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보려고 퇴근뒤 곧장 집으로
한국 선전·이변 속출에 관심 커져
못본 경기는 업무중 ‘도둑 관람’도
한국 선전·이변 속출에 관심 커져
못본 경기는 업무중 ‘도둑 관람’도
‘지점장님, 회식 이야기는 제발 꺼내지도 마세요. 월드컵 끝나고 합시다.’
은행원 김아무개(31)씨는 지난 16일 저녁 지점 회식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 말을 수십번이나 속으로 삼켰다. 축구를 좋아하는 김씨는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유럽과 남미 강팀들의 경기를 볼 생각에 경기 일정을 따로 챙겨놓고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터였다. 월드컵이 시작된 뒤로는 친구들과 저녁 약속도 잡지 않고 바로 퇴근하는 그였지만, 결국 16일 밤 회식 자리가 길어지며 이튿날 새벽 1시에 열린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그날 아침 독일이 4 대 0으로 이겼다는 뉴스를 본 김씨는 포르투갈 팬들 못지않게 속이 쓰렸다.
지난 대회 우승팀 스페인이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이변이 속출하면서 월드컵 열기가 갈수록 달아오르자 축구를 좋아하는 직장인들도 좌불안석이다. 직장 상사가 회식으로 ‘태클’을 걸어오면 피할 재간이 없다. 새벽 4시 경기는 회식이 없더라도 웬만해서는 시청이 힘들다. 결국 업무시간에 새벽 경기를 ‘도둑 관람’해야 한다. 직장인 박아무개(32)씨는 19일 “업무 특성상 회식이 많은 편인데, 4년에 한 번뿐인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로 보고 싶어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보지 못한 경기는 상사 몰래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재방송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아예 단체관람으로 회식을 대신하는 경우도 생겼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아무개(35)씨는 “한국팀의 16강 진출 분수령인 23일 새벽 알제리전을 직원들과 관람하고 조기 퇴근하는 방법을 생각중”이라고 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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