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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맞벌이·1인가구’ 중심에 둬야 일본 전철 안 밟는다

등록 2017-05-21 22:55수정 2017-05-22 10:56

〔새로운 나라, 개혁 틀 짜자〕 ④ 사회정책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기고

남성가장 가구 모형 현실 안맞아
출산·보육·탁아·교육정책 새롭게
1인가구 증가추세도 정책 반영을

소득없는 가구 현금급여 확대
흙수저 청소년들 희망을 갖고
빈곤노인층 폐지 줍지 않도록
반짝효과 아닌 10년계획 세우길
빈곤과 사회적 양극화는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뒤편으로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빈곤과 사회적 양극화는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뒤편으로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6년 10월 시작된 촛불집회가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을 거쳐 5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절실한 요구들은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시민들의 요구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한마디로 국민들이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살 만한 나라는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이는 실업, 빈곤, 질병, 장애 등 다양한 삶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 나라이다.

한국은 과거 고도성장기에 미래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여, 현재 심각한 사회위기를 겪고 있다. 복지제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여, 출산율 저하, 인구 고령화, 빈곤화와 사회 양극화 등 복합적인 사회위기를 겪고 있다.

그 위기의 핵심에는 사회 양극화가 놓여 있다. 사회 양극화의 주요 원인은 노동시장 양극화, 인구 고령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져 근로 빈곤층이 급증하면서, 노동시장 양극화가 나타났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청년들의 만혼과 비혼 증가를 가져왔다. 이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출산율 저하를 더 심화시켜, 2000년대 들어서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에 달하였다.

또한 인구 고령화가 세계 최고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낮은 퇴직 연령(평균 54살)과 맞물려, 소득이 낮은 노인 인구가 급증하였다. 이는 세계 최고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로 이어졌다. 또한 중·장년은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퇴직을 맞고 있다. 중산층마저 미래가 불안한 사회가 되었다.

개개인의 울타리가 되었던 가족제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비혼, 이혼과 배우자 사망 등으로 인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빈곤층 증가로 이어져, 현재 1인 가구 절반 정도가 빈곤층이다. 1인 가구의 생활수준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적폐청산과 더불어 나라다운 나라의 토대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토대의 구축은 복합적인 사회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틀 짜기는 다음의 네 가지를 포함하여야 한다.

첫째, 향후 한국의 사회정책은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를 전제로 해야 한다. 먼저, 사회정책의 기본 틀로 맞벌이 부부 가구를 전제로 해야 한다.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사를 담당하는 남성가장 가구 모형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 맞벌이 가구는 계속 늘어 2015년 기준 전체 가구의 30%에 이르고 있고, 젊은 세대의 경우 맞벌이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녀의 출산, 보육, 탁아, 교육 등과 관련한 가족복지 정책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의 출산과 경제활동 참가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고학력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는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또한 1인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고, 향후 그 추세는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정책은 1인 가구도 주된 가구 모형으로 전제해야 한다. 1인 가구의 소득 안정과 삶의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소득보장 정책과 주거안정 정책이 필요하다. 1인 가구의 빈곤문제는 쉽게 나아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기초생활 보장이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적극적인 빈곤퇴치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소득이 없는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현금급여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급여 수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 실업이나 퇴직으로 인하여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경우, 국가가 소득이전 프로그램을 통하여 일정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특히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금이 없는 노인 가구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생계비를 가구 가처분소득의 중위소득 절반 이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집회가 개최되었던 광화문 근처 지하도와 지하철역에는 밤이 되면 노숙인들이 모여들었다. 빈곤층이 줄어들 수 있는 빈곤퇴치 정책이 실시되어야 한다.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 지하철역의 노숙인, 폐지 줍는 노인들이 많은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셋째, 빈곤을 예방하고, 불평등을 약화시키기 위한 차별금지 정책이 필요하다. 근로 빈곤은 비정규직 임금 차별 등으로 소득이 낮은 경우에 발생한다. 비정규직 3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빈곤층에 속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임금 차별은 한국의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임금 차별과 복지 차별을 금지하는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이는 여성 차별, 비정규직 차별, 장애인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형태로 제도화할 수 있다. 차별받는 국민을 방관하는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넷째, 미래를 위한 사회투자 정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전체 사회 차원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빈곤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과 건강에 대한 조기 투자를 통하여 아동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중·장년층이 빈곤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흙수저로 태어나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는 아동과 청소년이 많은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나라다운 나라’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위에서 제시한 사회정책들 가운데 단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빈곤정책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투자 정책의 효과는 10년 후에나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임기 5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조급하게 정책을 추진하거나 혹은 5년 내 가시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정책만 추구하는 경우, ‘나라다운 나라’는 만들어지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틀을 짜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 확보 방안과 더불어 정책 집행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사회정책을 통한 사회개혁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우리의 반면교사이다. 60년대 고도성장기에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오늘날 만성적인 경제침체와 사회해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인 일본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여 저축을 하고 있다. 복지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살지, 얼마가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쓰지 않고 저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만성적인 소비위축으로 디플레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불황하에서 은행으로 돈이 몰리면서, 은행도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투자를 위한 대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급기야 저축하는 사람들이 은행에 보관료를 부담하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생겨났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헤이세이 불황은 사회정책에 대한 일본 정치권의 무지에서 연유한다. 한국보다 20년 정도 일찍 시작된 저출산으로 이미 인구 감소가 시작되어서, 앞으로 소비위축은 더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2000년대 한국의 여러 사회지표는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출산, 고령화, 경제침체와 삶의 질 악화라는 네 가지 고리의 매듭을 푸는 길은 이제 새로운 사회정책에 달려 있다. ‘나라다운 나라’는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이 성장하는 사회성장 중심의 정책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국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전통적인 의미의 국방이라면, 실업, 빈곤, 질병, 무지와 같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복지가 현대적 의미의 ‘국방’이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국방’의 기틀을 잘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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