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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소통하고 연대하며…일상을 바꾼 ‘디지털 혁신’

등록 2014-02-05 21:13수정 2014-02-12 17:26

[2014 기획]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임태주(48) 출판사 ‘행성B:’ 대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20년 동안 책바치(책 편집자를 말하는 은어)로 살면서도 내가 책을 쓸 수 있을지 몰랐는데 페이스북 친구들이 가르쳐 주었죠. 나에게 그런 재주가 있다는 점을요.” 그는 2007년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한 에스엔에스(SNS) 얼리어답터이고, 페이스북에서 수천명의 친구와 팬클럽도 있다.

4일 서울 상수동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쓰는 법’을 터득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책을 팔겠다는 생각으로 트위터를 시작했죠.” 그러나 사람들은 기업형 홍보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2011년 페이스북으로 옮긴 그는 먼저 가슴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점차 그의 글에 동감하는 이들이 모였고 그는 이들과 ‘플래닛B’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에 갇혀 있으면 인터넷의 콘텐츠에 불과하겠구나 싶었죠. 모임을 계기로 무엇인가 해보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변호사, 사진가, 파일럿, 주부, 의사, 시인 등 페이스북 친구 430명이 모였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회원 가운데 전문가를 선생님으로 삼아 사진반, 시학당, 책읽기반 등 소모임들을 조직했다. 임 대표는 “우리 사회 관계가 혈연·학연·지연으로 짜여 있죠. 인터넷은 현실 관계에서 지위와 체면 등으로 꺼내지 못한 생각과 욕구를 연결해주는 통로예요”고 말했다. 그도 친구들의 권유에 힘입어 페이스북에 올렸던 단상들을 모아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혈연·지연 등 사회관계 벗어나
다양한 온라인 친구와 이야기
수평적 관계맺기 활발히 이뤄져

웹·모바일 통해 십시일반 투자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 도우며
새로운 문화운동 씨앗 뿌리기도

극우·여성비하 비판받는 ‘일베’
끼리끼리 문화 부작용 보이지만
인터넷 정화 앞장 ‘일워’도 등장


■ 꿈을 현실화한 크라우드펀딩 디지털 도구는 쓰기에 따라 새 가능성을 열어주는 출구가 된다. 플래닛B처럼 웹의 다양한 커뮤니티, 카페, 소모임들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조합의 연결고리들이 되고 있다. 3~4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김은선(33)씨는 “알던 사람들끼리는 기존 관계 때문에 여행을 가자거나 독서토론을 하자는 등의 제안을 하기가 오히려 껄끄럽다. 그런 면에서 온라인 친구는 서로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근대에는 개인이 하나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네트워크에 접속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자아를 지닐 수 있는 게 현대 디지털 시대”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라는 개인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네트워크 대중의 힘은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6일 개봉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최근 사례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사례를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순제작비 10억원을 모두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첫 영화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크라우드펀딩이란 후원, 투자 등을 목적으로 웹과 모바일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말한다.

제작 투자를 총괄해온 윤기호 피디(PD)는 “인터넷이 없다면 이 영화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재벌 대기업의 치부를 다루는 <또 하나의 약속>은 투자 유치에서 홍보, 상영관 확보까지 난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영화는 애초 보통의 상업영화처럼 창업투자사의 투자를 유치하려 했으나 소재를 보고 모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번주 개봉작 예매율 1위를 기록했지만 공중파 3사의 영화 소개 프로는 다루지 않았다. 확보 개봉관 수도 80개 미만에 불과해 통상 기대작 500개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윤 피디는 “제작비 일부라도 마련하자는 생각으로 크라우드펀딩 누리집에 프로젝트를 올리고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알렸다.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다는 분들 1만명이 모여 12억원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다수는 대기업의 대리, 과장인 20~30대 직장인이지만 그중에는 익명의 반도체 연구원, 자신의 버스에 광고도 붙이겠다는 버스기사, 1000만원을 투자한 섀시 가게 주인 등도 있다.

좀더 나은 세상, 전에 없던 기술, 신선한 문화운동 등을 만들겠다는 뜻을 구체적 성과로 바꿔내는 플랫폼인 크라우드펀딩의 확대는 세계적 현상이다. 크라우드펀딩 조사업체 ‘매솔루션’ 집계를 보면, 2010년 8억5400만달러(9200억원)에 불과했던 세계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2012년 28억달러(3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크라우드펀딩 누리집인 킥스타터의 지난해 성과를 보면 214개국 300만명이 5000억원 넘는 돈을 투자했는데 프로젝트 중에는 스마트워치나 안드로이드 운용체계의 비디오 게임기, 공기부양 자동차 등을 개발한 굵직한 것들도 많다.

■ 웹과 이용자 특성 고려한 설계 주목 사이버 세계에서 대중의 움직임이 늘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자기 관심사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끼리끼리 뭉치는 특성상 부정적 경향으로 극단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극우, 여성비하적 특성을 보이는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베를 겨냥해 만들어진 ‘일간워스트’(일워)의 사례는 웹의 특성을 고려해 잘 짜인 설계와 사용자 배려가 만나면 전화위복을 이룰 수 있다는 단서를 보여준다.

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일워 운영자 이준행(30)씨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워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르펜의 국민전선, 오스트리아 극우당 등 우경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이들을 그냥 ‘이상한 애들’로 치부하고 방관했더니 정치 세력으로 성장해버렸다.” 이런 취지로 만들어진 일워는 예상대로 초반에 일베 이용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게시판 글의 절반은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등의 도배글이었다고 한다. 이씨와 개발자들은 국가정보원이 댓글 조작을 하듯 소수가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어뷰징’을 잡는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다.

안정이 되자 공격이 막힌 일베 사용자들과 일워 사용자 사이에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일워 누리꾼들은 일베식의 비난전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했습니다. 논쟁이 거칠어지면 사용자들이 떠나고 커뮤니티는 망하는데 그에 앞서 서로 자제하자는 문화가 자리잡았죠.” 현재 일워는 하루 수백만명이 방문하는 커뮤니티로 자리잡았다. 일베 사용자들이 일워로 ‘전향’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준행씨는 사이버 세상의 미래는 “사용자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정보에 대해 판단하는 비판적·분석적 사고를 갖추는 게 핵심입니다. 이는 디지털과 분리해서 살 수 없는 미래에 기본 소양으로서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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