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시국회의와 민주노총 주최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시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1221 대자보 번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이 쓴 대자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3.12.21 (서울=연합뉴스)
서울 청계광장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1221 대자보 번개’ 행사 열려
비정규직 등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안녕하지 못한 이야기’ 쏟아내
비정규직 등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안녕하지 못한 이야기’ 쏟아내
12월의 칼바람을 뚫고 3000여개의 촛불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곱은 손을 비벼가며 언몸을 녹였고, 저마다의 안부를 고통스럽게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세요?”
21일 오후 6시부터 두시간가량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안녕들 하십니까? 1221 대자보 번개’ 행사는 이 ‘시대의 안부를 묻는 자리’였다. 288개 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국정원시국회의와 민주노총이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손수 쓴 대자보를 갖고 단상에 올라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안녕하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시민들이 각자 대자보를 쓴 뒤 무대에 올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경기도 갈뫼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는 안아무개(43)씨는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양산을 중단하고,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집단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9년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에 따라 도입된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임용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재계약을 통해 임용을 연장하더라도 4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다. 2009년 채용된 전문강사 1기 530여명은 현재 집단해고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소복을 입고 단상에 오른 그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도 같다. 박근혜 정부는 이같은 살인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인천공항 비정규직 여성도 단상에 올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과 임금 차별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노동자들의 ‘안녕하지 못 함’은 정규직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인 정찬희(33)씨는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급여를 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회사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부품을 새부품으로 둔갑시켜 소비자를 속이고, 열심히 일한 엔지니어들에게 기본급도 안되는 월급을 쥐어주면서 삼성전자가 올해 올린 매출이 2조1000억원이다. 세계 1등 기업의 이면에서는 여름 성수기에 단 하루의 휴가도 얻지 못한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고, 회사에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친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안녕한 삶을 위해 우리 함께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외침도 이어졌다. 고려대 학생 최하영(23·한국사학과)씨는 최근 교육부가 전국 교육청에 고등학교의 대자보를 금지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과 관련해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춰서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쳤다. 그는 “학생이 학업에 열중해야 하기에 정치참여를 막는다면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해서 정치참여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치는 정치인만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같은 학교 학생인 강훈구(23·정치외교학과)씨는 “옥탑방이 추워 안녕하지 못하다. 등록금이 1년에 1000만원에 달하고, 한 달 방값으로 40만원, 생활비로 30만원이 필요하다. 이 추운 겨울 가스비가 무서워 학생회실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오늘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이게 과연 우리들의 잘못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공회대 권현수(21·사회과학부)씨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오늘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분노가 일어 이 자리에 섰다. 안녕들 하지 못한 이 만남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실질적인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대자보 행사가 열리기 앞서, 이날 오후 5시부터는 청계광장에서 철도 파업 열사흘째를 맞아 전국철도노조의 결의대회가 열렸다. 철도노조원 3000여명(주최쪽 추산, 경찰 추산 1500명)과 시민 500여명이 모여 “박근혜 정부는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스톱(STOP) 민영화, 힘내라 철도파업’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시간여동안 집회를 이어갔다. 노조원들은 “정부는 코레일의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민영화의 수순인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하고 있지만, 경영 실패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철도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28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시국회의와 민주노총 주최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열린 ‘안녕들하십니까? 시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1221 대자보 번개‘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 대자보 내용을 읽고 있다. 2013.12.21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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