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박은호(가명·18)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 9시에 나가 밤 10시에 들어왔다. 집에는 정부에서 지원해준 컴퓨터와 인터넷이 있었다. 박군에게 컴퓨터는 학습과 정보생활의 도우미가 아닌 모든 걸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사이버 세상이었다.
방학이면 온종일 인터넷 게임을 했다.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고 자폐 증상도 나타났다. 그렇게 5년이 흘러 고등학교에 올라갈 나이가 됐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던 어머니는 박군을 지역아동센터에 보냈다. 센터 교사가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집의 컴퓨터를 압수했다.
그 뒤로 박군의 생활은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공부에 전념해 고2 때는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박군은 올해 3월 자신이 원하던 전문대 진학을 앞두고 있다. 박군은 “센터 선생님이 그때 제 컴퓨터를 없애지 않았더라면 전 아직도 게임에 빠져 어머니 걱정만 시키는 아들이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서울교육청 지역별 학생조사결과
스마트폰 ‘위험·주의 사용군’
금천·구로·영등포, 강남·서초보다↑
소득 낮을수록 중독위험 높아져
저소득층 학생들 ‘정보화 지원’에도
중독 등 부작용 방지책 미흡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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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인터넷 중독률 높아 정부의 디지털 격차 완화 정책이 하드웨어 지원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양적 접근에 집중된 결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소득이 낮은 지역의 학생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현상이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제공한 ‘서울시교육청 스마트폰 및 인터넷 이용습관 전수조사’(2013년 4월) 결과를 보면, 남부교육지원청 학생 중 ‘인터넷 위험 및 주의 사용군’에 속한 학생은 4.1%(2만1896명 중 900명)로 강남지역교육청의 2.8%(2만8784명 중 795명)보다 높았다. 남부교육지원청 관할인 금천·구로·영등포구 지역은 강남교육지원청이 담당하는 서초·강남구보다 소득 수준이 낮다.
박홍근 의원은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에선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한부모가정인 경우가 많아 자녀들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부교육지원청 관할 지역에서 학생들의 과다사용률이 높은 것은 이런 이유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학생을 대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통신비를 지원하는 ‘초중고 학생 교육정보화 지원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2013년까지 5900억원을 들여 197만2000여명의 학생이 수혜 대상이었다.
이 사업은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어 게임 과다 사용 같은 부작용을 막는 데는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교육청에선 이 학생들의 인터넷 사용 실태를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대신 1년에 1차례씩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을 한다. 또한 정부가 1년에 한 차례 전국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습관 전수조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위험 또는 주의 사용군으로 나온 학생들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에서 상담을 받거나 증상이 심한 경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통신비를 지원받는 학생만 따로 관리를 하면 낙인 효과가 우려돼서 별도 관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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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격차 배가 인터넷만이 아니다. 스마트폰도 디지털 격차를 키우는 데 가세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살면서 단대부고에 다니는 조아무개(18·고2)군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피처폰(2G)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용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조군 스스로 학업에 방해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스마트폰의 부작용에 관한 뉴스를 보던 어머니가 “스마트폰은 놀거리가 많아서 방해되니까, 대학 가서 스마트폰으로 바꾸자”고 말한 뒤로, 조군은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조군은 “학교 친구들도 고3 올라갈 때가 가까워지면서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으로 바꾸는 경우가 우리 반에서 5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구로구에 사는 황아무개(16·중3)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방학인 지금 하루에 4~5시간가량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낮에 스마트폰을 하면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기 때문에 밤 11시부터 스마트폰을 집중적으로 쓴다. 웹툰을 보고 게임과 카카오스토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4시가 된다. 황양이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 검사를 한 결과 ‘고위험 사용자군’으로 분류됐다. 황양은 “가끔은 스마트폰을 그만 해야 하는데 싶어도 습관적으로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가정 청소년들이 고소득층 가정 자녀들보다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위 서울시교육청 조사에서 ‘스마트폰 위험 및 주의 사용군’ 학생은 강남교육청에서 4.6%(2만6430명 중 1213명)지만 남부교육청은 7.8%(1만8768명 중 1458명)로 현저히 높았다. 이는 스마트폰 보유 비중과 반대된다. 스마트폰 보유율에서 강남교육청 관내에 사는 학생들(91.3%)은 남부교육청 관내 학생들(84.5%)보다 높지만, 실제로 스마트폰 과다사용률에서는 남부교육청 학생들이 훨씬 높게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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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부모는 스마트폰 몰라 자녀들에게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을 지도하기 위해서 저소득층 부모들이 스마트폰을 잘 알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3년 발표한 ‘2012 신디지털 격차 현황 분석 및 제언’ 보고서를 보면, 일반 국민의 ‘모바일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뒀을 때 저소득층은 46.1%에 머물렀다. 진흥원은 2012년 8~11월 전국의 일반인과 4대 소외계층(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북한이탈주민과 결혼이민자 등 모두 1만7500명을 조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이 중 저소득층엔 전국 만 7~76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3000명이 해당된다.
연구 책임자인 이재웅 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저소득층의 모바일 정보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기본 기능만 탑재한 저사양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저렴한 요금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소외계층의 눈높이에 맞는 모바일 활용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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