그 기술 기반의 뉴스를 만든다는 것은 억지이자 악이니까 말이다.
뉴욕타임스에 그간 생산한 VR 콘텐츠의 성패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수용자들의 반응을 분석한다고 했지만, 체계적이진 않아 보였다. “내부에서 VR 제작 제안이 많은 것도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란 말은 현실적이긴 하지만, 기대한 답은 아니었다. 결국 그들 스스로도 말한 “데일리 360(뉴욕타임스의 VR 특화 플랫폼)의 성공여부는 계속 확인 중”이 2017년 10월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 책임자들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유럽 등지서 온 기자 둘이 이런 말을 했다. “너무 비밀이 많아” “완전 스몰 토크네”
설사 실험값을 구했다 할지언정 쉽게 나눌 법 하겠는가. 우리의 실험값은 결국 한국 청중을 상대로 한국의 매체가 구해내는 일밖에 없다.
뉴욕·워싱턴(미국)/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