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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약자들에게 집중된 위험…시민이 개입해 변화시켜야”

등록 2014-05-15 20:26수정 2014-05-16 11:06

세월호 침몰 등을 주제로 대담 중인 울리히 벡(오른쪽) 교수와 한상진 명예교수. 심영희 석좌교수 제공
세월호 침몰 등을 주제로 대담 중인 울리히 벡(오른쪽) 교수와 한상진 명예교수. 심영희 석좌교수 제공
[창간 기념 특별 대담]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
대담/ 한상진 교수
사회·정리/ 심영희 교수

한겨레는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를 근원적으로 성찰해 보자는 취지에서 ‘위험사회’ 연구로 잘 알려진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의 대담을 마련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세월호 사건은 한국 사회에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화하라는 “이제는 그만”의 명령을 일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위험이 “상처받기 쉬운 약한 집단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나 전문가가 위험의 규정과 관리를 독점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시민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담은 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의 사회로 5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뮌헨대 코스모폴리탄 연구소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상진 교수와 심영희 교수는 <유럽과 동아시아 자유주의 비교연구>라는 유럽연합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며 현재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머물고 있다.

이봉현 기자 bhlee@hani.co.kr

심영희(이하 사회) 세월호의 비극적 참사로 한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실망과 허탈감, 변화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이 사고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상진(이하 한) 저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던 90년대 중반부터 위험사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에도 발전궤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사회는 익숙한 과거의 체질로 돌아갔습니다. 위험에 대한 경각심, 시민의 안전보다 외형적 성과에 집착하는 체질은 끈질깁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국가가 위기를 관리한다는 통념은 무너진 것 같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기본 의무조차 방기됐습니다. 한국의 상황이 벡 교수의 이론을 검증하고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한 예로 보입니다.

울리히 벡(이하 벡) 이번 사고로 수백명의 학생들이 희생돼 가슴이 아픕니다. 단원고 교감의 자살에 담긴 회한과 자책이 마음을 울립니다. 이런 비극적 사건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도덕적, 정치적 자각이 생깁니다.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묶는 도덕적 명령이 절규처럼 울려 퍼집니다. “이제는 그만”이라는 도덕적 명령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화하라는 거대한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국민적 에너지이고 사회학적 사실입니다.

“이제는 그만!” 이것은 수많은 양민이 희생되고 실종되었던 1980년대 남미의 군사체제하에서 시민이 외쳤던 “눙카 마스”(Nunca Mas)를 뜻합니다. 이 안에는 분노와 함께 미래의 희망이 녹아 있습니다. 변화를 향한 국민의 도덕적 요구가 있습니다. 단순한 공포, 도피를 넘어 인본적인 문화전통으로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도덕적 열망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회 무엇이 잘못되어서 세월호 침몰 같은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는지 살펴볼까요?

이 사건 안에 한국인의 자화상, 한국 시스템의 현주소가 있어요. 회사의 맹목적 이윤추구,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 업무수행의 무능, 일상화된 안전불감증이 얽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충분히 구출될 수 있었던 많은 생명이 수장된 셈입니다. 관련자의 책임이 막중하지만 그가 속한 시스템이 이처럼 안전을 무시하고 이윤을 중시하며 형식적 감독에 치우치는 타성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도 안에 관련자의 책임의식이 자연스럽게 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해 책임감이 부족해진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한 보기로, 싼 노동을 위해 단기간의 계약을 맺고 불공정 대우를 받는 비정규 근무자는 도덕적으로 책임감이 약하기 쉽습니다. 사고가 난 선박도 그러합니다. 자신이 존중받는 풍토 안에서 남을 존중하는 책임윤리도 성장하니까요.

사회 저는 이 사건이 벡 교수가 말한 ‘조직화된 무책임’의 전형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법사회학을 가르치면서 법전에 쓰여 있는 법과 실제 작동하는 법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책임과 의무, 권리에 대한 규정이 있다 해도 집행되지 않으면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해운산업은 대부분 선박의 실소유자가 불확실하고 선원은 다국적이며 회사 운영과 보험 등도 복잡합니다. 따라서 초국적 수준에서 조직화된 무책임이 발생할 개연성이 큽니다. 시스템이 잘못 운영되었지만 책임은 개인으로 귀착되지요. 그래서 고작 한다는 것이 현장에서 의무를 방기한 관계자를 구속 수사하고 그들에게 대중의 분노를 집중시키며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끝나면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같은 사건이 또 터집니다.

사회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인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럼 시스템의 책임은 어떤가요?

