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4일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에 제출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이 노골적으로 국내 정치와 선거 개입을 지시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특히 녹취록 중엔 이번 재판의 원인이 된 ‘2012년 대선 개입’을 대놓고 예고하는 지시가 눈에 띈다. 이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1년 11월18일 회의다. 그는 “내년도에 더군다나 큰 선거가 두 개나 있는데, 선거나 이런 걸 볼 때 정확한 사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서 선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우리 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온라인, 오프라인 대처에서, 특히 여기 있는 지부장들께서 관계되는 단체들이랄까 중간지대 있는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느냐에 따라서 (선거를) 바꿀 수도 있고, 직원들 전체가 아이티(IT)라든가 이쪽에 관계되는 부서만 보는 게 아니고 전 직원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신경을 쓰라)”라고 지시한다. 사실상 전 직원 동원령이다.
또 그는 같은 날 2009년 교육감 선거에서 당시 진보진영에서 대거 당선된 사례를 언급하며, 후보자 선정부터 사후 관리까지 선거 전반을 관리하라는 지시도 내놓았다. “제대로 된 인물이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 지금부터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 쓰자. 지금 현 정부 대 비정부의 싸움이거든.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고. 12월부터는 (총선 후보) 예비등록 시작하지요? 특히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후보들)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챙겨줘요”라고 당부한다. 총선 예비후보를 교통정리 하라는 것이어서 사실상 국정원이 정당 공천에 사전개입하라는 지시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했다고 하지 않으면 확인이 안 되도록 하는 게, (즉) 꼬리를 안 잡히도록 하는 게 정보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불법적인 선거개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른바 ‘범행 모의’ 수준의 지시다.
그에 앞선 2009년에는 “지자체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라든가 의원들, 앞으로 후보 있잖아요. 이런 부분도 지금부터 잘 검증해야 한다”며 “95년 선거 때도 본인들이 원해서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들은 없고 국정원에서 다 이렇게 나가라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개입을 넘어 국정원이 여당 후보 선정에까지 관여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정원 안에서 ‘12국’이라고 부른 심리전단을 앞세워 상시적으로 선거를 위한 여론전을 펼친 정황도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2009년 12월18일 회의에서 “심리전단 같은 데서도 심리전도 하고 그렇게 해서 좌파들이 국정을 앞으로 발목 잡으려는 것을 여러분들이 차단시키는…”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4월20일 회의에서 “현재도 (심리전을) 하고 있지만 보다 더 강화해야 된다. 사실상 우리 원에서도 하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 12국하고 다 연결돼서 하고 있지요? 심리전이라는 게 대북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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