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개혁안을 발표한 정병하 감찰본부장(왼쪽)과 윤웅걸 기획조정본부장이 인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서부지검이 현직 부장검사와 피의자의 부적절한 돈거래를 확인하고도 이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서부지검은 사건 초기인 지난 5월에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한겨레>가 확인 취재에 들어간 지난 2일에야 대검찰청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검사의 비위사실을 알게 되면 진상 파악을 위해 대검찰청에 보고하는 게 일반적이다.
4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4월15일 게임 개발 및 전자제품 유통업을 하는 ㅈ사의 실소유주 김아무개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 회사 대표 한아무개씨가 고소한 것으로, 김씨가 중국 전자제품의 국내 총판 사업자로 속여 거래처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관련 증거로 이 회사 직원이 자금 지출 내역을 김씨에게 보고한 전자우편이 제출됐다. 전자우편에는 김 부장검사에게 1500만원을 대여금으로 지출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로부터 고소됐다는 연락을 받은 뒤 수사검사 등을 상대로 사건 청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김 부장검사와 나눈 대화 녹취록을 보면, 김 부장검사는 “수사 검사와 윗선인 부장도 점심 먹으면서 친분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려고 (서부지검) 부장들을 다 불러서 점심을 먹었다. (수사검사와도) 밥도 먹고 여러 작업도 하는데 친구가 이렇게 고생하고 노력하는 걸 이해해야 한다”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실제 김 부장검사는 지난 6월초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서부지검 부장검사들과 점심을 했다. 또 담당 검사인 박아무개 검사를 포함해 다른 검사 2명과도 따로 점심을 먹었다. 김 부장검사는 6월 중순 담당 검사실로 따로 한번 찾아갔고, 여러 차례 전화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부장검사는 ‘이 사건에 내 문제가 달려 있으니까 내가 (사건에) 나오지 않게 잘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서부지검은 수사 초기만 해도 김 부장검사가 김씨로부터 돈을 빌린 정황을 확인하고, 김씨를 상대로 김 부장검사와의 관계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씨로부터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김 부장검사의 술값도 많이 내주고, 사실상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았다. 김씨는 휴대전화로 김 부장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검찰은 김 부장검사에 대한 별도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가 검찰 조사 당시 1500만원 대여금에 대해서 다른 진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애초 검찰에서 ‘500만원과 1000만원 모두 김 부장검사와 관계없는 돈’이라고 해명했으나, 최근 <한겨레>와 만나 “김 부장검사의 요청으로 그의 지인을 위해 보낸 돈”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찰 조사 때는 김 부장검사와 상의해 거짓 해명을 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 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부장검사를 직접 조사하지도 않고 관련 계좌에 대한 추적도 진행하지 않았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우리도 김 부장검사에 대해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신병을 확보해 김 부장검사의 비위사실을 더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서부지검이 사건 초기에 김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을 대검에 의뢰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에게) 돈을 줬다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증거가 될 수 있다. 진술이 구체성이 있고 의심이 간다면 즉시 대검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영지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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