국가 실패, 시장 실패를 논하듯이 시스템 실패를 논해야 합니다. 단적인 보기는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서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재난, 사고, 차별, 고립, 정신질환의 징후들이 곳곳에 너무 깊고 광범하게 퍼진 것입니다. 세월호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국가운영의 기본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시스템 실패 탓하지 않고
개인들 책임만 묻는다면
한바탕 난리로 끝날 것
시민들이 직접 개입해야
위험사회는 관리될수 있다

국가의 기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홉스는 권위적 국가를 거론한 보수적 정치이론가였지만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한 보기로, 식품오염을 막지 못한다면 저항권이 생긴다는 것이죠. 국가는 식품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한국은 위험사회 극복을 향해 중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보의 왜곡에 따른 불신이 위험사회의 대중심리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정부는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많은 승객이 구조되었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큰 잘못입니다. 정보소통이 위험관리의 핵심입니다. 도시에 있는 화학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회사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잘하고 있다고 말할수록 사람들은 상황이 나빠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신뢰가 파괴되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이 어렵습니다.

지난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소련 붕괴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소련의 붕괴가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당시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도 잘못 대응했죠. 정보 통제의 역설적 결과는 정보 왜곡으로 인해 권력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현대의 위험사회에서는 불확실성과 권력의 관계가 한결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9·11 재난을 활용하여 국가통제력을 현저히 강화시켰습니다.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인간안보를 규정하고 불확실성을 규제하는 기구, 법령,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범죄의 사전예방을 위한 검색, 수사 기능이 강화되면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소수 집단이 늘었습니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증대되었죠.

“세월호 참사는 ‘이제는 그만’이란 거대한 열망 일깨워”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인은 위험사회의 진면목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운영의 틀을 일신해야 한다는 외침이 분출하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말했고 진도에 두 번이나 내려갔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재난관리 기구를 확충하고 법령을 개정하며 정부 업무기강을 확립하고 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시민들이 생활 속의 위험 징후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참여하는 것입니다. 국가 중심의 대응과 시민 참여의 길이 있습니다.

독일 남부지역에는 공장 굴뚝이 많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검댕 같은 물질이 주택이나 건물에 피해를 주어 소송까지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많은 굴뚝 가운데 어떤 것이 책임이 있는지 밝혀낼 수 있는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피해는 명확한데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법 체제 안에 내장된 조직화된 무책임의 문제입니다.

위험을 만드는 쪽과 이에 영향을 받는 소비자 사이의 관계는 오늘날 매우 갈등적입니다. 위험에 직면한 시민들의 아우성이 분출하면서 이들이 참여하는 위험관리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문가와 함께 반대 입장의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시민의 입장을 변호하는 전문가의 활동이 제도화됩니다. 이것은 곧 위험을 규정하는 권력관계의 변화를 뜻합니다. 정부나 전문가가 위험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반대로 시민이 직접 개입합니다. 시민은 나름의 규범과 판단에 의해 위험에 대응합니다. 이런 시민적 개입에 대한 깊은 인식이 과학과 법률체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위험생산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목소리가 투입됩니다. 피해가 있고 고통받는 집단이 있다면 산업체는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제불능 사회를 만들고도
권력집단은 체질 못바꿔
그래서 통제 더 강화하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국가-국민 균열만 커질 뿐

사회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오래된 국가중심의 통제 강화가 아닐까 합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부기구를 개편하며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겠죠. 그렇지만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위험관리 체제로 전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벡 교수가 주창하는 ‘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ism)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해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인가 위험이 가득 찬 사회에서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으로 이행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내가 말하는 ‘해방적 파국’의 해방은 역설적인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개념입니다. 계급 해방과 같은 뜻은 아닙니다. 위험사회를 관통하는 불확실성에 닻을 내리고 있어요. 과학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세계 금융불안, 국제테러, 유전자변형식품, 새로운 질병 등 보기는 많아요. 불확실성을 자각하는 것은 인간 삶의 새로운 모습이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계속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찰적인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가, 누구도 확실한 답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나 전문가만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식은 제한되지만 우리는 참여를 통해 새로운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의 위험요소를 수용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근대적 삶의 창조적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방은 확실성에 대한 맹신을 버리는 거로군요. 근대화가 성공할수록 우리의 삶은 확실히 더 복잡해집니다. 시민참여가 증가한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다만 참여적 시민은 자신이 내린 결정의 의도치 않았던 위험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확실성은 상당히 성찰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런데 참여에 따른 책임의식을 시민에게 요구하기 전에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위험관리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 전제 위에 시민의 자기성찰적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한 보기로, 위험의 사회적 분배 문제가 있습니다. 상처 받기 쉬운 약한 집단들한테 많은 위험들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위험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사회제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종종 제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위험 분배를 논하기 전에 일반 시민의 참여 기회와 절차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이들이 불평등한 위험배분에 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가장 초보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누가 위험을 규정할 것인가입니다. 정부인가요, 전문가인가요? 위험을 생활 현장에서 지각하고 위험의 피해를 받는 주체는 시민입니다. 따라서 시민이 자신의 체험에 따른 불안이나 요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런 시민의 요구에 대해 사회제도가 얼마나 신속히 호응하는가의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것은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에 집착하면서 시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체제에 엄청난 도전을 뜻합니다. 여기에 지속적 민주화의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의 신화에 사로잡혔습니다. 한국도 그런 믿음과 가정으로 돌진적 근대화를 했던 것이죠. 그런데 뜻밖에 더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고도 복합적인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2차 근대로 가는 문지방입니다. 그러나 권력집단은 과거의 체질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해요. 법을 개정하고 경찰을 늘리고 온갖 통제기구의 권한을 강화하고 여러 정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서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하죠. 그러나 이것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비생산적입니다. 여러 나라 사례들을 보면 시민의 증가하는 위험감수성과 통제 위주의 국가운영 사이의 균열이 커지면 위험이 관리되기는커녕 반대로 폭발적 상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치적 폭발은 단순한 불만의 표현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변화의 욕구가 작용합니다. 인간을 도구이자 상품, 통제 대상으로 취급해온 국가운영의 체질과 인간다운 대접과 존중을 요구하는 국민의 규범 사이의 간격이 극단적으로 벌어진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안에 담긴 도덕적 분노는 곧 체제변화를 향한 정치적 에너지로 변합니다.

