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4일 공개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임 시절 녹취록은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이 얼마나 퇴행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각 차장들과 기조실장, 전국 지부장들이 모인 ‘전 부서장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북한이나 적성국 등이 아닌 국민을 대상으로 ‘공작을 벌이라’고 지시했다.
이날 검찰이 원 전 원장 등의 재판에 제출한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2009년 12월18일 회의에서 “잘못된 기사를 쓰면 그 언론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든지”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회의에서는 “95년 (지자체)선거 때 (…)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들은 (…) 국정원에서 다 이렇게 나가라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해 9월엔 “외국인들 많이 있는데 (…) 사람들을 관리하려면 건전한 단체를 우리가 만들어서…”라고 지시했다. 국정원이 직접 공작을 통해 국내 사회·정치 현안에 개입하라고 한 것이다. 이 회의체에서 한 발언은 국정원 내부망(인트라넷)의 게시판 가운데 하나인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담겨 모든 직원에게 공개되는데도 적성국이 아닌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발언을 한 것이다.
원 전 원장이 이런 노골적 행보를 이어간 이유는 ‘촛불시위’였다. 2009년 2월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은 2009년 3월4일 심리전단을 독립 부서로 개편했다. 부서 수장도 2급에서 1급으로 격상시켰다. 애초 1개 팀이던 조직은 4개 팀으로 늘어났다. 촛불시위가 인터넷을 매개로 확대됐다고 보고 대응책을 내놓은 셈이다. 국정원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 전 원장은 촛불시위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시절 만연했다. 문민정부까지도 이어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세상에 알린 전직 국정원 직원 김상욱씨는 최근 <한겨레21>과 만나 “참여정부 때는 국정원이 큰 문제 없이 운영됐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퇴행하고 말았다. 뼈를 깎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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