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결합돼 다양성 확대
신구세대 위화감 등 부작용도
‘디지털 시민성’ 현실세계와 연계
공동체 윤리 포함 공론의 장 필요
신구세대 위화감 등 부작용도
‘디지털 시민성’ 현실세계와 연계
공동체 윤리 포함 공론의 장 필요
“지하철 승객의 90%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때문에 승객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며 귀신만이 내가 지하철을 탄 것을 안다.” 홍콩 영화배우 저우룬파(주윤발)가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전재산 사회환원을 약속하면서 평소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생활습관의 배경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열차 승객들의 스마트폰 사랑은 지난해 9월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전철에서 비극으로 이어졌다. 승객들이 가득한 열차에서 20살 대학생 저스틴 발데즈가 난데없는 묻지마 총격을 받고 숨진 것이다. 범인은 열차에 올라탄 뒤 권총을 꺼내 공개적으로 매만지면서 여러 차례 승객을 겨냥하다가 내리려는 발데즈를 쏘아 살해하고 하차했다. 놀랍게도 모든 승객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느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총소리가 난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열차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으로 당시 상황이 확인됐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낯선 장면들이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장한 시민의 힘은 탱크를 앞세운 수십년 독재권력도 무너뜨렸다. 하지만 앞서 말한 중국과 미국의 지하철 사례에서처럼 디지털 기술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변화나 문제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도록 하는 마력을 함께 갖고 있다.
■ 더 개인화되고 더 연결된 세상 전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정보 취득 문턱이 낮아진 덕분에 공공적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제 설정,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주로 개인적 도구로 활용되면서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에 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소통 기술의 발달로 접촉이 적던 다른 집단과 소통이 늘어나고 상대에 대한 인정과 다양성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보다, 편가르기나 소수자 배제와 같은 부정적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일베’의 반인륜적 표현, 카톡 왕따 등이 대표적이다.
자녀 수 급감과 가구 구성 형태의 다변화로 확산되는 개인주의는 사회의 네트워크화를 부채질하는 동력이다. 개인주의와 온라인 연결성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지만 전통적 관계는 쇠락하고 있다. 조부모와 경험을 공유하는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현실은 온라인화에 아랑곳없이 신구세대의 소통 지점을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긍정적 측면도 있다. 숭실대 배영 교수(정보사회학)는 “오프라인에서는 경험 중심의 관계였으나 온라인에서는 관심 중심의 관계로 달라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관계로 달라진다. 느슨한 유대이긴 하지만 구속이나 억압과 거리가 멀어 관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소속 집단이 나이 등에 의해 수동적으로 정해지던 관행에서 앞으로는 개인이 어떤 활동공간에서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디지털 시민성 가치와 규범 교육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온 가족과 학교가 디지털 환경에서 달라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지배적인 정보 획득 도구와 소통 수단의 활용에서 부모와 교사 세대보다 뛰어난 어린 세대가 등장했다. 디지털 문명의 속도와 규모에 압도된 기성세대 다수는 디지털 세대와 문화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보다 방관적 자세 속에 두려움을 품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상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소통 환경을 반영한 시민의식을 요구한다. 시민성(시티즌십) 변화를 연구해온 미국 워싱턴대 랜스 베넷 교수는 온라인 환경에서 시민성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적 시민사회에서 이상적 구성원이 공공적 사안에 대해 정보와 식견을 갖추고 의무에 충실한 시민이었던 데 비해, 인터넷 이후엔 쌍방향 미디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슈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기반 사회에서 잘못된 관계 형성은 악성댓글, 프라이버시 침해, 특정 정보 편식 등의 새로운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 온라인만의 해결은 불가능 온라인과 디지털 기술로 나타나는 문제가 오프라인에서의 변화와 역학에서 비롯하고, 애초 가상공간으로 등장한 온라인이 갈수록 현실세계와 연계성이 강화된다는 점도 디지털사회에서의 새로운 시민성 모색에 주요 변수다.
지난 4일 서비스 10돌을 맞은 페이스북은 기존 인간관계와 사회구조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는 거대한 힘이다. “궁극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프라이버시는 더이상 사회적 규범이 아니다”라며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주장해왔다. 점점 현실과 실제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사회관계망에서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현실은 실제 생활공간에서 자유로운 사적 공간을 축소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공동체 윤리와 기준을 논의하고 교육을 통해 공유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나는 배경이다. 박기범 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는 “디지털 시민성은 새 개념이라기보다 사회가 디지털화한 데 따라서 오늘날 필수적인 시민교육이다. 하지만 제도교육을 마친 기성세대가 체계적으로 사회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며 “언론과 학계의 논의를 통해 디지털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성에 관한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