사회 상당히 논의가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해방적 파국을 이끄는 행위 동력을 정리해 보았으면 합니다.

파국은 긴장과 위험이 고도로 응축된 상황을 뜻합니다. 파국이 오면 변화가 불가피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불길한 느낌도 있지만, 미래사회 조직의 나침반이 되기도 해요. 새로운 기준, 새로운 쟁점이 나옵니다. 시민들, 전문가들, 정치인들이 모여 위험사회를 향해 “이제는 그만”이라는 시민적 양심과 기준을 공표합니다. 해방은 규범적 철학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에너지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개조’를 말하는 것을 보면, 현 상황이 파국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파국이 희망을 주는 해방적 파국인가, 아니면 공포를 주는 종말적 파국인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여러 힘이 여기에 작용합니다. 한국 위험사회의 한 특징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힘이 매우 강하다는 것입니다. 불안, 절망, 공포 등입니다. 그런데 끌어당기는 힘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정치가 이에 개입합니다. 문화가 작동해요. 한국의 경우, 공포 대신 분노와 희망을 표현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문화적 충격’이 작용합니다. 9·11 공격, 히로시마 원폭,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이 그렇고 세월호 참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존중의 보편적 윤리를 파괴하는 범죄나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민족국가를 넘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만”의 윤리이지요.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경험이 유럽을 변화시켰습니다. 유럽공동체(EU)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본주의 문화가 새로운 규범적 지평을 만듭니다.

사회 모든 변화에는 지지 집단도 있지만 반대자도 있어요. 어떤 전략이 필요합니까?

두 가지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깨어 있는 시민과 전문가들의 참여입니다. ‘유로 위기’가 터졌을 때 개별 국민국가들은 위기 수습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중앙은행장은 잠재적 파국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처럼 책임의식이 투철한 공적 인사들이 개혁정치를 끌고 갑니다. 다른 하나는 언론인입니다. 뉴스미디어는 비판적으로 반응하고 이를 견지함으로써 정치적 공간을 열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잠재적 파트너로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죠.

저는 침묵하는 다수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보통 때는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식과 기대가 심각히 상처 받는 국면이 오면 이들이 직접 나섭니다. 촛불을 들고 가족과 함께 시내로 행진을 해요. 이것은 감동이자 엄청난 대중의 힘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 제도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불행히도 한국에는 이런 정치 리더십이 빈곤합니다.

대안의 준비도 중요합니다. 좋은 보기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입니다. 이 파국적인 사태에 직면하여 일본에서도 탈원전 운동이 있었고 국민 지지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을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일본 정치 리더십의 빈곤도 있지만 대체에너지 산업이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독일은 과감하게 원전 폐쇄의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독일 총리는 원전 에너지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물리적, 정치적 위험을 깨닫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사회 좋은 대화를 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벡 교수는 7월에 학술회의차 한국에 오실 예정인데 방한이 기다려집니다.

■ 울리히 벡 교수는 누구

울리히 벡 교수. 사진 남종용 기자 fandg@hani.co.kr
울리히 벡 교수. 사진 남종용 기자 fandg@hani.co.kr

울리히 벡은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앤서니 기든스(영국)와 함께 현대사회를 진단할 때 꼭 참고해야 할 사회학자 중 한명이다.

1944년 독일 슈톨프(현 스웁스크)에서 태어나 뮌헨대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뮌스터대 등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뮌헨대 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서 <위험사회>(1986)에서 규정한 사회는 성찰과 반성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 사회이다. 근대성의 제도들은 위험과 위험 생산을 부정하며 무책임을 제도화하는데, 벡은 이것을 ‘조직화된 무책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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