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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기획]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달라진 관계의 방식
달라진 관계의 방식
‘너희는 우리 사이에 너희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 구실로 삼는다. 그런 문제들 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갈등이 있고 잘못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다룰 것이다.’
미국의 사이버 활동가이자 현재 하버드대 인터넷과 사회연구소(버크먼센터) 연구원인 존 페리 발로(67)는 1996년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통해 “살덩이와 쇳덩이”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사이버 공간 거주자들은 새로운 주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히피 출신의 발로가 당시 미국 정부의 통신법 수정안 통과에 반발해 쓴 이 글은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선언문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사회관계를 구성한다”고 단언했다.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사회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기초 구성단위인 가족에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10대와 지켜보는 부모의 불편한 심기 역시 이런 바탕 위에 있다. ‘어른과 있을 때 예의를 차리라’는 기존의 관계에서 통하던 규칙에 매여 있는 부모 세대와 스마트폰 속 새로운 관계가 더 중요한 자식 세대의 충돌이다.
현대인의 디지털 미디어 몰입을 ‘액정사회’라는 말로 설명한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나이 든 세대는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배우려 하지만, 어렵고 생물학적으로 맞지 않는 면도 있다. 세대 간에 소비하는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에 공통의 화제도 찾기 어렵고, 정보량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정보량이 적은 노년층이 훈계하기도 어렵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근 교수가 말하는 액정사회 또는 모니터사회는 화면이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는 손안의 작은 화면에 빠진 사람이 대부분이고, 도시의 사무직들은 컴퓨터 모니터와 하루를 보낸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여러 이론가와 학자들은 새 정보기술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 경고해 왔다. 정보기술 전문 저술가인 니컬러스 카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인간 정신에 미치는 위험을 탐구한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기술의 힘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대가는 소외”라고 지적했다.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는 성과중심사회의 병적 증상을 파헤쳐 호평을 받은 책 <피로사회>에서 “멀티태스킹은 퇴화”라고 지적했다. 사람이 눈앞의 대상에 사색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항상 주의를 빼앗기는 사회는, 동물이 항상 주변을 감시해야 하는 야생수렵구역과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다.
인터넷 등 가상공간에서
학연·지연 등 공동체 떠나
관심사 바탕으로 관계 형성 촘촘히 연결된 커뮤니티 통해
잘못된 정보도 쉽게 퍼지고
끼리끼리 문화 확산 우려도 기술은 위험과 가능성을 함께 불러온다. 인터넷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학원강사 김나영(가명·33)씨는 하루 평균 3~4시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낸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패션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미용 카페 ‘쌍화차코코아’(쌍코), 인테리어 모임 ‘레몬테라스’ 등이다. 그는 관심사에 따라 여러 게시판을 넘나들며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은 화면 속의 대중이다.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 “과거의 일상 관계가 주로 연고와 경험에 기반한 관계였다면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관심에 기반한 관계다. 서로에 대한 속성을 인지하지 않더라도 같은 관심을 공유하며 지속적 관계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어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확대로 사이버 세계의 관계는 밀도가 높아지고 그물망이 복잡해졌다. 김씨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보면 일상과 온라인의 관계가 섞여 복잡하게 친구를 맺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은 스마트폰 속의 카톡 채팅방 등을 통해 친구·연애·게임정보와 연예인 이야기 등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또래집단과 교류하게 된다. 스마트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엔 학교나 거리 등 가정 밖에서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늘 또래와 접촉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그들은 언제든지 액정을 통해 현실로부터 관심의 가상공간으로 ‘점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온라인에는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20세기 대량생산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 중심의 이익사회 공동체가 오프라인에 유지되면서 온라인이란 가상공간에서 관심 공동체가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사회관계가 혈연·지연·학연 등 연줄로 묶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새 관계는 서로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사회학자 배리 웰먼은 이를 두고 기존의 집단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나아가 “최근 너무 많은 성격의 온라인 집단이 형성·해체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일종의 공동체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관계가 변화하면 그 속에 놓인 인간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구성 관계와 다른 방식의 공동체가 점차 확산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성향도 영향을 받는다. 배 교수는 “(온라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관심 사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는 다른 경험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확대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동체의 확대는 동시에 위험성도 안고 있다. 촘촘히 연결된 관계를 통해 잘못된 정보도 쉽게 퍼질 수 있게 되었다. 송 교수는 “네트워크의 확산성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를 유포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관심에 따라 쉽게 뭉치고 쉽게 결별하는 온라인 관계의 특성상 개인들은 점차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 같은 의견을 가진 동료들과만 끼리끼리 뭉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오염된 정보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정보만을 걸러서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세대간·집단간) 정체성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학연·지연 등 공동체 떠나
관심사 바탕으로 관계 형성 촘촘히 연결된 커뮤니티 통해
잘못된 정보도 쉽게 퍼지고
끼리끼리 문화 확산 우려도 기술은 위험과 가능성을 함께 불러온다. 인터넷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학원강사 김나영(가명·33)씨는 하루 평균 3~4시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낸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패션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미용 카페 ‘쌍화차코코아’(쌍코), 인테리어 모임 ‘레몬테라스’ 등이다. 그는 관심사에 따라 여러 게시판을 넘나들며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은 화면 속의 대중이다.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 “과거의 일상 관계가 주로 연고와 경험에 기반한 관계였다면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관심에 기반한 관계다. 서로에 대한 속성을 인지하지 않더라도 같은 관심을 공유하며 지속적 관계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어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확대로 사이버 세계의 관계는 밀도가 높아지고 그물망이 복잡해졌다. 김씨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보면 일상과 온라인의 관계가 섞여 복잡하게 친구를 맺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은 스마트폰 속의 카톡 채팅방 등을 통해 친구·연애·게임정보와 연예인 이야기 등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또래집단과 교류하게 된다. 스마트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엔 학교나 거리 등 가정 밖에서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늘 또래와 접촉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그들은 언제든지 액정을 통해 현실로부터 관심의 가상공간으로 ‘점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온라인에는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20세기 대량생산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 중심의 이익사회 공동체가 오프라인에 유지되면서 온라인이란 가상공간에서 관심 공동체가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사회관계가 혈연·지연·학연 등 연줄로 묶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새 관계는 서로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사회학자 배리 웰먼은 이를 두고 기존의 집단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나아가 “최근 너무 많은 성격의 온라인 집단이 형성·해체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일종의 공동체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관계가 변화하면 그 속에 놓인 인간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구성 관계와 다른 방식의 공동체가 점차 확산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성향도 영향을 받는다. 배 교수는 “(온라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관심 사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는 다른 경험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확대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동체의 확대는 동시에 위험성도 안고 있다. 촘촘히 연결된 관계를 통해 잘못된 정보도 쉽게 퍼질 수 있게 되었다. 송 교수는 “네트워크의 확산성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를 유포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관심에 따라 쉽게 뭉치고 쉽게 결별하는 온라인 관계의 특성상 개인들은 점차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 같은 의견을 가진 동료들과만 끼리끼리 뭉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오염된 정보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정보만을 걸러서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세대간·집단간) 정체성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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