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카이저가족재단 연구결과]
미국서 부모 소득·학력 낮을수록
자녀 미디어 사용가능성 높아져
“성적보단 시간낭비 격차 늘려”
미국서 부모 소득·학력 낮을수록
자녀 미디어 사용가능성 높아져
“성적보단 시간낭비 격차 늘려”
미국 시카고대학의 오퍼 맬러머드 교수팀은 2009년 루마니아에서 정부로부터 교육 용도로 컴퓨터를 지원받은 만 6~18살 저소득층 학생 3000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이 학생들은 비교 집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학, 영어, 루마니아어 점수를 받았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저소득층 학생보다 숙제와 텔레비전 시청, 독서를 하는 시간이 한주에 2.3시간 적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디지털 격차는 계급 격차를 넓히는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카이저 가족 재단은 2009년 8개월간 3~12학년 학생(8~18살) 2002명을 조사해 2010년 1월 ‘미디어 스퀘어(M²) 세대, 8~18살 생활 속 미디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카이저 가족 재단은 1999년부터 5년 주기로 2004년, 2009년에 아동·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을 조사해왔다.
보고서를 보면, 부모가 고졸 이하인 자녀들의 미디어 노출 시간은 하루 11시간26분으로 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보다 90분이 길었다. 1999년에 이 격차는 16분이었다. 부모가 고졸 이하인 자녀들의 미디어 노출 시간 자체도 1999년보다 4시간40분이 늘었다. 연구팀은 1시간 동안이라도 2가지 미디어를 같이 볼 경우엔 2시간으로 계산했다.
인종으로 분류하면 흑인과 히스패닉 가정의 자녀들은 미디어 노출 시간이 13시간으로, 백인 가정 자녀의 8시간36분보다 4시간30분가량 길었다.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평균적으로 백인보다 소득 수준이 낮다.
미디어를 많이 이용하는 학생일수록 성적은 낮았다. 미디어 이용이 ‘높은 집단’ 중에선 47%가 학교에서 평균 또는 낮은 등급의 성적을 받았지만, 미디어 이용이 ‘낮은 집단’ 중에선 23%만이 평균 또는 낮은 등급의 성적을 받았다. 소득이 낮은 고졸 이하 부모의 자녀들이 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조적으로 인쇄 매체인 책과 잡지를 읽는 시간은 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들은 하루 44분으로, 부모가 고졸 이하인 자녀들의 35분보다 9분 더 길었다. 운동시간도 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가 고졸 이하 부모의 자녀보다 12분 많았다.
연구 책임자인 비키 라이드아웃은 “컴퓨터는 교육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놀이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배우거나 의미있는 창조를 하는 부분은 아주 적다. 미디어는 성취 격차를 좁히기보다는 시간 낭비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줄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의 연구를 진행한 맬러머드 교수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부모가 컴퓨터 사용을 감독하고 숙제를 하도록 규칙을 정해준 학생은 학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루마니아의 경험은 다른 나라의 저소득 계층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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