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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주민에 “너희 나라로 가” “냄새나” 모욕

등록 2013-04-14 21:13수정 2013-05-08 08:35

차별 대신 차이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4. 피부색·인종 선입견에 갇힌 사회


한국체류 외국인 100만명 시대
인종차별 발언 처벌 조항 없어
“에이, 미친놈들!”

50대 남성의 눈빛은 적의 그 자체였다. 친구로 보이는 남성 2명도 다르지 않았다. 주디스 알레그레 헤르난데스(42)씨와 남편은 두 아이와 함께 경기도 광주의 한 공원을 걷는 중이었다.

“저희가 뭐 잘못했나요?”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을 건네자, 또다시 ‘모욕’이 돌아왔다. “너희 나라로 가! 왜 남의 나라에 살면서 세금을 축내?” 엄마의 손을 잡은 고등학생 아들·딸의 손이 떨려왔다.

이들 부부는 각각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헤르난데스씨는 영어강사로 한국에 들어와 지금은 번역 일을 하고, 남편은 인도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늘 긴장해야 한다. 헤르난데스씨는 “이럴 때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솟구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일상에는 모욕이 먼저다. 외모와 피부색이 다른 탓에 겪는 일들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물건을 사며 “얼마냐”고 물으면 점원은 싸늘한 표정으로 “비싸요”라며 말을 자른다. 자동차를 주차할 때도 관리원이 다가와 “이 차 당신 것 맞냐. 신분증 좀 보자”며 의심부터 한다. “우리는 물건 살 돈도 없고 차도 훔쳐 타고 다니는 줄 아나봐요.” 헤르난데스씨의 유창한 한국어는 표정만큼이나 쓸쓸했다.

최근 경남 김해시의 한 거리에는 심각한 수위의 외국인 혐오증을 보여주는 펼침막이 공공연히 나붙었다. “범죄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알린다. 법이 솜방망이라면 쇠방망이를 보여줄게. 방글라데시, 문맹률 1위 세계 최빈국이라서 따로 번역은 안 한다. 한글 아는 놈이 읽고 전파해라.” 인종차별·인종혐오 범죄가 더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모욕도 차별…법에 명시해야”

법무부 통계를 보면,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은 2003년 68만명에서 2007년 100만명을 넘어선 뒤, 지난 2월 말 142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귀화한 외국인도 12만3500명을 넘어섰다. 늘어나는 이주 외국인들은 각종 욕설과 차별적 발언에 노출돼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2011년 전국 이주노동자 931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차별 경험 실태조사’(복수응답) 결과, 응답자의 78.2%는 ‘욕설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문화적 차별 발언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3.9%나 됐다.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한 법·제도 정비는 더디다. 현재 인종차별적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명시적인 법 조항은 아예 없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만 고소할 수 있는데, 처벌 기준과 범위가 엄격해 실효성이 없다. 실제 인종차별적 모욕 행위에 대해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것은 2009년 인도 사람인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경우밖에 없다. 보노짓 후세인 교수에게 “더러워, 이 냄새나는 ××야”라고 말한 30대 회사원은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선 인종 및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행위를 처벌하는 ‘혐오죄’가 도입돼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주 외국인들에게 ‘일상의 불안’을 걷어내줄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인종에 따른 비인간적 행위를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행위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종·피부색에 대한 모욕·비하 등의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방지하려면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세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성별·학력·지역·인종·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모욕·비하 발언을 차별 행위로 보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 이를 법률에 명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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