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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임금피크제와 일자리는 별개…정부가 ‘청년’ 이용하는 것”

등록 2015-08-19 22:00수정 2015-08-20 10:13

청년 문제 활동가들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 모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이달 초 실시한 ‘청년의식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청년 문제 활동가들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 모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이달 초 실시한 ‘청년의식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15 청년으로 산다는 것] ‘청년 문제’ 전문가 좌담회
“일자리 당장 늘겠나? 길어진 구직기간 버틸수 있게 정책 마련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이달 초 ‘청년의식 조사’를 벌여 산출한 ‘2015년 청년지수’(<한겨레> 19일치 1·4·5면)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현실 그대로 보여준다. 청년 문제에 올인하는 ‘청년 전문가’들이 모여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청년 독해법’을 내놓았다. 분석을 위한 좌담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12일, 서울 홍익대 앞 ‘미디어카페 후’(blog.naver.com/thehankyoreh)에서 열렸다.

참석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신윤정 서울청년허브 기획실장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사회)

# 다 같은 청년이 아니다

조성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련해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른 응답 차이가 너무 커서 놀랐다.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낮아질수록 미래가 나아지리라고 믿는 비율이 떨어지는 게 한국 사회의 위험신호처럼 느껴진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소수의 광적인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그런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일본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시스템으로 가는 것 같아 겁이 난다.

서복경 다른 조사를 보면, 40대 미만에서는 자산이 많을수록 보수적이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자산 효과’의 경향성이 나타난다. 40대 이상과는 다른 특성이다. 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는 나의 노력으로 소득이 불어나면 정치 성향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부모한테 물려받은 자산이 영향을 주진 않는다. 우리 사회는 소득 효과보다 자산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같은 청년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세대 내 격차가 위험한 수준이다.

임경지 패자부활 지수(중상층 이상 37.7점/빈곤층 17.2점)나 공정성 지수(중상층 이상 26.4점/빈곤층 18.6점)를 봐도 차이가 크게 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많은 청년이 공감했다. 하지만 금수저 물고 태어난 청년들은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신윤정 부모가 저소득층인 경우보다 중간층인 자녀들에게 일자리와 주거 문제가 더 열악하다. 저소득층은 복지 혜택이라도 받지만 중간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지 대상과 청년 복지 대상은 다르다. 이런 점을 간과해 청년 정책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 임금피크제는 찬성, 일자리 기대는 접어

서복경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임금피크제 찬성’ 70.3%, ‘일자리 늘어날 것이다’ 24.7%). 청년들에게는 임금피크제와 일자리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임금피크제 찬성 비율이 높은 이유는 그동안 임금피크제가 사회적으로 익숙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간과한 채 청년들이 장년층에게 “당신들도 당해봐라” 하는 식의 세대 갈등 프레임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건 위험하다.

조성주 박근혜 정부는 적극적으로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 이명박 정부는 대졸 초임 삭감 등을 먼저 하면서 장년층의 고통 분담을 내세웠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것도 없다. 청년 세대가 먼저 세대 갈등이 아닌 연대 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컨대 국민연금과 관련해 미래 세대가 보험료 인상을 수용하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등 장년층의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

신윤정 임금피크제와 청년 일자리를 별개로 보는 건 당연하다. 일자리 몇십만개 만들겠다는 ‘양적 포트폴리오’를 믿는 청년들은 없다. 청년들에게는 고용 유발 효과가 있는 산업이 무엇인지, 어떤 질의 일자리인지가 훨씬 중요한데, 정부는 그냥 일자리 개수만 따진다.

정준영 청년의 삶이 나아지기를 정부가 원하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청년고용 종합대책도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려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적절히 청년들의 불만을 관리하다가 임금피크제처럼 누군가를 공격할 때 청년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청년이라도 다 같진 않아
기회는 평등하단 말 공감 못해”

“청년고용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정부는 청년을 이용하지 말라”

# 취업이 전부는 아니다

정준영 일자리뿐 아니라 연애와 결혼, 주거비, 빚에 대한 청년들의 부담도 상당하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일자리는 없고, 월세는 내야 하고 이때 빚이 생긴다.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주거, 부채 등 청년이 현실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소득이 없는 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유럽의 ‘청년 수당’처럼, 한국에서도 성남시에서 ‘청년 배당’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일자리 안전망’을 중심으로 종합적인 청년정책을 논의해야 한다.

임경지 20대 초반에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대거 서울로 들어왔다가 20대 중·후반엔 서울 밖으로 나온다. 높은 집값 때문에 밀려나는 것이다. 20대 후반 청년들이 주거정책의 타깃이 되어야 하는데 정책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여전히 주거 복지의 대상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의 가산점 기준은 4인 가족, 해당 지역 연고자, 산업단지 근로자 등이다. 일자리나 교육을 위해서 상경하고 독립한 20대들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신윤정 정치권과 정부에서 ‘청년 문제는 무엇이다’라고 정의해 본 역사가 없다. 누가 청년인지, 무엇이 청년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지난 10년 동안 청년정책은 강박적으로 ‘일자리 창출’에만 매달렸다. 모든 청년 문제 해결을 일자리 창출로 욱여넣었다. 20만개든 40만개든 일자리를 빠르게 창출할 수 없다는 것부터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청년 문제의 핵심은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는 시간이 점점 장기화하면서 주거·부채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 ‘헬조선’ 바꿀 수 있다

임경지 청년을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은 정치인을 물었더니 ‘모르겠다’가 가장 많다. 청년 세대는 사회적 불평등, 불공정을 자신의 삶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어떤 정치세력이 그 고통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다.

신윤정 청년들이 한국 사회를 ‘헬조선’(한국 사회를 지옥 같다고 표현한 신조어)으로 일컬을 정도로 극심한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청년 관련 조사를 잘 들여다보면 물질주의보다 탈물질주의, 성장보다 분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 집단보다 개인 존중 등 청년이 지향하는 미래 가치가 분명히 있다. 미래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청년 문제를 확장해야 한다.

서복경 청년 문제의 보편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청년 문제는 다른 계층·집단·세대가 겪는 공통의 문제를 반영하는 한국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청년 문제 해결을 세대 연대로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노동시장 개혁에 ‘일베’처럼 극단적인 청년들이 나서서 기성세대를 공격하는 구도가 나타날까 걱정이다. 청년들이 먼저 세대 연대의 방식을 기획해야 한다.

정준영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청년’의 자리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삶의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다. 청년이니까 도와주자, 미래를 위해 청년에 투자하자는 ‘청년 프레임’으로는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청년의 권리를 보장해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보편적 권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노동개혁 과정에서 세대 연대가 가능하려면 양대 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미취업 청년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려면, 보험료를 납부하는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야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정리 진명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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