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분야 ‘시시콜콜’ 지시
보수단체 지원 넘어 “건전단체 직접 만들라”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광범위한 개입 정황
보수단체 지원 넘어 “건전단체 직접 만들라”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광범위한 개입 정황
24일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파기환송심 공판에 제출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국정원이 보수단체 지원은 물론 개별 기업 노조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원 전 원장은 ‘보수정권’ 출범에 발맞춰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을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2009년 6월19일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보수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 문제도 다시 재검토하세요. 좌파정권이 없어졌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으면 뭐야? 자유총연맹이라든가 이런 데는 구청 같은 데도 다 사무실 제공해주고 그랬어요. 좀 다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존 보수단체 지원을 넘어 “건전한 단체”를 새로 만들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같은해 10월 녹취록에는 “결국 우리가 건전단체를 먼저 만들어야 견제가 돼요. 외국인들 많이 있는데 있잖아요. 창원도 많은 것 같은데 그런 지역의 사람들을 관리하려면 건전한 단체를 우리가 만들어서 지원을 좀 해줌으로써…”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정치 특정 이슈와 관련해 단체를 만들어서 우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지시한 점이 명백하다”고 했다.
“우호세력” 지원을 위한 여론전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2011년 11월18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각 부서장은 산하관계 단체들을 한달에 한번씩 만나 오찬 간담회를 해서라도 1주일에 두세번, 적어도 한번, 몇 개 모아서 자꾸만 우리 우호세력을 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알리란 말이야”라고 말했다. 또 “내 얘기는 혹세무민하라는 게 아니고 정상화시키라는 말이야. 활동하고 상황보고를 해요”라고 덧붙였다. 온라인에서의 여론조작뿐만 아니라, 대면접촉을 통한 여론전도 병행했음을 보여준다.
노동조합 문제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2009년 9월엔 “현대차도 지난번에 노조위원장 선거하다가 재투표하게 됐지만(실제로 재투표는 이뤄지지 않음) 그것도 우리가 큰 나름대로 목표들이 있잖아요. 민노총(민주노총) 여러가지 문제해결이라든가, 전교조·공무원노조 같은 것들도 우리가 하나의 중간 목표가 될 수 있고”라고 적혀 있다. 이어 “밑으로 하나하나 회사의 노조 이런 것도 우리가 관여하는 거 있지만, 그런 걸 하더라도 조금만 잘못하면 안 건드리는 것만 못하게 빼앗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현대차와 같은 개별기업 노조 선거 일정까지 파악해 개입했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원 전 원장은 그 활동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원 전 원장은 4대강 사업과 같은 정부의 치적 사안에 대한 ‘비판 견제’가 정보기관의 ‘정체성’이라고 밝히며,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합리화했다. “4대강 문제 좌파들 발목 잡으려는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데, ‘국정원이 4대강 관여합니까’, ‘국정원이 세부 정치 관여합니까’ 그러면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가 없는 거야. 지금 좌파들 (…) 차단시키는 데 여러분들이 앞장서주길 바라요.”(2009년 12월18일)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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