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학생들이 16일 저녁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안녕들 하십니까’ 자유발언 대회에서 촛불을 들고 한 참가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동국대 ‘안녕’ 촛불집회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졸업>이 광장에 울렸다. 17일 저녁 미처 녹지 않은 눈이 얼음으로 박힌 광장에 앉은 150여명의 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합창했다.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후렴구 “미친 세상”이 노란 불빛과 함께 서울 필동 동국대 이해랑극장 앞 광장을 채웠다. 꽁꽁 언 손마다 ‘갑의 횡포 때문에 안녕하지 못합니다’, ‘왜 안녕하지 못한지 당신은 아십니까’라고 적힌 팻말들이 들려 있었다. ‘하기 힘든 연애 이야기부터 시국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말 다 나누자’고 마련된 자리다.
연단에 오른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고민부터 철도노동자들의 파업과 대학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정성인(24·경찰행정학 3년)씨는 “학교에서는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한 길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디에 취업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대학의 현실에 휩쓸리지 말자”고 말했다.
북한학과에 다니는 김희정(20)씨도 “대학에선 꿈을 꿀 줄 알았는데, 현실은 ‘취업의 전당’이었다”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밀양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해도 꿈쩍하지 않게 됐다. 스스로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장학금을 받아도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벌써 800만원이라는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이 안 된다. 일을 다녀와서 체념이라는 안주로 맥주를 마시는데, 그래도 냉소하고 체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까운 곳부터 관심을 갖자는 의견도 나왔다. 중앙대에서 찾아온 최문석(27)씨는 “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대자보를 붙여 ‘학생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당장 곧바로 변화가 생기기는 어렵겠지만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는 주저 없이 동참하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도 찾았다. 단장면 용해마을에서 온 구미현(64)씨는 “취업 준비 등으로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너무 잘 안다. 밀양에 관심을 주고,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늘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날까지 99개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걸렸다. 페이스북에서는 라오스와 칠레 등 국외에서 대자보를 붙이고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박승헌 김성광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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