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이임식이 끝난 뒤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자리로 걸어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법무·검찰 고위 간부들의 ‘돈봉투 만찬’에 대해 고강도 감찰을 지시한 것은 무엇보다 최우선 공약 중 하나인 검찰개혁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대통령 대행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흐트러졌던 전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셈법과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는 이 사건을 통해 법무부·검찰이 국민 정서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확인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도 절감하게 됐다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돈봉투 만찬은 검찰이 성찰할 줄 모르는 집단이라는 방증”이라고 했다.
더욱이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의 소액 금품수수까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일봉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만원씩 든 돈봉투를 주고받고, 첫 보도가 나온 뒤에도 ‘관행대로 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으로 ‘항변’한 것은 검찰 엘리트들의 ‘윤리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게 청와대 시각이다.
청와대의 전격적인 감찰 지시가 알려지자 검찰 안팎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한 검찰 간부는 “돈봉투 만찬 보도를 보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조직 상층부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일이라서 무슨 조처가 내려져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 일선 검사도 “(돈봉투를) 관행이라고 해명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더라. 잘나가는 극소수 검사들이 검찰 전체를 망치고 있으니 정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번 감찰은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검찰 내 ‘인적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간 새 정부의 검찰개혁 논의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제도’ 쪽에 치우쳐 있었던 것은 중요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 쪽을 겨냥할 마땅한 계기를 찾지 못한 탓이 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주 재조사하겠다고 밝힌 ‘정윤회 문건 사건’도 인적 개혁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돈봉투 만찬은 법무부·검찰 내 ‘황교안-우병우 인맥’의 대표적 인물인 안태근 검찰국장,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이 연루돼 있어 연쇄적인 인적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핵심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유력한 차기 총장 후보로 거론돼왔지만 감찰 대상에 포함돼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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