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서평쓰기는 ‘고전’과 번역서가 ‘안전’한 선택일 때가 많다. 이 지면이 아류 서평이긴 하지만, 나는 여성학 도서가 가장 어렵다. 몇 배의 노동이 요구되고 구설수와 자기 검열도 고달프다. 국내 여성학 책을 다룬 적이 거의 없어, 반성중이다.
여성의 언어는 없고 여성주의자는 기존의 언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성별을 다루면 작은따옴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글을 쓸 수밖에 없는데, 나는 지금 이 글처럼 문장부호로 점철된 ‘지저분한’ 글이 정말 싫다. 내 무능력은 논외로 하고, 이는 ‘쉬운 글’(익숙한 논리와 표현), ‘쉽게 읽히는 글’과 여성주의 사이의 불가피한 갈등 때문인데,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가야트리 스피박이 ‘해결’(작은따옴표가 절실한 단어!)한 유명한 논쟁이기도 하다.
‘여성’과 ‘여성의 성역할(딸)’은 정반대의 정치학이지만, “미국에도 없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치자.) 대기업 회장의 장남의 장남이 사회적 배려 대상(이혼 가정)으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니, 논란은 없다. 적법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여성과 한부모 가정을 이토록 ‘환대’했던가?(특히, ‘여성 대통령’) 사회운동의 성과가 박정희, 이병철 가(家)에까지 혜택(?)이 가다니! 냉소하거나 시비를 논할 생각은 없다. 이 ‘특이한’ 사례가 모든 여성과 이혼 가정에 적용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보편성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성의 ‘생얼’은 게리맨더링. 차별과 그 합리화는 쉽다. 언제든지 특수성이라는 예외를 만들어 선별 적용하면 그만이다. 특수는 보편의 반대말이 아니라 하위개념이다.
선(線)을 구획하는 것은 자연도 신도 아닌, 사소하고 우연한 권력들이다. 이 권력을 가시화해야 한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 포함되길 거부하라”(한채윤, 188쪽)는 말이 이 책의 패러다임을 요약한다. 선택 밖에서 선택하지 않는다면, 사회운동이 아니라 ‘행정’이다. 물론 ‘정책’ 안에 포함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또다른 배제가 진행되고 굴욕적인 자기 조정을 계속 요구받게 된다. 변해야 할 것은 그대로고, ‘그들’을 위한 나의 변화만 강제된다.
기존 규범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안에서 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중 메시지에 ‘자발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행위다. 사회가 당연시하는 사유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지성이고 운동이다. 권력의 법칙을 해체(즉, 인식)하지 않는 저항은 ‘반칙’ ‘불평불만’ ‘낙오자의 불복’ 심지어 “역차별의 가해자”라는 엉뚱한 비난을 뒤집어쓴다. 인간의 기준이 남성인 상태에서,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하면 이중 노동을 해야 하고 다름을 주장하면 시민권을 잃고 피보호자가 된다.
대선에서 나를 좌절케 한 사건은 지지한 후보의 낙선이 아니라 티브이 토론이었다.(토론 결과가 지지율과 무관하다면, 토론을 왜 하는가?) 기의가 없기 때문에 발화라고 할 수도 없지만 강자의 발언은 비상식적인 말(“그래서 제가 되려고 하잖아요!”)도 우스갯소리 수준에서 회자됐지만, 약자의 발언은 ‘국가 보안’ ‘장유유서’ ‘인간성 위반죄’로 여론 재판을 받았다. 같은 룰, ‘포함’ 안에서 벌어진 희비극이다.(참고로, 1970년생과 1942년생이 맞붙은 미국 부통령 토론을 보라.)
우리 사회에서 여성학은 여성과 모든 타자를 종속적 범주로 만들려는 사회에 대한 비판 연구(feminist studies)라기보다는 ‘여자(female)가 하는 공부’로 간주된다. 이 책은 전자의 좋은 예다. <성의 정치 성의 권리>는 해결보다 의미화에, 부정보다 문제 설정에, 이론의 적용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모색한다. 이런 접근 방식과 기존 언설의 탁월한 격(隔)은 문제틀 자체를 추적하여 지식이 고안된 과정을 드러내는 데 있다. 양성평등 주장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 만들어지는 역사와 방법이다.
‘주류’가 되고 싶다면 무조건 노력하지 말고 일단, 포함과 배제의 원리를 공부하라. 이 책은 그 노고를 덜어줄 것이다. 여성주의의 실용성과 지적 수월성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 ‘밥벌이 전쟁’ 노량진, ‘컵밥’ 철거 1순위 이유는?
■ 법정서 울던 최시중, 사면 받자마자 “난 무죄야”
■ 전순옥, 이마트 정용진에 ‘전태일 평전’ 보내며…
■ 당신 눈에 독성물질 바르고 참으라 한다면?
■ 외신도 깜짝 “세계 1위 성형대국 한국”
■ ‘밥벌이 전쟁’ 노량진, ‘컵밥’ 철거 1순위 이유는?
■ 법정서 울던 최시중, 사면 받자마자 “난 무죄야”
■ 전순옥, 이마트 정용진에 ‘전태일 평전’ 보내며…
■ 당신 눈에 독성물질 바르고 참으라 한다면?
■ 외신도 깜짝 “세계 1위 성형대국 한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