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임 시절 국가정보기관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온·오프라인 심리전에 나섰음을 뚜렷이 보여주는 녹취록이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재판 마지막날 전격 공개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이 원 전 원장의 대선 개입 근거가 된 주요 자료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바 있어, 이번 녹취록이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가 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웅)의 심리로 24일 열린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마지막 재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재임하던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그가 주재한 전부서장회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은 2013년 기소 직후 진행된 재판에서 제출된 적이 있지만, 당시 국정원은 보안상 이유를 들어 주요 대목을 삭제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구성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복구해 검찰에 전달한 것이다.
녹취록을 보면, 원 전 국장이 국정원에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요구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1년 11월18일 원 전 원장은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 지금부터 대비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신경 쓰자. 지금은 현 정부 대 비정부의 싸움이거든. 12월달부터 예비등록 시작하지요?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챙겨줘요”라고 말했다. 2009년 6월19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후보들 잘 검증해야 한다. 1995년 선거 때도 구청장 본인이 원해서 민자당 후보 나간 사람 없고 국정원에서 다 나가라 해서 한 거지”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여론전도 강조했다. 2011년 11월18일 원 전 원장은 “각 부서장은 산하 관계단체를 만나 우리 우호 세력을 정확하게 알리란 말이야. 내가 볼 때는 오프라인 쪽에서 제일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은 온라인 대응에 대해서는 “에스엔에스(SNS)에서 말로 해가지고 그걸 누가 믿어? 예를 들어 국사편찬위원장 아니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명의로 사실이 아니면 아니다 딱 해서 우리가 실어 날라주라 이거야”라고 지시했다. 2012년 4월20일 회의에서는 “현재도 하고 있지만 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 심리전이라는 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언론 개입 지시도 있었다. 2009년 12월18일 회의에서 그는 “기사가 난 다음에 보도를 차단시키겠다, 이게 무슨 소리야. 미리 못 나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그런 보도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든지 그런 게 여러분이 할 일이지 이게 뭐냐”고 질책한다.
재판부는 이날 녹취록 외에도 ‘에스엔에스(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좌파의 4대강 사업=복지예산감소 주장 강력 공박’ 등 국정원이 작성한 13건의 추가 문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으며, 법원은 다음달 30일 선고를 예고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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