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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못 쓰게’ 대신 ‘잘 쓰게’ 가르치자…미국 초등교의 실험

등록 2014-01-01 22:41수정 2014-01-02 16:03

미국 보스턴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태블릿피시를 사용하고 있다. 이 학교에선 5학년(초등 4학년) 때부터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태블릿피시를 이용한 교육이 이뤄진다.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 제공
미국 보스턴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태블릿피시를 사용하고 있다. 이 학교에선 5학년(초등 4학년) 때부터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태블릿피시를 이용한 교육이 이뤄진다.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 제공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
학교 오면 개인전화 사용금지
아이패드 나눠주고 앱·게임 활용
수업효과 높이고 오남용 줄여

욕설문자 보내면 ‘정학 3일’
개인정보 보호 등 필수교육도
“디지털시대 피할 수 없다면
디지털 시민의식 일깨워야죠”
미국 보스턴에 있는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은 학생 203명이 다니는 조그만 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4년 전 의미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태블릿피시(PC)인 아이패드를 수업시간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학교는 1961년 퀘이커 교도가 세운 학교다. 평등, 평화, 공동체라는 퀘이커교 가치를 근본 교육철학으로 삼아 학교 수업과 생활이 운영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08년 당선 직후 두 딸을 워싱턴에 있는 퀘이커교 계열 초등학교로 보냈다. 학생 중 퀘이커교 학생 비율은 8% 정도며 무신론자 자녀도 다닐 수 있다.

퀘이커 교도는 전통적으로 기술을 적극 도입해왔다.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퀘이커교는 성공회가 국교인 정부의 탄압을 받아 과학이나 제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화학자 돌턴 같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많이 배출한 배경이 됐다. 피터 소머 교장 자신도 2000년부터 5년간 컬럼비아대학교 뉴미디어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을 정도로,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 관심이 깊다. 샌드라 코테시 하버드대 인터넷과 사회연구소(버크먼센터) 연구위원은 “케임브리지 프렌즈 스쿨은 미국 학교들 중에서도 모범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시민의식(디지털 시티즌십) 교육을 시키고 있다. 내게 자녀가 생긴다면 이 학교에 보내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10년 우리 나이 12살, 학년으로는 5학년인 6학년 학생부터 아이패드를 수업에 도입했다. 결과가 좋게 나타나자 다음해엔 7·8학년, 그 다음해인 2012년엔 5학년으로 아이패드 사용 학년을 늘렸다. 비용은 학교가 부담했다. 대신 학생들은 학교에 오면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맡기고 수업이 끝난 뒤 찾아간다. 소머 교장은 지난 12월1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태블릿피시는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화면을 누른다. 또한 아이패드를 쓰기 위해선 컴퓨터실에 갈 필요 없이 그냥 책상에서 꺼내면 된다. 대단한 교육적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아이패드는 언어, 수학, 과학, 지리 등에 관한 40~50여개의 앱으로 차 있다. 수학 수업에 대수학을 배운다면 교과서 한 권과 온라인 무료교육 사이트인 칸아카데미 같은 앱 2종류를 같이 활용하는 식이다. 스페인어 수업 때는 학생들이 아이패드로 스페인어 발음을 녹음해 이메일로 교사에게 제출한다. 매년 8학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한 작품을 가지고 연극 공연을 하는데 이때도 옛날 단어를 아이패드로 뜻을 찾아본다. 수업에서 쓸 앱을 결정할 때는 학생들이 여러 앱을 사용해보고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을 채택한다. 학생들이 먼저 새로 출시된 앱을 사용하자고 교사에게 건의하기도 한다.

7학년부터는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소머 교장이 직접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과 함께 구글·페이스북·스냅챗 같은 소셜 미디어의 개인정보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토론한다. 8학년은 윤리 수업으로 개인정보 보호나 위험한 디지털 사용에 관해 배운다. 가장 최근 수업에서 학생들은 무작위로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는 앱의 위험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저학년 학생들에겐 아이패드 대신 레고로 기계를 만드는 ‘디지털 조립’(Digital Fabrication) 수업을 도입했다. 소머 교장은 “기술과 엔지니어링을 경험하는 것은 학생들이 추상적인 과학과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6살짜리에게 쇠망치를 주는 건 안 되더라도 작은 망치를 줄 순 있듯이 그 나이에 맞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규칙을 만들어가는 데도 공을 들인다. 아이패드에 앱을 내려받는 것은 반드시 학교를 통해서 해야 한다. 상대방의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려서도 안 된다. 또한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말자는 규칙을 세웠다. 이어폰은 언제나 사용 금지다. 학교에선 기본적으로 친구들끼리 서로 대화를 해야지 디지털 세계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소머 교장의 생각이다.

한 8학년 학생은 “윤리 수업에서 우린 ‘마주 보고 행동하는 것처럼 디지털 세계에서도 행동하라’는 규칙을 배웠어요. 친구와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는 친절하게 말하지만 온라인에선 심한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제는 페이스북에 뭔가를 쓸 때 반드시 두번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해 디지털 기기를 잘못 사용해 처벌을 받은 일은 1건뿐이다. 한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친구에게 문자로 욕설을 보냈다가 ‘정학 3일’에 처해진 사건이 유일하다.

소머 교장은 태블릿피시 이후 바뀔 환경에서 교육의 변화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방과후 수업 때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컴퓨터게임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소머 교장은 “‘심시티’ 게임으로 도시와 환경오염의 관계를 알 수 있고, ‘마인 크래프트’로는 물리를 배울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엔 무한한 교육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머 교장은 내년부터 학생들의 디지털 교육을 평가하는 시험을 개발해 도입할 예정이다. ‘3차원(3D) 프린터’를 수업에 도입해 학생들이 물건을 설계하고 만들도록 할 계획도 세웠다.

케임브리지 학교의 디지털 교육은 학급당 학생 수가 13~15명으로 적어서 수월한 측면도 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교사 몰래 게임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립학교 특성상 이 학교의 디지털 교육에 동의하는 학부모들의 자녀만 입학시키는 점도 배경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민의식을 가르치는 것은 이제 학교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 이 학교 구성원이 공유하는 신념이다. 소머 교장은 “세상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이미 열렸다. 자동차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듯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학교가 잘 가르치지 않으면 학생들이 오·남용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디지털 기술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갈 학생들을 길러내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라고 말했다.

보스턴/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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