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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간첩조작’ 수사관 14명 “국가안보 기여” 훈포장

등록 2016-01-28 21:56수정 2016-01-29 08:34

1974년 소설가 이호철(맨 왼쪽)씨, 임헌영(왼쪽 둘째)씨 등 문인들이 유신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자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해 수사했고, 검찰과 법원은 문인들을 형사처벌했다.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 받았다. 당시 재판 모습. 1975 보도사진연감
1974년 소설가 이호철(맨 왼쪽)씨, 임헌영(왼쪽 둘째)씨 등 문인들이 유신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자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해 수사했고, 검찰과 법원은 문인들을 형사처벌했다.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 받았다. 당시 재판 모습. 1975 보도사진연감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③ 훈장받은 조작수사
중정·안기부·보안사 수사관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해 무죄 판결을 받은 과거사 사건 75건의 재심 판결문에 등장하는 수사관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14명이 조작간첩 사건 등을 담당한 이후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심 판결에서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고문 등이 확인된 만큼 이들의 공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간첩단 사건’ 피해자들
“팬티만 입혀 무차별 구타·고문”
최양준씨 25일 불법구금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구명서씨 조사한 수사관은
고문 주장하자 구치소 찾아가 협박
‘울릉도 간첩’ 수사 중정 파견 검사
이례적으로 그 사건 특정해 훈장

시효 끝나 현행법상 형사처벌 못해
불법 확인된 만큼 상훈은 재고해야

<한겨레>가 75건의 재심 무죄 판결문과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국무회의록을 비교·분석해보니,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등 소속 수사관 14명이 과거사 사건 수사 뒤 보국훈장 천수장 등의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간첩을 검거하여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것이 주된 사유였다. 상훈법상 훈포장 수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재심 무죄 판결문과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수사관들은 조작간첩 사건 등을 수사하며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박노수·김규남 등 유럽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팬티만 입은 채 중정 수사관 3명에게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온다. 수사를 담당했으나 훈장은 받지 않은 다른 수사관도 “자백을 받으려면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고 진실화해위 조사 때 진술했다.

사법경찰관리인 수사관들의 고문은 형법 125조(폭행, 가혹행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박노수 사건’ 재심 재판부는 “심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공소시효가 경과돼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은 할 수 없으나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1969년에 이 사건을 수사한 중정 수사관 2명은 1976년, 1977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맡은 바 직무에 헌신해 국가안전보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다.

‘재일조총련 관련 최양준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 최양준씨는 부산 보안부대 수사관한테 연행돼 25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됐다. 최씨는 1982년 12월 서울지검에 송치됐고, 이 사건에 참여한 보안사 수사관 1명은 1985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이 수사관 본인이 진실화해위에서 “간첩사건은 법정 시한 안에 조사할 수 없어 관행적으로 영장 없이 구금했다”고 진술했다. 이 기간 동안 최씨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았다. 불법체포·불법감금은 형법 124조에 따라 7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가 가능한 범죄다.

검사 앞에서 고문을 주장하자 구치소로 찾아가 협박한 수사관도 훈장을 받았다. 1986년 7월 징역 7년형을 확정받은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담당 보안사 수사관은 구치소에 찾아가 ‘검사한테 가서 왜 부인하느냐, 또 부인하면 다시 보안대로 와서 조사받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구씨는 고문을 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보안사가 요구하는 내용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수사관은 1994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성희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울릉도 간첩사건’) 수사와 관련해 중정에 파견된 검사 1명과 수사관 4명이 1974년 훈장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대다수의 훈포장 공적이 ‘간첩 검거의 공’으로 두루뭉술한 데 비해 특정 사건을 이유로 훈포장을 받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중정은 1974년 울릉도 간첩단 47명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이씨를 포함해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32명 중 28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훈포장을 받은 수사관들의 위법행위로 재심 무죄가 선고된 만큼 이들의 상훈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훈법은 공적이 거짓이거나 형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경우 서훈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피해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고 사안이 중하기 때문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 수사관들의 훈포장 공적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6년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문경찰관 이근안씨 등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훈포장 추천 기관과 공적 내용 허위 여부에 대해 협조해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끝>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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