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 서울메트로 3호선 대치역 선로 안에서 선릉 PSD 관리반 직원들이 2인1조로 고장난 스크린도어 센서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시각 3호선, 전 차선 운행 완료되었습니다.”
21일 새벽 12시34분. 텅 빈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승강장으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철 승객들이 승강장을 모두 빠져나가고, 모든 차량이 종점에 도착하자 서울메트로 소속 ‘플랫폼 스크린 도어’(PSD·피에스디) 관리반 직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군’과 비슷한 또래 청년들이다.
고장난 스크린도어 센서는 학여울역 방향의 8-2번 출입구. 예방점검을 하다 센서 불량을 발견한 참이었다. 레이저로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센서가 고장날 경우 사람이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거나, 자동으로 문이 열려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2인1조의 직원들은 지하철 선로 양 끝으로 내려가 붉은 경광등을 설치했다. 새벽시간 선로를 지나는 작업차량에게 ‘스크린도어 수리 중’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후엔 스크린도어 왼쪽의 비상구 문을 열어젖히고 센서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한명은 승강장에서 1m50㎝ 아래의 선로에 내려가 철제 사다리를 세워두고, 한 명은 불량 센서를 떼내는 작업을 한다. “선로에 내려가서 감시하는 사람은 선로 끝에서 차량이 오지 않는지 민감하게 살펴야해요.” 작업 현장에 동행한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관리반 직원 박창수(29)씨가 말했다.
21일 새벽 서울메트로 3호선 대치역 선로 안에서 선릉 PSD 관리반 직원들이 2인1조로 고장난 스크린도어 센서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빵-빵-’
얼마 지나지 않아 선로 끝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선로로 내려가 있던 직원은 재빠르게 승강장 아래 빈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경적을 울렸던 작업차량은 다행히 반대편 선로로 지나갔다. “새벽에는 전기, 레일 작업차량이 종종 지나갈 때가 있어요.” 안전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씨는 김군과 가까운 동료였다. 그는 “사고 당시 충격과 죄책감에 장례식장조차 찾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간 언론 인터뷰도 피해왔다는 그는 김군이 숨지기 전 같이 밥을 먹으며 ‘우리도 곧 자회사가 되니, 노동조합 활동을 같이 하자’며 서로를 북돋웠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해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는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한다며 정규직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메트로는 안전업무직을 신설해 이들을 모두 채용했다. 스크린도어 관리소도 2개에서 4개로, 인원도 146명에서 206명으로 늘렸다. 김군 사망의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던 ‘2인1조’ 근무 원칙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강도는 여전히 세다. 현재 4개 관리소에서 서울메트로 1·2·3·4호선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고 있는데, 한 개 관리소당 담당하는 역은 30여곳에 달한다. 박씨는 “2인1조이기 때문에, 한 명이 비더라도 한 팀이 없는 것과 같다. 팀이 줄어드는 만큼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수리 시간이 밀리고, 자연스럽게 승객들이 이용하는 데에도 불편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임금도 차이가 난다. 스크린도어 관리반 직원들은 모두 무기계약직인 안전업무직으로 채용됐다. 내부에서는 완전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안전업무직의 1호봉 기본급은 정규직 9급 1호봉에 비해 월 19만원 정도 낮은데, 호봉이 오를수록 차이의 폭은 더 커지는 구조다. 기본급에 따른 상여수당, 업무지원수당도 정규직보다 낮다. 실제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지난해 9월 이후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직원만 8명이다.
1·2·3·4호선 스크린도어 노후화로 인한 신고 건수는 2010년 8584건에서 2016년 1만9331건으로 6년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선릉 관리소가 담당하는 역 가운데 가장 먼 곳은 신설동역과 오금역으로, 출동 시간만 최소 30~40분이 걸린다. 서울지하철노조의 윤영태 에이에프시(AFC) 지회장은 “하루에 한 역씩 스크린도어 월간 점검을 하는데, 80여개에 달하는 스크린도어를 직원 다섯명이 관리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며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 관리소는 최소 6개로, 인원은 최소 40여명정도 더 늘어야 한다”고 했다.
20일 저녁 서울 선릉역에 자리한 PSD 관리사무소에서 서울지하철노조의 윤영태 에이에프시(AFC) 지회장과 직원 박창수(29·가운데)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21일 새벽 서울메트로 3호선 대치역 선로 안에서 선릉 PSD 관리반 직원들이 2인1조로 고장난 스크린도어 센서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선릉역 선릉 PSD 관리반 사무실에 부착되어 있는 추모의 편지. 고인의 동료였던 박창수씨는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이와 같은 추모시를 작성했다.
구의역 사고 1주기를 맞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22일 운수 노동자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생명안전주간’을 선포하고, 27일에는 구의역시민대책위와 함께 김군 추모문화제 ‘너를 기억해’를 진행한다. 동료들과 함께 추모제에 참석할 예정인 박씨는 차별적인 처우에도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직접고용을 한다고 약속했는데 이름만 정규직이고, 처우는 사실상 비정규직과 비슷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정규직화를 위해 싸워야겠다,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씨는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김군에게 보내는 추모시를 작성했다. 현재 구의역 승강장과 관리소 사무실에 부착되어 있는 추모시는 추모제에 뿌려질 유인물에도 실릴 예정이다.
‘천국에서는 빨리빨리 수리하라고 이동하라 재촉하고, 다음달에 계약 만료니까 나가라고 하지는 않겠지?/그 곳에서는 위험에 내몰리지 말고, 배곯지 말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영원한 행복의 세계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기도할게.’
글·사진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