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라, 개혁 틀 짜자] 전문가 기고 ②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청년들이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공약이 앞으로 어떻게 실행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상담회’에서 한 참가자가 국외 기업들의 현지 취업 정보를 살펴보는 모습이다. 고양/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분배·성장 동시 추구하는 뉴딜
OECD도 “분배 잘 돼야 성장” 재벌·부자·수출만 앞세웠지만
경제 약자에게 손 내밀 때
꽉 막힌 경제 뚫을 길은 뉴딜뿐 “적폐청산 없이는 통합 없다”
임기 첫해 개혁드라이브 굳건히
‘위원회’ 가동해 추진력 끌어내야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새 정부에 주어진 과제다. 역대 정부가 도전했으나 뾰족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그러나 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해왔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노동자, 서민, 약자, 중소기업의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시장에 구매력을 창출해내고, 그것을 통해 성장을 확산시키려는 전략이다. 소위 낙수효과의 반대 개념으로서 다른 말로는 임금주도성장, 포용적 성장이라 부른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이 나온 것은 최근이지만 실제 역사는 길다. 미국의 대공황 때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뉴딜정책, 복지국가의 전성기 때 선진국들이 취했던 전략, 얼마 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 이런 게 모두 소득주도성장이었다. 룰라는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최저임금 2배 인상을 내걸었고, 취임 후 약속을 지켰다.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가족수당 제도를 도입했는데, 수당을 받는 조건은 간단하다. 어린이들이 학교에 등교를 하고 예방주사를 맞기만 하면 1인당 월 1만5000원 정도의 수당을 지급했다. 아주 약소한 액수이지만 가난한 브라질의 농촌에서는 이 정책이 크게 주효했다. 룰라 임기 동안 브라질 경제는 연평균 3%씩 성장했는데, 이것은 브라질 역사상 신기록이다. 그뿐이랴. 브라질의 악명 높은 불평등과 빈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이런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며, 포용적 성장이다. 대선 티브이 토론에서 유승민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 그것은 분배정책이지 성장정책이 아니라고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천만의 말씀. 이것은 분배정책이자 성장정책이다. 분배와 성장은 같이 가는 것이다. 보수파들은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분배에 치중하면 성장을 해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최근에는 분배가 잘돼야 성장도 잘된다는 주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이 연달아 내놓고 있다. 분배-성장 동행론, 이게 세계의 대세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에서 2차대전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실시한 뉴딜정책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고성장, 양호한 분배, 완전고용이 달성되었는데, 이 시대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 부른다. 얼마 전 나온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은 여러 나라에서 황금시대가 동시에 도래한 것을 잘 보여주었다. 황금시대의 근본 배경은 바로 뉴딜정책이고, 뉴딜은 소득주도성장이며, 포용적 성장이다. 20년째 저성장과 양극화에 신음하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처방이 바로 뉴딜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1기, 2기로 나뉜다. 1기 뉴딜은 후버댐 공사,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와 공공일자리 정책이다. 2기는 복지정책의 확충, 최저임금제의 도입,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는 등 대등한 노사관계의 정립, 대기업의 횡포, 반칙에 대한 철저한 규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사람들은 흔히 1기 뉴딜을 뉴딜로 생각하는데, 실은 2기 뉴딜이 더 중요하다. 미국이 대공황을 맞아 드디어 복지정책, 최저임금, 노사 대등교섭을 처음 인정한 것이 2기 뉴딜의 본질이다. 대공황이 오기까지 팽개쳐져 있던 노동자, 서민, 약자들에게 처음으로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 뉴딜이었다. 뉴딜은 한마디로 말하면 억강부약, 즉 강자·부자들의 반칙을 억제하고 약자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구호가 ‘억강부약’이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박정희의 국가독재모델 반세기, 외환위기 이후 시장독재모델 20년, 이제까지 국가가 서민, 약자,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다. 오직 국가는 재벌체제 육성, 그를 통한 수출 입국에만 매달려왔다. 강자, 부자의 나라였다. 팽개쳐놓은 서민, 노동자들이 각자도생으로 살아온 것이 용하고,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복지지출 비율이 오이시디 평균의 절반이 안 되는데도 복지는 포퓰리즘이란 고정관념이 보수파의 머리를 지배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를 보면 한국 노인들의 취업 비율이 오이시디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데, 복지가 약하고 먹고살기가 어려우니 노인들이 거리에서 폐지를 줍고 노령에도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 정부의 앞에 놓인 경제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뉴딜이다. 보수가 강력하고 진보가 취약한 한국에서 뉴딜이라는 개혁을 해내려면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강고한 보수의 아성에서 각종 비난을 받으면서 진보적 정책과제를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두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첫째, 1기 내각은 개혁 내각이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조화, 균형, 탕평, 이런 것은 나중으로 돌리고, 우선 첫 내각만큼은 개혁 일색으로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은 임기 첫해에 거의 완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장관들끼리 팀워크가 맞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섞어놓으면 조화와 균형이 아니라 엇박자와 혼선이 온다. 참여정부는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굉장히 많은 보수적 인물을 기용했는데도 언론은 코드 인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보수 일색으로 인사를 했는데도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못 봤다. 그만큼 한국은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수의 나라 한국에서 개혁을 해낼 좋은 수단이 ‘위원회’라고 본다. 정부 부처는 생리상 개혁적 정책을 취하기가 어렵다. 반면 위원회는 개혁적 학자와 노사정, 기타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서 답을 찾아내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힘 있게 개혁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네덜란드, 아일랜드가 위기를 돌파하고 경제 기적을 일으킨 수단이 위원회였음을 상기하자. 다행히 현재 민주당 안에는 경제민주화위원회, 일자리위원회, 을지로위원회(갑을관계 개선), 포용국가위원회, 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위원회 등 좋은 위원회가 많이 포진해 있다. 이 위원회들을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격상해서 재벌개혁,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근절, 비정규직 해소, 양극화 해소, 일자리 만들기, 경제 활성화를 해낼 수 있다. 현재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것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만들기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지시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위원회의 전성기는 참여정부였다. 당시 위원회의 장점에 대한 일반 인식이 부족하여 ‘위원회 공화국’이니 ‘토론 공화국’이니 많은 비아냥을 들었다. 그러나 어떤가, 토론 없는 박근혜 정부를 겪고 나니 토론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는가. 참여정부 당시 학자, 전문가들, 노사 대표, 부처 장관들이 위원회에 참석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최종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져 좋은 정책들이 많이 실행에 옮겨졌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위원회라는 보물을 꺼내 먼지를 털고 경제 회복의 수단으로 활용하자. 위원회는 학자들의 개혁적 아이디어와 공무원들의 실무적 전문성이 결합하는 장이며, 노사 등 이해가 충돌하는 사회집단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장이니 얼마나 장한 일을 하는 곳인가. 위원회를 통해 재벌개혁, 복지증세, 비정규직 같은 민감한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고, 그럼으로써 경제 분야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적폐 청산과 개혁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통합이 가능하다. 대충 봉합해놓고 통합이라고 착각하고 넘어가면 적폐는 백년하청이요,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은 요원하다. 분명 새 정부의 어깨는 무겁지만 오래 묵은 숙제를 드디어 해내는 통쾌함도 있을 것이니 부디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한길, 개혁으로 걸어가기 바란다. 선개혁 후통합을 잊지 마시라. 오래전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은 분명히 선언하지 않았던가. “개혁 없이는 통합 없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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